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걸 아주 좋아한다. 먹성도 좋고 가리는 음식도 없다. 어렸을 때 친척 어른들 사이에 껴서 홍어를 집어 먹는 날 보고 이모는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한다. 밥도 참 복스럽게 먹어서 음식해줄 맛이 난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 말 중 하나다.
한번은 초등학교 2학년 때 급식으로 크리스마스 즈음 스파게티와 케이크처럼 평소에 잘 안나오는 특식이 나오는 날이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그때부터 등교 전에 그 날 식단부터 확인했던 나. 아침부터 너무 신나 점심 시간만을 기다리며 수업 시간에 엉덩이가 들썩거렸었다. 그때만 해도 급식차를 각 교실마다 끌고 가 담임 선생님과 학생들이 돌아가며 배식을 했던 시절이었다. 드르륵 옆으로 미는 낡은 나무 문이 열리고 거대한 스테인 급식차가 교실 앞 교탁 옆으로 주차됐다. 집에서 챙겨온 수저통을 잽싸게 가방에서 꺼내 순서를 기다렸다. 오래 전이라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아마 들뜬 들숨과 날숨이 옆 책상 짝꿍에게까진 들리지 않았을까. 내가 앉은 줄의 순서가 됐을 때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을 하얀 실내화로 쉭쉭 가르며 급식차 앞에 섰다. 스테인 급식차만한 키의 아이들의 스테인 급식판을 한껏 높이 들어 배식을 받는다. 컨베이어벨트처럼 반찬을 하나씩 받을 때마다 옆으로 착착착 옮겨간다. 선생님이 한 손으론 비닐장갑을 끼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노오란 급식 스파게티면을 한 웅큼 밥칸에 넣어주시고 다른 한 손으론 큰 국자로 잘게 다진 고기가 볼록볼록 보이는 토마토소스를 면 위에 덮어주셨다. 밥칸 옆을 쥐고 있는 손에 기분 좋은 온기가 퍼져 입꼬리가 올라갔다. 급식차 끝쪽에선 알록달록한 조각 케이크를 받았다. 작고 네모난 한입용 케이크가 아니라 부채꼴 모양의 어엿한 한 조각이었다. 크리스마스라고 형광 빨간색 형광 초록색 알록달록하고 촌스러운 생크림 장식들이 올라간 초코케이크였다. 살짝 굴곡이 있는 중간 반찬칸에 받은 케이크가 넘어지지 않게 조심히 실내화 앞꿈치를 꾹꾹 밟아가며 자리로 돌아갔다. 초등학교 2학년때 받은 급식을 왜 이렇게 상세하게 기억하냐고? 인간은 애타게 바랬지만 끝내 가지지 못한 것을 두고 두고 기억하고 후회하곤 한다. 수저를 들고 어떤 것부터 먹을지 행복한 고민을 하다가 스파게티면과 소스부터 섞어놓고 면 몇가닥을 집어올렸다. 급식 스파게티면의 유형은 (지금까지도), 면 한 가닥마다 기름칠을 했는지 집자마자 포크 사이로 후루룩 빠져나가는 유형, 또는 받을 때부터 퉁퉁 불어 한번 들어올릴 때 뭉친 덩어리로 올라오는 유형으로 나뉜다. 이 날은 전자였고, 자꾸만 포크 틈 사이로 빠지는 면 때문에 집자마자 입으로 넣을 수 있는 최단 거리까지 급식판에 코를 박았다. 그게 화근이었다. 너무 가까이 코를 박았는지 첫 면발이 입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오른쪽 콧구멍으로 빨려들어갔다. 하필 그때 숨을 들이켰나보다. 입으로 들어가기 전에 숨을 먼저 들이켰던 것이다. 그 면이 길었던 걸 다행으로 여겨야할진 모르겠지만, 콧구멍 바깥으로는 코털처럼 아주 짧게만 들어난채 코에서 목으로 넘어가는 구간에 턱 걸려버렸다. 숨을 조심히 들이키면 살짝 더 안쪽으로 빨려들어갔다가 다시 숨을 내뱉으면 앞쪽으로 나오기를 반복, 기름칠한 면발이 시소처럼 콧구멍 안에서 왔다갔다했다. 인간은 2-3초에 한번씩 숨을 들이키고 내뱉는데, 그 2-3초가 돌아올 때마다 공포스러웠다. 지금은 '흥!'하고 코를 풀어버리면 될 일이지만 그땐 이 면발이 기도를 막아버릴 것만 같아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렇게 등교 전부터 점심만을 손꼽아 기다렸던 나는, 첫 숟가락에 면을 입 대신 코로 넣어버려 결국 한 입도 못먹은채 교실 앞 커다란 스테인 음식물 통에 손대지도 못한 음식들을 부어버리고 가방을 챙겨 울면서 집으로 갔다. 그땐 초등학교 저학년이라 밥을 다 먹으면 알아서 각자 집으로 하교했었는데, 이제 막 모두가 시끌시끌하게 먹기 시작했을 때 적막한 운동장을 가로질러 집으로 향했다. 숨이 차면 큰일이니 최대한 조금씩만 숨을 쉬며 뛰지도 못하고 종종 걸음으로 집에 갔던 것 같다.
