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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부인 Jun 18. 2021

금요일 밤, 외롭고 속상하다.

 

  직장을 다닌다면 금요일을 맞이하는 기분이 다를까. 오늘따라 가족들 사이에서 외롭고 속상한 전업주부는 반짝반짝 빛이 나는 ‘금요일 밤’을 상상할 뿐이다. 요즘 계속 부딪히는 사춘기 딸과 아침부터 실랑이를 벌였더니 기운이 쑥 빠진다. 중요한 발표를 앞둔 남편이 느끼는 압박감은 나에게도 전해지니 힘들다. 그저 우리 집 막내만 해맑게 웃는다. 속상한 마음으로 집안일을 하다 보면 문득 내가 남에게 했던 위로의 말이 생각난다. ‘이렇게 내 앞가림도 잘 못하면서 무슨 말을 했던 거니?’, 부메랑처럼 돌아오는, 내가 위로라고 건네었던 어리석은 말이 떠올라 괴로워진다.


 


                                   강


                                                  황인숙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천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 치치 말자.


 

정재찬의 그대를 듣는다(휴머니스트, 2017)에서 이 시를 읽고 충격이었으나 동시에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나에게는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친구에게 전화하여 나의 속상함을 토로할 때도 분명 있다. 그러나 오늘 같은 날은 가만히 서서 생각하게 된다. ‘누구에게 이야기하여, 그 누구에게 또 다른 어려움이 되지 말아야지.’하는 작은 배려심마저 생긴다. 그래도 어딘가 내 슬픔을 말할 ‘강가’로 가야 한다.


 새로 산 책을 펼쳤다. 정세랑 작가의 여행 에세이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위즈덤하우스, 2021)는 기대 이상으로 내 마음을 즐겁게 했다. 이렇게 멋진 표현이라니, 연필로 조심스럽게 줄을 그으며 읽었다. 몇 번이고 읽었던 한 부분이다.

“ ……피곤할 때 헐겁고 즐겁게 나오는 웃음들이 쏟아졌다. 인생  최고의 소풍이었다. 언젠가 다시 그런 소풍날을 만날지 몰라도, 그날 그 멤버는 아닐 것이기에 마음속 선반 좋은 자리에 놓아둔다.”(96p.)

  

친구와의 약속으로 신나는 금요일 밤을 보내지는 못하지만 내게도 소풍 같던, ‘마음속 선반 좋은 자리’에 있는 만남이 있었음을 기억한다. 친구들과 맛있는 것을 나누어 먹고 마음을 나누며 웃고 울던 시간들이 있다. 이 재밌는 표현에 기대어, 선반 속에 진열해둔 추억들을 떠올리며 가족들의 저녁식사를 차렸다. 외롭고 속상한 금요일이었지만 좋은 책이 친구가 되고 작가의 멋진 표현이 반짝반짝 빛나 내 마음 받아주는 강이 되었다. 조용한 금요일 밤, 더 이상은 외롭거나 속상하지 않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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