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판 경로당, 남양 풍화당

[챠챠의 마을여행일기 보.여.요] #남양 풍화당

by 챠챠



문이 잠겼다. 코로나 19 때문인 것인가. 잠긴 문은 코로나 19를 더 원망스럽게 만들었다.
검은 바탕의 풍화당 현판은 조선의 서화가 이도영(1884~1933)이 서(書)했다.


“계세요? 들어가도 돼요?”

우리들은 담벼락에 쪼르르 붙어서 외쳤다.

남양풍화당 앞, 검은색 현판 아래 나무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최 대표와 9살, 10살 아이를 데리고 함께 들른 곳인데, 설마 코로나 19로 닫은 걸까. 문 사이로 빼꼼히 안을 들여다봤다. 신발 몇 켤레가 보인다. 뒤이어 들리는 말소리가 들렸다. 누군지도 모르는 목소리가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낮고 붉은 벽돌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풍화당 안에 계신 어르신들과 마주했다.

“저기로 들어오면 돼.”

한 어르신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보니, 훤히 뚫린 입구가 보였다.

“아, 네!”

멋쩍음과 다행스러움이 섞인 큰 웃음소리를 내며 성큼성큼 풍화당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을 찾기 전에 간단한 정보를 찾아봤었다. 조선 철종 4년, 관직을 은퇴한 양반들을 예우하기 위해 만든 곳이라는 것. 우연히 남양 벽화 골목을 보고 화성시에 풍화당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챠챠네 마을 여행일기 보.여.요] 프로젝트 첫 방문지가 되었다.



조선 시대 집이라고요? 들어가봐도 될까요. 그럼, 물론이지.



어르신들이 따뜻하게 맞아주셔서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풍화당을 둘러볼 수 있었다.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짧막한 옛이야기 시간도 좋았다.


집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신기했다.

오래된 마을 취재하는 건 참 매력 있다. 책에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을 현장에서 오롯이 받을 수 있다. 마을에 사는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를 들을 기회를 얻었다. 질문하기 전, 먼저 친근하게 설명해주셨다. 오랜만에 모여 소주 한잔 걸치셨다며 웃어 보이는 모습조차 정겨웠다.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얻은 자료는 쉽게 잊는다. 하지만,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이야기는 잊을 수가 없다.

혹여나 아이들이 지루해하면 어쩌나,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어른에게도 아이에게도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한옥에 직접 들어가 볼 수 있다는 건 특별한 경험이었다. 아이들은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며 이곳저곳 둘러보기도 했다. 정말 그 시대에 지어진 게 맞느냐고 재차 확인하면서. 게다가 고려 양식을 따른 조선 시대 한옥이란다.

우리는 몇몇 어르신의 설명을 들으며 풍화당 내부를 구경했다. 오른쪽 방에는 뚱뚱한 텔레비전이, 왼쪽 방에는 운동기구가 있었다.

“엄마, 조선 시대 운동기구!”

“응, 그건 아니야.”

한옥만 조선 시대에 지어진 거라고 설명을 했지만, 아이는 눈에 들어온 모든 물건이 신기했던 거다. 뚱뚱한 텔레비전도 요즘 아이들에겐 생소한 가전제품이긴 하겠다.

한가운데 벽면에는 역대 풍화당 기로회 회장님 사진액자가 죽 이어져 있다. 1대 회장 임기가 1864년부터 시작하니, 그 역사가 어마어마하다.



코로나 19로 경로당은 1차, 2차, 3차...임시 휴관 중.



모두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풍화당'



풍화당 뒤쪽에는 연못이 있었던 자리이지만, 현재는 남아있지 않다. 이곳에서 보훈회관이 있는 자리까지 옛 남양 도호부 관아 터다.


이렇게 모임이 잘 이어올 수 있는 계기가 뭘까. 풍화당 기로회 부회장님께서 화성시 역사 자료 총서 제 8편<남양 풍화당의 역사와 문화>를 선물로 주셨다. 궁금한 건 언제든 물어보라며 연락처도 받았다. 개인적으로 풍화당에 관심을 두고 찾은 우리를 위한 선물 같았다



남양 벽화거리



풍화당을 둘러보는 동안 전화가 왔다.

“어디야?”

“남양 풍화당.”

“유명한 빵집이야?”

“아니야.”

풍화당은 바람 風(풍), 화할 化(화)의 한자를 쓴다. 바람이 움직이면 변하고, 변하면 화한다. 정풍돈화(正風敦化)한다는 성인의 말씀도 있으니, 당 회원 먼저 老(노), 長(장), 忠(충), 孝(효), 悌(제)하면 온 사회가 본을 받아 미풍미화(美風美化) 한다는 뜻이다.

참고자료 <남양 풍화당의 역사와 문화>



화성시 보훈회관 앞, 옛 남양도호부 관아터


남양초등학교 앞, 화성시 보호수_회화나무
멀리서 봐도 이 나무는 보호수야. 역시나 맞았다.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12호 ‘풍화당’에는 역사를 이어가는 어르신들이 있다.

남양 초등학교 앞에는 2020년 현재 수령 388년인 회화나무(보호수)도 있다.

남양도호부 관아는 성곽 대신 주위에 느티나무, 회화나무 등 아름드리나무가 둘러 있었는데, 현재 회화나무 한 그루만 남아있는 것이다. 이 나무만은 오래도록 자리를 지켰으면 좋겠다.






손커피연구소 외부


손커피연구소 내부
학교에서 배운 바둑, 여기서 해보네.

풍화당에서 나와 다음 목적지는 남양 향교였다.

그전에 아이들과 잠깐의 휴식을 위해 ‘손 커피 연구소’에 들렀다. 조금씩 다른 초록으로 채워진 배경 사이에 흡사 일본 가옥으로 추측되는 건물이 보였다. 애니메이션 주인공들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분위기. 세월이 느껴지는 나무계단 위로 이어진 나무다리를 걷는 느낌이 좋았다. 머릿속 가득, ‘오늘 하루는 참 좋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시원한 커피로 즐거움을 얻었으니 이제, 남양 향교로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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