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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챠챠 May 11. 2021

기다려도 안 되는 건 알지만.




 딸아이가 임시 담임 선생님과 지낸 지 일주일이 되었다. 모두에게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원래 담임이 나오지 않던 날, 아이는 입을 열지 않았다. 오늘 잠깐 아프셔서 그런 거고 내일은 나오실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아이는 3학년이 시작하기 전, 꼭 여자 선생님이었으면 좋겠다고 수도 없이 말했다. 1, 2학년 때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꼭 그래야 한다고 했다. 

 남자 선생님을 경험해본 건 태권도, 축구, 수영 정도를 배울 때이다. 태권도는 1년쯤 배웠는데 워낙 놀이 위주로 유명한 학원이어서 집에 오기 싫다고 할 정도로 즐겁게 다녔다. 축구는 부모가 옆에서 지켜보는 수업이었고 선생님은 20대 초반 정도로 어렸다. 아이들은 선생님이라기보다 동네 형, 오빠 정도로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시에서 운영하는 센터 수영에서 남자 선생님이 지도를 해주었다. 그런데 첫날부터 큰 소리가 났다. 유리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선생님의 얼굴은 잔뜩 화가 나 있었다. 그때 아이 나이가 7살이었다. 물에서 심하게 장난을 치면 큰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유독 엄격하게 대한다는 건 알지만, 물에 적응하기도 버거운 아이들에게 선생님은 그저 무서운 사람이었다. 나는 아이가 수업에 들어가 있을 때 옆 레인에서 자유수영을 했다. 감시하려던 건 아니고, 씻을 때 무조건 스스로 해야 한다는 게 규칙이었는데 아이가 힘들어했다. 부모가 도와주려면 일일 자유수영권을 끊고 샤워실에 입장에 가능했다. 나는 겸사겸사 자유수영까지 하게 된 것이었다. 옆에서 본 선생님은 나도 움찔할 정도로 쩌렁쩌렁한 고함을 질렀다. 다른 옆 선생님들은 웃으면서 잘하시던데, 이목구비가 뚜렷한 데다가 덩치도 크고 가르치는 것도 소홀해 보였다. 말썽꾸러기 아이 엄마한테 가서는 얘는 사고 날 위험이 있으니 수영을 다니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서슴없이 말하고, 잠수를 어려워하는 딸에게는 무조건 연습하라고 강요했다. 결국 말썽꾸러기도, 딸도 수영을 그만뒀다.

 



 원래 담임 선생님과 상담할 때 우리 아이는 선생님 복이 있나 봐요,라고 말했다. 담임은 학기 초부터 하루에 3번 발표하기, 포스트잇에 수학 문제 한 개씩 풀고 가기 등의 규칙을 정해줬다. 딸은 발표를 겁내 하기 때문에 3번이라는 횟수가 크게 다가왔는데 선생님은 한 마디라도 하면 발표라고 했다. 너도나도 대답을 하고 딸도 분위기에 자연스레 따라갔다. 어느 날, 내게 와서는 말했다. 엄마 발표 3번이 모자라서 자꾸 하고 있어. 처음엔 힘들었는데 지금은 몇 번을 했는지 기억도 안 나, 라며 웃었다. 

 반장선거 때도 그랬다. 딸은 부반장 후보를 등록했다가 취소하기를 반복했다. 담임은 잘 생각해보고 할 수 있으면 도전해보는 것도 좋겠다고 말했다. 선거 당일날도 괜찮으니 준비되면 나오라고 했고, 딸은 말할 거리를 준비해서 갔다. 결론적으로는 떨어졌다. 몇 표 받았는지가 나오기 때문에 의기소침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담임은 떨어진 아이들을 불러서 씩씩하게 앞으로 나서는 용기를 칭찬하셨다. 작은 학용품 한 개를 선물로 주면서 용기상이라고 했다. 아이는 집에 와서 말했다.

 -내가 왜 떨어졌는지 모르겠고 속상하지만 선생님이 내가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칭찬해주셨어, 그래서 괜찮아.




