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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챠챠 Jun 27. 2023

달팽이 줍기

S


저는 남편과 아침 일찍 산책을 자주 하는 편이에요. 이상하게 새벽 4시만 되면 눈이 떠지거든요. 주말도 마찬가지고요.  직장 생활하는 남편은 주말 아침 일찍 생활하는 게 싫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제시간에 맞춰서 움직여줘요. 둘이 길을 걷다가 벤치에 앉아서 커피와 케이크를 먹으며 대화를 나누기도 해요.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죠.


밤에 비가 온 뒤면, 남편은 일찍부터 산책길을 나서요. 비가 온 뒤에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다면서요. 축축한 땅을 이른 시간에 일부러 걷는 이유가 있어요.


오늘처럼 새벽에 비가 온 날이면 작은 달팽이들이 밖으로 나와요. 날이 더울 때 어디 있었는지 모를 달팽이들이 비가 내리면 일제히 길 위에 모습을 드러내잖아요. 느릿느릿 기어 나와 넓은 땅을 하염없이 기어가더라고요. 대체 어디를 가려는 걸까요.


우리 동네에 달팽이가 많이 이동하는 통로가 있거든요. 남편이 길을 건너는 달팽이를 다 주워서 흙으로 돌려보내줘요. 


달팽이가 모습을 드러내는 만큼, 사람의 발에 밟혀 죽는 경우가 많아요. 무심결에 걷는 사람의 신발에 깔려 죽는 거죠. 인기척이 들린다고 해도 피할 수 있을 정도로 달팽이가 빠르지도 않고요.

달팽이 입장에서, 기껏 나왔는데 다시 땅으로 돌아가는 걸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요. 그러지 않으면  죽어버릴 확률이 높으니 매번 달팽이를 주워서 옮기죠.


아까 걸어가다 보니 지렁이가 보이더라고요. 달팽이나 지렁이, 비가 오면 꼭 보이잖아요. 느린 데도 불구하고 밖으로 나오죠.

달팽이는 집을 잡아 올리면 되는데, 지렁이는 그럴 수 없잖아요. 길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주워서 집게처럼 잡고 지렁이를 집었어요. 두리번거리다가 습기가 많은 곳을 찾아서 지렁이를 놓아줬어요.


저희 엄마는, 길에 꽃을 심는 걸 즐겨하셨어요. 꽃을 누군가는 꽃을 보고 좋아하지 않겠냐는 마음이죠.  저는 강의를 하면서 수강생을 대할 때 베풀려고 노력해요. 시간을 내어 제 강의를 들으러 오셨으니 저는 그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달팽이를 줍거나 누구를 위해 꽃을 심거나 지렁이를 옮기는 일, 나와 관계된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 모두 종류가 다른 베풂이에요.

저는 제가 하는 일이 언젠가는 다시 돌아올 거라 믿어요. 그래서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드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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