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남은 음식, 사놓고 잊어버린 식재료로 꽉 차 있던 냉장고에 빈틈이 생겼다. 자가 격리하며 가장 좋은 일은 쌓아뒀던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토요일에 장을 봐 놓긴 했지만, 그 이후 배달을 시킨 적이 없다. 하루 두 끼 겨우 챙겨 먹고살았는데 약을 먹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세 끼를 모두 먹게 된다. 딱히 입맛이 돌진 않아서 의무감에 먹는 것뿐이다. 배달음식을 먹을까, 했는데 그다지 맛있어 보이는 건 없었다. 오히려 쓰레기만 잔뜩 나오니 차라리 냉장고에 쟁여 놓았던 음식을 먹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요리는 귀찮지만.
코로나19가 막 시작되었을 때 사람들은 약국마다 줄 서며 마스크를 샀다. 마스크 사재기도 심했고 한참 줄 서서 겨우 몇 개씩만 사던 날이 있었다. 나는 단 한 번도 마스크를 사려고 종종 거린 일이 없었다. 약국에서 줄을 서 본 경험도 없다. 성인 마스크는 남편 회사에서 나왔고, 아이 마스크는 집에 조금 남아 있던 걸로 버텼다. 밖을 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마스크도 별 필요가 없었다. 사람들은 어떻게 그러냐고 하지만 나는 괜찮았다. 아이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아번 격리도 그랬다. 생각보다 괜찮다. 아마 혼자였다면 만족도 100%였을 거라고 확신한다. 집에 있어도 할 일이 많다.
오늘은 아이 도움을 받아 꾸러미 재료를 결정했다.
초 1, 2학년 수업 때 쓸 준비물을 골라야 하는데 초4인 딸이 옆에서 골라준다. 재미있어 보이는 만들기나 재료, 갖고 싶은 것을 고르면 참고해서 물건을 산다. 나는 아이들을 많이 지도해봤지만 어쨌든 어른의 눈이기 때문에 아이의 조언이 중요하다. 딸이 좋아한 활동은 다른 아이들도 대체로 좋아한다. 이 부분은 설명이 더 필요해, 만들기가 이해가 안가... 등의 의견도 준다. 덕분에 재료 쇼핑을 끝냈다.
아이도 심심하다고 짜증 부리다가 역할을 부여하니 투정이 쏙 들어갔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었는데 쉬어가는 시간을 잘 활용하고 있는 것 같아서 좋다.
코로나19 주요 증상(인후통)과 약 먹고 난 뒤의 몽롱한 기운이 몸 곳곳을 파고든다. 배는 부르고 집 안은 따뜻한 데다가 약을 먹으니 축축 늘어지기만 한다. 그래서 머리 쓰는 일이나 창작은 못하겠다. 대신 자기 전 브런치를 쓴다. 글을 쓰는 동안에도 눈은 끔뻑거린다. 어제도 그랬듯이 글을 쓰고 나면 바로 잠이 들 지경이다. 한동안 글에서 멀어졌던 시간을 반성하느라 의무감에 쓰긴 쓰지만 나중에 읽어보면 대체 뭔 말인가 싶을지도 모른다.
남편 회사에서 구호 물품이 왔다. 나라에서도 안 주는 걸 회사에서 준다며 좋아했다. 컵라면, 즉석밥, 김, 3분 카레, 생수, 물티슈, 소독 티슈, 뿌리는 소독액, 소독겔, 치약 칫솔, 핸드워시 등 다양한 물품이 왔다. 원래 주지 않았다가 주는 걸로 바뀐 뒤 남편이 1호란다. 내일 아침은 3분 카레!
집에 카레 가루가 있는데 해먹을 엄두가 안 나서 꺼내지 않았다. 오늘 아침은 레몬롤케이크와 요구르트+검은콩가루, 라테 한 잔으로 때웠는데 내일은 밥을 먹어야겠다.
졸리다.
하루 세 번 약을 먹으니 약기운이 가시질 않는다.
책이라도 읽어야 하는데 글 쓰는 동안 몇 번이나 잠들 뻔 한 걸 봐서는 안 되겠다. 브런치에 끄적이는 글 한 편으로 만족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