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지지 못하는 이 영화에 대하여 #번외
안녕하세요. 기존에 제 연쇄 리뷰를 구독해주신 분들이라면, 조금은 낯선 글이 될 것임을 미리 예고드립니다. 그래서 이건 번외로 잡았어요. 평소 리뷰보다는 편하게, 글로 전해볼까 합니다. 이 글로 저를 처음 보신 분들이라면, 저는 이미 4편의 <헤어질 결심> 리뷰를 발행했었고, 그걸 보시면 더 풍부하게 제 감상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을 먼저 전해드립니다. 그리고 연쇄리뷰는 제가 이 영화와 헤어지지 못하는 그 순간까지 매주 계속됩니다.
GV는 보통 Guest Visit을 뜻합니다. 7월 30일. 태양이 작열하는 가운데, 용산 CGV 15관에서 정서경, 박찬욱 본인들이 등판하는, GV가 열렸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진행되기 때문에, 저는 결국 그 영화관에서 헤어질 결심을 10회 관람하는 영광(?)을 누렸어요.
GV의 특성상 모더레이터가 계셨는데, 김세윤 작가님이셨습니다. 일단 그 가운데 기억에 남는 문답도 많았지만 특히 진행을 정말 말끔하게 잘하시더군요. (물론 저를 질문자로 지목해주지 않으셔서 살짝 서운하긴 했습니다.) 특히 GV 빌런을 적절하게 차단하시는 말씀으로
"이 영화 감상은 깊은 바다에 버려요. 깊게 빠트려서 나조차 못 찾게 해 주세요. 그리고 질문은 단일한 문장으로 부탁합니다." (일동 웃음)
영화 초반에 흥행성적이 잘 나오지 않자 이렇게 박찬욱 감독님께 문자를 보내셨다고도
"관객이 파도처럼 덮치는 영화가 있고, 물에 잉크가 퍼지듯 들어오는 영화가 있다" (일동 웃음)
지금 생각해도 정말 좋은 센스. 그리고 사실 실제로도 이 영화는 그러했습니다. 아마 많은 이 영화의 팬들에게 충격적인 소식은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한다는 기사였을 겁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도 이 영화를 아마 재관람까지만 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아름답고, 심지어 재밌고, 다양한 감상과 디테일이 살아 숨 쉬는, 그러면서 미스터리하기까지 한 이 영화가 그렇게 되는 걸 제 자신이 용서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뒤로 이 영화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결국 10회 차까지 보게 되었네요. 물론 볼 때마다 다르게 보이는 힘이 있었기에 그것도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사전 조사를 해보신다며, 처음 본분 손들어 달라. 이런 식이었는데요. 그냥 절차를 간소화해서 5회 이상과 10회 이상 손을 들어 달라는 물음에 그 자리에 손으로 헤아릴 수 없는 숫자가 손을 드는 광경은 정말 좋았습니다. 다들 아마 저와 비슷한 마음이 아니셨을까 해서, 혼자서 이상한 위로를 받았던 순간입니다.
박찬욱 감독님이 서두에서부터 이 영화의 애정이 있는 팬들에 대한 흐뭇함을 숨기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 기쁜가요?
(일동)네
저도 기쁩니다
가장 재밌는 반응과 리뷰는 어땠느냐는 질문에
"한산"에 달린 댓글이 재밌던데... (일동 웃음) 하면서 관객들 모두 빵 터지며 본격적인 GV가 시작이 되었죠.
시작부터 박찬욱-정서경의 톰과 제리 같은 콤비의 입담에 정말 즐거운 GV였고, 각본을 쓰는 게 쉽다는 논쟁부터, 어떤 대사를 누가 썼느냐에 대한 귀여운 싸움. 서로가 서로에게 말하는 그런 틱틱거림 속에 숨겨져 있는 깊은 신뢰와 꼿꼿한 그 무엇인가가 참 듣는 내내 많은 이들을 웃음 짓게 했습니다.
