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아야, 이 닦았니?",
"개어놓은 빨래 중에 네 것 있으니까 가져가.",
"책가방은 다 싼 거지?",
"아, 우유는 다 마셨니?"
수아는 두서없이 계속 질문을 하는 엄마를 황당한 얼굴로 쳐다본다. 사실 같은 질문을 두 번씩 했으니 한 번에 하나씩 하고 있던 딸은 짜증이 났다. 수요일 저녁이라 그랬다. 운동 수업이 늦게 끝나 돌아온 딸아이가 늦게 잠이 들까 마음이 급했다. 초등학교 저학년은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등교를 하고 고학년은 목요일, 금요일 등교를 하니 챙겨야 할 것이 많은 고학년 딸의 등교 전날은 조급해진다. 그리고 한 주의 중간, 조금씩 피로가 쌓이는 날이다. 오늘 출근을 하지 않은 남편 덕에 부엌은 삼시세끼 분주하게 돌아갔고 아직 설거지가 조금 남아 있다. 아이들 방 불을 다 끄고 잠깐 망설임 끝에 못다 한 일은 내일로 미루고 나도 방에 들어왔다.
“아 몰라. 정리를 다 못했어. 엉망이야. 그래도 내일 할 거야. 나도 책 좀 읽어야겠어.”
“그래, 그래. 오늘 세끼 맛있는 음식이 나왔잖아. 그럼 된 거지!”
남편은 설거지는 잘 안 해주지만 이 말도 안 되는 따뜻한 위로로 나를 안심시킨다. 그래, 식구들에게 일단 따뜻한 밥을 먹였으니 다행스러운 하루였다고, 또 핀잔 대신 칭찬을 해주니 고마운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단조로운 일상에 지치는 나에게 300년 전에 살았던 로렌스 형제가 건네주는 말을 귀 기울이고, 새로 산 귀여운 표지의 에세이를 읽으며 허둥거리던 나를 잠잠하게 다독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