스파게티 해프닝은 내가 평소보다 일찍 집에 와서 깜짝 놀랐다가 이내 사태를 파악하고 깔깔 웃으며 세면대에서 코를 흥! 시켰던 엄마의 도움으로 허무하게 해결됐다. 겁에 질려있던 그때 나의 얼굴을 엄마는 요즘도 종종 놀린다. 그럼 나는 그때 한입도 못먹고 버린 스파게티와 크리스마스 케이크가 아직까지도 너무 아깝다고 진심으로 안타까워하곤 한다. 안타까워하다가도, 그때부터 참 먹을 것에 열과 성을 다했던 내가 스스로 웃기기도 하다.
최근에 좋아하는 작가님의 신간을 엄마와 언니에게 추천해줬다. "책 이제 다 읽었는데 이 사람 되게 너랑 비슷한 사람같아. 좀 사소한 행복 잘 느끼고 그런거?" 다 읽고난 후 감상평은 작가님과 내가 좀 닮았다는 것. 특히 사소한 것에 행복하고 그걸 본인도 알아 소중히 잘 다룬다는 것이 닮은 것 같다했다. 나는 작은 것에 슬퍼하기도 하지만 또 작은 것에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먹는 걸 아주 좋아하는 나는 삼시세끼마다 행복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삼시세끼 1시간전마다. 어린 왕자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난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거야." 식사하기 1시간 전부턴 벌써 코끝에 맛있는 냄새가 나는 것 같으면서 기분 좋은 행복감이 몸을 휘감는다. 방문을 살짝 열어두면 주방에서 챱챱챱 야채 써는 소리, 보글보글 찌개 끓이는 소리, 쉭-하고 밥솥이 뜸들이기를 마친 소리가 어우러져 들리는데, 그 시간은 질리지도 않고 늘 좋다. 식당에 가면 다 맛있어보이는 메뉴판을 보며 짧은 고민에 빠졌다가 주문을 하고 옆테이블에 서빙되는 음식들도 슬쩍 훔쳐보고, 시킨 음식이 내 앞에 놓일 때까지 조잘 조잘 수다떨면서 기다리는 그 시간도 역시 매번 설렌다. 언젠가 별 생각 없이 "엄마, 식욕이 별로 없는 사람은 슬플 것 같아. 이렇게 하루에 세 번은 확실히 행복할 수 있는 걸 놓치는거자나!" 라고 한 말에 엄마가 너답다며 피식 웃었었다. 큰 행복엔 그만큼 크게 기뻐하지만, 작은 행복도 놓치지 않고 행복해하는 건 살면서 아주 유용한 무기다. 좋은 일이 나에게만 한 개도 없는 것 같은 날, 세상이 나에게만 가혹한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지는 날에도 기억에 남지 않을 정도로 작은 것에 잠깐이나마 기분이 좋아지는 순간은 분명 있다. 그런 작은 것들을 흘려보내지 않고 꼭 잡아 놓으면, 순간적인 기분을 내가 조절할 수 있게 해주는 아주 몇 안되는 무기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식욕과 식탐이 많은 자들이여, 본인을 돼지라고 자조하지말고 확실한 세번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시길.
식욕이 없고 입맛 없는 날엔 어떡하지..싶지만 그럴 일은 지금까지를 생각했을 때 미래에도 거의 없을 것 같다. 글을 쓰다가 잠깐 시계를 보니 오전 11시 4분! 점심이 1시간 정도 남았다. 어김없이 행복이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