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외출, 물먹은 솜뭉치 같은 발걸음을 내딛는다. 몇 주전부터 잡은 약속, 일 년 만에 만나는 반가운 얼굴들 그리고 익선동에서의 만남이라니 날아가도 모자랄 만큼 신난다. 그러나 구석구석 나의 손길을 기다리는 집안일을 그대로 두고 나가는 길이여서, 어제 아빠에게 혼난 둘째가 생각이 나서, 또 안경을 잃어버린 첫째에 대한 고민으로 어깨 위에 작은 짐들이 쌓인다. 기울어지는 나의 어깨를 안 봐도 알겠다. 약속이 잡혔으면 그 전날 좀 더 부지런히 집안일을 했어야지, 둘째가 아빠에게 혼나기 전에 엄마가 잘 돌봤어야지, 첫째가 자기 물건을 잘 간수하게 가르쳤어야지 등등 모든 문제에 나의 부족함이 있다. 익선동 골목을 찾아가는 길이 낯설어 무거운 마음이 더욱 움츠러든다.
종로3가역 6번 출구, 고운 옷차림의 그녀들을 만나니 고민도, 걱정도 여름 소나기 같은 웃음소리에 날아간다. 좁은 골목,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고깃집을 지나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길이 나온다. 카페 외벽이 생화, 조화로 가득하다. 익선동 한옥거리에 한 발, 두 발 들어가며 마음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니 오늘의 걱정일랑 접어 둔다. 분명 웃으며 이야기했는데 중간중간 거의 울뻔했다. 내 마음을 알아주고 격려해주는 다정함에 한 번, 힘들었던 일도 거뜬히 이겨낸 다부진 그들의 이야기에 또 한 번 말이다.
마음에 드는 책을 읽을 때, 속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친구들을 만날 때, 진한 마음의 울림에 고개가 숙여진다. 맛있는 태국 음식도 먹고, 진한 커피 한잔 마시며 그들과 시간을 보내었더니 나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솟는다. 기죽고 움츠러들었던 나는 온 데 간데없고 한껏 어깨를 으스대며 익선동 거리를 나선다.
집으로 돌아와 부엌에 선 나의 발은 흔들리지 않고 고정되어 있다. 책을 읽으며, 좋은 시 한 편을 옮겨 적어보며 좋은 사람들을 만나며 나의 발은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다시 현실에 발을 붙이려면 작은 집안일부터 시작한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발을 꼭 붙이고 야채를 작게, 작게 썬다. 호박도, 당근도, 양파도 썰고 옥수수도 세워 놓고 알알이 자른다. 야채며 고기도 볶고 찬밥까지 함께 볶아주면 볶음밥 완성이다. 둘째의 숙제를 봐주고 모자란 부분을 채워준다. 첫째와 앞으로 어떻게 물건을 소중히 간수할지 이야기한다. 안경은 책임을 지는 뜻에서 용돈에서 조금씩 갚기로 했다.
작게, 조금씩 매일 주어진 일들을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새 점점 가벼워지는 어깨를 툭툭 털고 있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