  임시 담임선생님은 원래 체육담당이었다. 아이는 매주 보긴 했지만 익숙하지 않다고 했다. 

 처음에는 선생님이 코로나에 걸린 것이 아닌지 걱정을 했다. 코로나였으면 너희들도 검사받으러 갔을 거라고 말했다. 다음날 하교한 아이가 쭈뼛대며 말을 했다.

 -친구들이 화장실에서 이야기하는 거 들었는데, 담임 선생님이랑 A엄마가 전화로 싸웠대. A가 학교에서 뭘 했는데 그 이야기를 하다가 A엄마가 화가 나서 선생님한테 뭐라고 했대. 그래서 안 나오시는 거야.

 아이의 말을 듣는데 참 마음이 아팠다. 어떤 일이 일어났다 한들, 혹시나 선생님에게 문제가 있었다 해도 옳지 않은 일이었다. A엄마가 통화하는 걸 A가 옆에서 들었거나 엄마가 A에게 전달했을 가능성이 높다.  둘 중 하나가 아니라면 다른 아이들 입에 오르내릴 이유가 없었다. 

 일주일이 지났지만 학교 측에선 별다른 공지가 오지 않았다. 전화를 걸어 물어보니 담임 선생님은 당분간 병가를 냈고, 새로 선생님을 뽑고 있으나 임시 선생님이 담임으로 쭉 갈 확률이 높다고. 원래 담임선생님이 다시 오더라도 체육을 맡아서 할 것 같다고 했다.




 -엄마, 나 꿈을 꿨거든? 수업 중에 한 교시를 담임 선생님이 맡은 거야. 그래서 좋았어. 선생님 보고 싶어. 잠깐이라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엄마도 그래. 선생님 좋으신데 아쉽네. 진짜 보고 싶었구나. 꿈에 나올 정도면.

 지금으로써는 A엄마가 원망스럽다. 얼마나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으면 선생님이 급작스럽게 병가를 낼 정도로 일을 키운 걸까. 담임 선생님의 실수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일을 키워서 이런 상황을 만든 것에 대한 책임을 따져 묻고 싶었다. 

 딸은 아직 바뀐 선생님에 대한 적응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일주일째 학부모에게 오던 알리미도 오지 않는다. 다들 답답한 마음으로 기다리고만 있다. 

 얼마 전에 근처 동네에서 큰 사건이 벌어졌다. 어린이집 원장이 자살했다는 뉴스였다. 학부모는 맘 카페에 허위글을 올리고, 원장님에게 찾아가 큰 소리를 냈다고 한다. 학부모가 난리를 치고 난 뒤, 원장은 목숨을 끊었다. 

 사람의 말은 참 무섭다. 주워 담을 수 없으니 꼭 생각하고 말하라고 하지만 툭 튀어나온 말을 후회하는 경우도 많다. 학교에서는 학폭 사건 이후로 카톡은 기록에 남으니 웬만하면 쓰지 말라고 교육한다. 문자든 전화든 뭐가 다를까. 문자는 기록에 남고, 곱씹어 볼 수 있으니 자신을 위해 조심하라고 하지만 전화는 상대를 위해 주의해야 한다. 말, 말투, 억양, 분위기 등이 한데 합쳐지면 사람을 나락으로 떨어트릴 수 있다. 특히 대면했을 때는 표정이나 몸짓까지.

 

 나는 원래 말을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최근 들어 더 그렇다. 나도 모르게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할까 봐 걱정된다. 무의식적으로 나온 말이라도 상대에게 뼈가 되지 않으라는 법도 없다. 요즘은 사람을 만나도 되도록이면 귀만 열고 앉아있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네, 정도의 말만 하려고 한다. 그 말 중엔 가시도 많았다. 상대는 알까, 아니면 일부러 찔리라고 말했을 수도 있겠다. 

 남을 지적할 만큼 당신은 잘 살았는지, 상처를 주면서까지 얻고자 하는 일이 뭐가 있는지, 상대를 바닥으로 떨어트리고 무엇인가를 가지면 행복한지를 먼저 생각해보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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