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mony
경로당에 앉아 있는데, 작은 도서관에서 사람들이 찾아왔다.
시니어 대상 6회 교육이 있다며, 신청하라고 했다. 생소한 이름인 '미디어 리터러시'강의란다. 그게 무엇이냐고 물어볼까 하다가 꾹 참았다. 어쩐지 장황한 설명이 이어질 것 같고 젊은 사람들의 말을 따라가다 놓쳐서 곧 헤맬 것이 뻔했다. 평소에 불편한 일을 종종 겪고 나니 상대방이 말을 할 때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하는 편이 가장 괜찮은 방법이란 걸 깨달았다.
"요즘 가짜뉴스가 많이 떠돌아다니잖아요. 어떤 게 진짜고 가짠지 알아내기가 힘들어요. 그런 내용 알려드리는 교육이에요. 경로당에서 점심 식사하시고 같이 도서관으로 내려오세요. 간식 드시면서 강의 들으시면 돼요."
옆에서 종이를 내밀기에, 얼떨결에 이름과 연락처를 적었다. 날씨가 더워서 밖에 다니기도 힘들고, 매일 가는 노인정에서만 시간을 보내기도 지루하던 터에 잘 된 걸지도 모르니까.
일주일에 한 번, 수요일 2시에 도서관에 갔다. 교육이 아니었더라면 아마 나는 도서관에 발을 붙일 일이 없었을 거다. 내 평생 책을 손에 제대로 잡아본 일이 없다. 먹고 사느라 바빠서, 아버지가 학교에 제대로 보내주지 않아서 공부를 못한 게 한이다. 다 늙어서 후회해 봐야 소용없다. 나 어릴 땐 다들 그러고 살았으니까 못 배운 것이 부끄러운 줄 모르고 지냈다. 그런데 이제와 자꾸 움츠러든다. 세상이 자꾸 바뀌어서 나를 당황스럽게 만든다. 식당에 가서 음식을 주문하려는데, 사람 대신 기계 여러 대가 있으니 낯설어서 숨이 막힐 지경이다. 집 앞 가게 몇 곳은 아예 주인이 없다. 무인가게라나. 핸드폰도 자식들이 답답해할까 봐 들고 다니는데 가끔 먹통이 되면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그런 내가 책상에 앉아 젊은 선생에게 강의를 듣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어찌 됐건 시작한 일 한 번도 빠짐없이 참석했다. 갈 때마다 웃으며 반겨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더더욱 마음이 갔다.
몇 번을 갔는지 모르겠는데 벌써 수업 마지막날이라고 한다. 처음 보는 사람이 찾아와서 어르신들이 참 열심히 참여한다면서 칭찬했다. 칭찬이라니, 어색하지만 어쩐지 기분이 좋다. 수업에 빠지지 않고 참여한 일 밖에 한 게 없는데 잘했다니.
도서관 선생님이 앞에 서서 이름을 한 명씩 부르더니 상장을 줬다. 왼쪽에 개근상, 오른쪽에 수료증이 꽂혀 있었다. 그 아래를 보니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난생처음 있는 일이다. 하루에 상장을 두 개나 받았다. 상 이름 중 하나가 '개근상'이라고 적혀 있는 걸 보니 심장이 벌렁벌렁하다. 국민학교를 다닐 때 할아버지가 일 손 모자란다고 학교 다니지 말라고 했던 말이 가슴에 콕 박혀서 지금까지 떨어진 일이 없다. 학교 대신 논밭으로 나가는 일이 허다했던 때, 도시락 들고 학교 가는 아이들을 보며 속앓이 하던 어린 시절 내 모습이 아른거린다.
나이 여든 넘어 받은 상이라 더 소중하다. 개근상이 나에게 오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 평생 이런 날이 올 줄 모르고 살았는데 조금 근사해진 기분이다. 다음에 또 누군가 내게 교육을 들으러 오라고 말한다면 두 번째 개근상을 위해 도전하련다. 처음보다 가뿐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