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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챠챠 Apr 12. 2022

아빠의 부모님

끄적끄적

늦은 밤, 누워 있다가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몸을 일으켰다.

다음 날 오후 소설 수업을 들어야 하는데 쓰질 못 했기 때문이다. 아침에는 서부권 회의를 가야 해서 밤이 아니면 쓸 시간이 없었다.


책상에 앉았다. 갑자기 낙서가 하고 싶어서 작은 스케치북을 꺼내 그림을 그렸다. 동그란 나무 문을 열면 계단이 나오고, 강가가 있던 곳이다. 언제 갔더라. 작년 11월이구나.

아무 생각 없이 끄적이는 시간이 필요했다. 대충 그리고 색을 칠했다.

아마 나는 문을 열고, 지금 서 있는 자리와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싶었나 보다.


잠시 동안 색깔 있는 낙서를 하고 나니 글이 생각났다. 컴퓨터를 켜고 소설 한 장을 썼다. 그리고 메일을 보냈다.

나는 작가님께 글에 집중할 수 없어 죄송하다고 덧붙였다. 늘 내가 이럴 때마다 작가님이 해주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을 들으면 무거웠던 마음이 편해진다.

 

작가님과 이야기를 하면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신기해서 작가님께 말한 적이 있다.


오전 내내 회의를 하고 오후에 소설 수업을 들었다. 커피에 의존하면서.

이순원 작가 <아비의 잠>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아빠 생각이 났다. 아빠는 어릴 때 부모님과 헤어졌다며 한 번도 자세히 이야기해준 적이 없다. 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끄집어내고 싶지 않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느껴졌다. 엄마는 아빠의 생년월일도 정확하지 않다고 흘리듯 말했다.

아빠는 술에 취하면 한숨을 푹푹 내쉬며 구슬프게 노래를 불렀다. 탄식에 가까운 노래에 부모님이라는 가사가 나올 때쯤, 아빠의 한숨은 더욱 깊어졌다.

골목에서부터 집에 들어올 때까지 멈추지 않은 노래를 얼마나 자주 들었는지 잊을 수 없다. 하지만 노래가 끝나도 덧붙이는 말은 없었다. 내 바람이 무색하게 돌림노래처럼 이어지거나 엄마의 푸념이 반복됐다.


남편이 내게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나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장인어른이 딸들에게 그런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으 신가 봐,라고 말하기에 나는 캐묻지 않았다.

나에게 말 못 하는 아빠의 마음을 지켜주고 싶었다. 몇십 년간 아빠가 꾹꾹 눌러 놓은 마음을 나의 알량한 호기심으로 깨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 깊이 담아둔 이야기를 듣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더라도 일부러 꺼내진 않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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