가을
2022년 가을, 추석 지나고 제주도에서 이주살기를 했다. 남편은 회사를 뺄 수 없어서 주말에 잠깐 들리고, 나머지 시간은 나와 아이 둘이 시간을 보냈다. 제주도 왼편에 있는 애월을 주로 다녔다.
얼마 전, 풍경 그림을 그리려고 핸드폰 사진첩을 뒤적거리다가 봄날 카페 사진을 발견했다. 저녁이라 어두워진 카페 전경을 찍어뒀는데, 그림으로 그려보고 싶었다. 카페 입구와 왼쪽으로 보이는 바다를 엽서크기 종이에 담았다. 색깔은 칠하지 않았다. 붓을 대는 순간 그림이 망가질 것만 같았다. 며칠 동안 색을 칠하지 않은 채로 가지고 있다가 오늘 마음을 먹었다. 물감과 색연필, 고민하다 색연필을 집어 들었다.
이 카페가 무슨 색이었더라. 왠지 파랗거나 노란색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옆에 있던 지인이 그 카페를 가봤는데 노란 벽을 봤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파란 지붕에 노란 벽이 연상됐다.
다시 사진첩을 찾아서 봐도 어두울 때 찍은 사진이라 원래 색깔이 무엇이었는지 모르겠다. 인터넷 검색을 했다. 보통 밝을 때 찍은 사진을 올리니까 정확한 색을 알 수 있겠지.
봄날.
지붕은 어두운 갈색에 아래는 좀 더 밝은 갈색이었다. BOMNAL이 적힌 간판도 조명이 꺼지니 하얀 바탕에 어두운 색 글자뿐이었다. 노란색은 옆에 붙은 안내판 뿐이었다. 대신 바다와 하늘은 새파랬다.
아이들은 이주 살았던 가을의 제주를 종종 이야기한다. 또 가고 싶다며, 좋았다고 말한다. 나 역시 그랬다. 첫째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꼭 해보고 싶었던 제주살이라 돈이 많이 드는 걸 알면서도 했던 것이었다. 아이는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물론 마음먹으면 갈 수 있는 곳이지만 셋이서 비행기 티켓 70만 원에 차를 보내는 비용 60만 원쯤 들었다. 제주에서 지내면서 아침은 간단하게 때운다고 해도 뭐 이것저것 사 먹거나 해 먹고 돌아다니다 보면 돈을 쓰게 된다. 그러니 다시 가고 싶지만 쉽사리 결정할 거리는 아니다.
봄날 카페가 밝은 색감일 거라고 내가 어림짐작한 이유는, 아마 그때의 기억과 내게 다가온 느낌이 원색이어서겠지. 추억에 행복한 순간이 덧입혀지고 아이들의 기억이 내게 전달되면서 어느 순간 색이 칠해져 있었을 거다. 그림을 그리면서 다시 제주를 떠올렸다. 다시 떠올려 봐도 밝은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