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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부인 Jun 13. 2021

광화문과 첫사랑


 토요일,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친구들을 만나러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전업주부가 주말에 외출하는 일이 많지 않아, 설레는 마음 한가득이다. 아이들과 해야 할 일을 몇 가지 이야기하고, 점심은 사 먹으라 했다. 어떤 날에는 카레를 한 솥 끓여주고 나올 때도 있지만, 날도 더운데  셋이 즐겁게 외식하는 것을 적극 권했다.  

1년전, 광화문에서 친구랑 만나고 돌아가던 길

 광화문에서의 약속은 첫사랑을 떠올리게 한다. 남편은 연애 후 줄기차게 묻는 첫사랑이 누구냐는 질문에 나라고 대답한다. 정말 이 말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도 꿋꿋하게 첫사랑이 남편이라고 말한다. 첫사랑의 정의가 그렇다. 처음 느끼거나 맺은 사랑. ‘맺은’에 주목하면 남편과 내가 서로 첫사랑이라는 고백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처음 느낀 사랑이라면, 조금 달라진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의 나는 긴 방황을 마치고 신앙심과 더불어 마음에 사랑이 넘쳐났으니 길가에 핀 꽃에서도 사랑을 느꼈다. 국어 선생님을 좋아했고 가수 솔리드의 팬이었고 기타 치는 교회 오빠를 흠모했다. 첫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 대상은 너무 많다. 야간 자율학습이 지치는 날에는, 서대문에 있는 학교라 걸어서 광화문 교보문고에 갔다. 첫사랑 담임 선생님은  “배가 아파서요.”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조퇴증을 써주시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국어 선생님이었다. 부지런한 걸음으로 도착해, 좋아하는 책도 보고, 어느 날에는 작가의 사인회에 줄을 서기도 했다. 야간 자율학습을 빼먹는 작은 일탈이었지만, 서점에서 큰 죄책감을 느낄 리 만무했고 즐거웠다. 힘이 되었다. 그래서 광화문은 첫사랑 같은 장소다. 내가 느꼈던 무수히 많은 사랑의 감정이 추억으로 있는 곳이다. 맺어진 사랑은 없었던 시절이다. 짝사랑이고 동경일 뿐이었으니 애틋하게 부를 추억의 사랑노래도 없다. 그저 사랑이 많던, 누구라도 사랑하고 싶었던 어린 내가 있다.

 친구들과의 이야기는 장소를 옮기며 꽤 오래 이어졌다. 돌아가신 할머니 이야기에 눈물을 보이는 친구 때문에, 우리도 울었다. 그리고 무슨 이야기로 웃었던가. 정말 많이 웃었는데. 오랜만에 만나 할 이야기가 많았다. 만나면 어김없이 나오는 우리가 처음 만난 중학교 시절 이야기는 반복해도 새롭고 반가울 뿐이다. 왜 똑같은 이야기를 또 하냐고 면박을 주는 친구도 없다.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 잔치를 벌였다. 다섯 시간, 우리의 엉덩이는 결코 가볍지 않다.

썬드라이드 토마토 플랫브레드@멜팅샵 치즈룸


 친구들과 만나고 돌아온 내게 남편이 묻는다. “발목  아파?” 새로  구두라 뒷발목이 쓸려 빨갛게 상처가 났다. 몰랐다. “아픈 줄도 모르고 신나게 돌아녔네. 헤헤이제야 따끔따끔 아픔이 느껴진다. 연고도 바르고 밴드도 붙였다. 오늘의 외출을 되새기듯 조잘조잘 남편에게 이야기하다, “어머, 내가 말이 많았?” 하니 “아니. 나도 너의 친구들을 만나고   같아서 좋아. A 보고 B 만난  같아.”하며 웃어주는 나의 첫사랑,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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