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돌아오는 길, 아파트 앞 큰 횡단보도를 다 건넜을 무렵이다. 둘째 아이가 학원에서 돌아올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어 뒤를 돌아보았더니 건너편 횡단보도 앞에 아이가 서 있다. 열 살 남자아이가 춤을 추듯 머리 위로 두 손을 흔든다. 이 더운 날에도 지치지 않았는지 통통 뛰면서 손을 흔드는 아이를 보니 나도 반가워 같이 손을 흔든다. 개업한 가게 앞에서 춤추는 풍선인형 같다. 멀리서도 웃고 있는 아이의 얼굴이 보인다. 외로운 마음을 하늘로 날려버린다. 신호를 기다리며 바라본 하늘에는 외로움이 쌓여 있는 구름이 가득하다. 누군가에게 이렇게 반갑게 인사한 적이 언제인가.
고등학교 때, 다른 학교에 진학해 한동안 못 만난 중학교 친구를 길에서 우연히 만난 적이 있다. 꽤 거리가 있었는데 나를 알아본 친구가 큰 소리로 이름을 부르며 손을 흔들었다. 지나가는 사람이 많아 조금 부끄럽기도 했지만 크게 손 흔들며 반갑게 다가오는 친구가 참 좋았다. 우연히 만나서 더 반갑기도 했다. 오랜만에 약속을 하고 만나는 친구라고 덜 반가울 리 없다. 약속시간에 나타난 친구가 큰 소리로 웃으며 반갑게 인사할 때, 조금도 부끄럽지 않았다. 그 반가움을 표현할 수 있는 친구가 자랑스러웠다. 반가움을 크게 표현하는 친구 때문에 한번 더 웃을 수 있었다.
무더위에 지쳤는지, 반복되는 일상에 감정이 메말랐는지 아이들의 말에 무덤덤하게 대꾸하고 뒤돌아 후회하곤 한다. 진지한 대화에는 눈을 마주치고 조용히 들어주는 것도 좋다. 신나는 일에는 한껏 흥을 실어 대답해주고 싶다. 난센스에 한창 재미가 붙어 열심히 질문하는 둘째 아이에게 박진감 넘치게 대답하리라. "가장 권투를 잘하는 나라는?" 묻는 아이에게 조금 뜸을 들이고 외칠 것이다. "칠레!"라고.
그리고 여름이 끝나갈 무렵, 친구와 약속을 하고 만나는 그날에, 약속 장소로 걸어오는 친구에게 손을 높이 들어 흔들 것이다. 춤추듯 친구를 열렬히 반기고 싶다. 외로움은 하늘 높이 올라가 구름 한 점 없는 가을 하늘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