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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부인 Jun 10. 2021

 전업주부, 초라한 마음은 사양합니다.

 남편의 학회 일정을 보다 낯익은 이름을 보았다. 남편의 발표 이후, 두 번째 세션의 발표자다. 초등학교 친구다. “K 교수가 되었단 소리는 들었는데, 이렇게도 보니 반갑네.” 다른 중학교를 다녔지만 같은 학원을 다녀서 종종 보았던 남자 아이다. ‘그때 같이 열심히 공부했는데...’ 저녁식사를 준비하러 부엌에 들어가는데 기분이 가라앉는다. 쪽파를 다듬어 자르고, 토마토와 청경채를 적당한 크기로 썬다. 계란도 넉넉하게 꺼내 풀어놓는다. 먼저 올리브유에 파를 넣고 볶다  토마토와 청경채도 볶아 따로 놓고 계란 스크램블을 해서 합친다. 다른 프라이팬에 구운 베이컨도 잘라서 얹어 계란 토마토 볶음을 완성하며 작아진 마음을 달랜다.

 남편은 공부를 하다 머리가 복잡해질 , 나를 부러운 듯이 본다. 그러면 나는 쏘아붙이듯, “, 나는 편하긴 하지. 살림은 몸이 힘들지, 머리가 아프진 않아. 그런데  대신에 사회적 지위가 없잖아!”라고 대꾸한다. 전업주부라지만 주부의 직업적인 면은 무엇으로 내세울  있을까. 가정을 지탱하는데 주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직업을 묻는 칸에는 없음을 쓰는 초라함을 감내해야 한다. 오늘의 저녁식사를 차리고  먹은 그릇을 치우고 하루를 정리한다. 잘하고 있다, 내게 주어진 일이다, 초라할 것이 없다고  자신을 다독인다.

  딸아이가 설거지하는 나에게 속삭이고 간다. “엄마, 아빠 머리 잘랐어? 빙구처럼 보여.” 직업 있는 남편도 빙구처럼 보이는 것을 피할 수 없구나.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토마토계란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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