촘촘
"선생님 반응은 한 4분의 1만 받아들여요."
내 글을 본 R이 소름이 돋는다며, 너무 좋다고 극찬을 했다. 내 반응을 굳이 표현하자면 뜨뜻미지근, 애매모호란 단어가 어울린다. 모든 일에 비슷하게 평정심을 유지한다. 의식하고 감정을 조절한다기보다는 어지간한 일에는 크게 동요하지 않는 편이다. R은 모든 에너지를 쏟아 상대를 칭찬한다. 말을 듣다 보면 가끔 그녀가 말하는 누군가가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착각에 빠지곤 한다.
한창 글을 배우던 때, 서로 글을 봐주던 모임이 있었다. 합평시간이 되면 분위기가 냉랭했다. 합평을 할 때는 객관적으로, 날카롭게 이야기해 주는 사람이 참 고마운데 아무도 그 역할을 자처하지 않았다. 답답함을 못 견디는 내가 나서서 이야기하고, 다들 눈치 보다가 한 마디씩 얹다가 끝나 버리곤 했다. 지금은 내 글을 객관적으로 봐 달라고 말할 곳이 없다. 글을 쓸수록 외롭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R에게 글은 객관적으로 봐줘야 한다고 말했다. R은 또 에너지를 뿜어내며 자신은 글작가가 아니라 독자니 주관적으로 봐도 된다고 답했다.
오늘은 그림을 그렸는데, R이 또 칭찬 시동을 걸었다. R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면, R 앞에서 그림 그리는 사람마다 작품을 탄생시키고 있었다. 내 그림을 보고도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내가 예전에 잠깐 그림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는 말을 기억했는지, 배웠던 티가 난다고 했다.
"아니, 나는 선생님 말을 4분의 1만 들을 거예요."
"마음대로 하세요."
R은 공적인 자리니, 자기 위치에서 할 말을 한다고 했다. 맞다. 가르치는 입장에서 더더욱 할 수밖에 없는 칭찬이었다. 나는 다시 내 그림을 봤다. R의 말 중에 4분의 3을 덜어내고, 남은 조각으로만 따져봐도 영 수준에 못 미치는 그림이다.
내 그림을 날카롭게 지적했더라면 외롭지 않았을까. 그림 속에는 높은 책상 하나, 의자 둘, 블라인드가 반쯤 내려간 전면 창문이 그려져 있다. 창문 아래 빈 벽 한편에 그림 설명을 적었다.
"책, 책상, 의자만 덩그러니 놓인 텅 빈 공간에 혼자 앉아 있고 싶다. 되도록이면 한 낮, 나뭇잎이 반짝거리는 날이면 좋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으면 더 좋겠지."
수업이 끝나고 강의를 이끈 R, 오랜만에 강의를 들은 나도 피곤함이 몰려왔다. 뭐든 조각내는 삶이나, 온 힘을 쏟아내는 사람이나 어렵긴 매한가지다. 세상 참 쉬운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