인상 깊었던 부분만 부분적으로 전해볼게요.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정서경 : 서래가 원래 진짜 외할아버지랑 피가 섞이지 않았고, 외할아버지가 엄마를 입양해서 키웠다는 설정이 있다. 그것에 대한 추궁을 하니, 피보다 우리가 같이 항일 운동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니냐. 내가 누구보다 이 땅에 살 자격이 있다. 라며 받아친다. 이 설정이 그대로 영화에 있었다면, 이 여자가 실체가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었겠다. 그래서 빠져서 아쉽다. 그리고 편집에서 없어졌지만, 물고기가 다른 할머니의 집에도 있다. 그리고 각 집에 그런 새와 물고기에게 먹이를 주는 모습이 서래가 사람을 죽이기도 하지만 다른 무엇인가 살리는 것의 이미지를 주고 싶었던 게 있다.
박찬욱 : 이삼십 년 전에 구상했던 단편영화에서 가져온 아이디어. 서사는 없지만, 한 남자가 산에서 구덩이를 파서 여러 가지 기계장치를 이용해서 설치하는 과정이 영화의 전체 내용이다. 그래서 구덩이 안에서 기계를 작동시키면, 바로 잔디가 있는 흙덩어리가 덮으면서, 감쪽같이 풀밭으로 변해버리는, 세상에 아무 흔적 없이 소멸되는 자살의 방법에 대해서 구상을 한 적이 있다. 그 머릿속에서 잊혀 있다가 헤어질 결심 결말을 생각하다가 몇십 년 만에 생각해낸 방법이고, 지금의 결말이 기계장치를 사용한 것보다 자연의 힘. 파도의 힘이라 더 자연적이어서 마음에 든다. (다른 부분 이야기하다가) 서래는 해파리가 되었을 것 같다 무게 없이, 부드럽게 유영하는 영혼이나 정령 같은 존재가 되었을 것이라고 탕웨이와 같이 생각했다.
박찬욱 : 아까 좋아하는 대사에서 빼먹은 게 있다. 바로 호신이 "우리 사이 괜찮은 거지?" 할 때 서래가 "사이는 됐고, 이사나 가자." 제가 아주 각별히 좋아하는 대사다. (일동 웃음) 서래 같은 한국어가 서툰 사람이 그 생각을 했을 때 얼마나 흐뭇했을까 하는 생각에 내가 흐뭇해진다. 그리고 저는 이제 내일모레면 미국으로 1년 반 정도 떠나기 때문에, 이사나 가려고 합니다. (일동 웃음, 아쉬움)
정서경 : 이 시나리오가 시나리오안에서 끝나지 않고, 관객들이 의미를 완성해주어야만 하는 영화라 생각했다. 사랑한다는 말의 의미를 결국 깨닫지 못했다면, 의미가 없었을지도. 하지만 어떻게 이렇게 관객들을 그렇게 까지 믿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의 의미를 완성해줬고, 그런 서로를 믿을 수 있는 관객들이 있어서 너무 행복하고 감사했다.
GV 행사 마지막 말씀이 참 좋았는데요. 김세윤 작가의 말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영화를 관람할 때 나 자신이 심판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내가 포수라고 생각하게 된다. 든든한 포수가 있다면, 창작자들이 던진 좀 낯선 궤적이나 새로운 투수의 새로운 공도 잘 받아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여기 있는 정말 이 영화를 여러차례 본 관객들이 그러한 포수 같고, 또 이 두 분이 마운드에 섰을 때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라는 말이었습니다.
이 영화의 팬이었다면, 꼭 보았어야 했을 GV 였고, 본 제 자신이 매우 행복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만 그 감동을 가지고 갈 수 없어서, 기억을 짜내어 진심어린 후기를 전해봅니다.
앞으로도 제가 쓸 <헤어질 결심> 연쇄 리뷰. 기대해 주세요. 아직 못다한 이야기가 너무나 많네요. 다음 리뷰 #5 <헤어질 결심> 사랑은, 사랑이 아닐지도 는 금주내에 발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