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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부인 Jun 09. 2021

아빠와 코미디 프로그램

 아빠는 마흔두 살에 돌아가셨으니, 지금의 내 남편보다 어리다. 남편을 보며 그 맘 때의 아빠를 떠올려 본다.

 아빠는 엄하고 무서웠다. 국 속의 파를, 밥 속의 콩을 골라내던 나를 얼마나 혼내셨는지, 불같은 호령 소리가 기억난다. 아빠가 안방에서 팔을 괴고 누워 ‘유머 1번지’라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며 낄낄 웃고 계신다. 그 모습이 낯설고 신기했다. ‘아빠도 저렇게 웃으시는구나.’

 남편은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어느 날은 일 생각이 멈추지 않아 애써 다른 것을 한다. 잘 쉬지 못해 아프기도 해서 일과 쉼을 구분하려 애쓴다. 그런 날, 내가 즐겨보는 코미디 빅리그 영상을 함께 보자고 권한다. 그냥 한번 웃고, 때로는 실없는 농담에 무거운 생각을 털어버리자고.

 아빠도 그랬을까. 그렇게 웃으며 복잡한 생각을 내려놓고 쉬고 계셨던 걸까. 내가 살가운 딸이라 같이 보며 함께 웃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가족 모두 황망히 장례식장을 지켰다. 어린 남동생은 슬퍼하는 엄마를 웃게 해 드린다고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었다. 삼일 내내 장례식장에 있으며 오가다 틀어진 티브이를 본 적이 있다. 그때 나오는 코미디 프로그램에 나도 모르게 실소를 터뜨리고 당황하며 얼마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모른다. 큰 슬픔마저 순간 잊게 하는 코미디 프로그램, 복잡한 생각에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 잠깐 틀어주어 함께 웃어 본다면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남편과 딸의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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