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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연 Apr 03. 2023

겨울 옷을 정리하며


이제야 4월인데 벌써 벚꽃잎이 떨어져 바닥에 꽃길을 만들어놓았다.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 아니던가. 이례적으로 빠른 벚꽃의 개화와 빠른 져버림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벚꽃을 볼 수 있는 시간은 늘 아주 잠시동안이었지만 이번에는 그 시기도 예상치 못하게 다가와 더 빠르게 스쳐 지나간 느낌이다. 매년 똑같이 피는 벚꽃을 반가워하고 설레하는 이유는 예뻐서도 있지만 너무 찰나여서도 있겠다.



지난 주말은 너무 더워서 여름까지 빨리 오는건가 싶었다. 4월 1일에 최고 기온 24도라니, 만우절 기념으로 날씨까지 장난을 친다. 

평소에 추위를 정말 많이 타는 편이라 남들보다 빠르게 그리고 뒤늦게까지 수면 잠옷을 입고 잔다. 히트택은 거의 피부의 일부라고 보면 된다. 11월부터 4월까지 히트택을 입으니 일년의 반은 내복 생활을 하는 셈이다. 그런 나도 히트택을 진작에 벗어 던졌다. 

봄과 가을은 직장인들의 주말처럼, 통장에 '잠시 머문' 월급처럼 스쳐 지나가는 존재인걸까. 보내줄 준비가 아직 안됐는데 이미 뒷모습부터 보이는 것들. 누가 시계태엽을 빨리 감기라도 한 건지 벚꽃의 바통을 넘겨 받아 여름도 빠르게 달려오고 있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때,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갈 때, 그렇게 1년에 두번 옷 정리를 한다. 집에 창문이란 창문은 다 열어두고, 옷에서 나오는 먼지가 상당하니 하얀 마스크도 껴줘야한다. 마스크를 쓰고 옷 무덤을 헤집고 다니면 흡사 출장 나온 세스코 직원같기도 하다. 

두껍고 부피가 큰 겨울 옷들은 상자에 넣어주고, 얇은 봄여름 옷을 꺼내 옷장에 걸었다. 옷걸이에 걸어 행거에 걸어주니 가벼운 옷들이 찰랑거린다. 손등으로 가볍게 옷을 밀면 옷걸이들이 쉭쉭 옆으로 밀린다. 

여름 옷은 겨울 옷보다 훨씬 더 많이, 촘촘히 걸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여름 옷들은 얇아서 서랍에 개어 넣으면 꼭 몇몇 옷들은 여름 내내 있는 줄도 모르고 못 입고 있다가 정리할 때가 되어서야 발견하곤 한다. 그러니 양이 많아도 되도록이면 행거에 걸어주어야 무슨 옷이 있는지 파악도 잘 되고 골고루 입어줄 수 있다. 

홑겹의 옷들을 나름대로 블라우스, 셔츠, 티셔츠, 등등으로 묶어 분류해놓았다. 물론 이 분류는 여름이 끝나갈 때쯤 다시 보면 어김없이 뒤죽박죽으로 어지러져있지만, 처음 정리할 땐 꼭 이렇게 해줘야 정리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어떤 해는 색깔 별로 구분할 때도 있다. 얼추 무지개색 그라데이션처럼 쭉 배치해주고나면 보기에도 예쁘다. 양 끝에 흰색과 검은색 옷의 비중이 해마다 커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매년 두 번의 대대적인 옷 정리를 하면서 사람 마음이 이렇게 잘 바뀐다는 걸, 그리고 버림의 미학을 느낀다. 불과 반년 전에 상자에 넣어줄 땐 내년에도 입을 거라 생각해서 잘 개어 넣었을 텐데 그새 마음이 바뀌었다. 옷 입장에선 한 계절 잘 쓰이다 고이 개어져 상자에 들어가있었을 뿐인데 나와보니 쓰레기 봉지로, 기부함으로 가는 것이 억울할 것도 같다. 같이 버려지는 옷들 중엔 몇년 째 아까워 품고는 있었지만 도저히 손이 가질 않아 이젠 놓아준 것들도 있다. 큰 마음 먹고 거금을 들여 샀지만 생각보다 그저 그래서, 어떻게 잘 입어보면 되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아쉬움에 계속 쥐고 있다가 결국 다른 주인을 찾아가는 옷들. 유행은 돌고 돈다지만 이건 절대 다시 유행하지 않겠다 싶은 것들. 재유행한다한들 내가 다시 입을 자신은 없는 것들. 추억의 옷이지만 그렇게 추억을 다 안고 살기엔 옷장이 미어터질 지경이라 이젠 보내줘야하는 것들. 


언니는 그렇게 이번 옷정리에서 15년 전 언니의 첫 프롬 드레스를 버렸고, 가장 큰 사이즈의 쓰레기봉투로 총 네 개의 봉지가 꽉꽉 찼다.


정리를 다 끝내고 손을 탁탁 털며 현관 문 앞에 쌓인 봉투를 보고 있노라면 이젠 정말 신중히 옷을 사야겠다며 다짐을 하면서도, 묘한 쾌감이 밀려오기도 한다. 

쓰지 않는 물건을 이만큼이나 옆구리에 끼고 살았구나 싶어 마치 옆구리살이 움푹 빠진 기분이다. 몸 구석 구석에 쓸모없게 껴있는 지방들을 탈탈 털어낸 것만 같다. 물건을 버렸을 뿐인데, 늘 몸까지 가벼워지는 기분이 들어 고된 옷 정리가 끝나고 나면 희열을 느낀다. 

이래서 미니멀리즘을 하나. 버리고 덜어냄은 물리적인 무게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무게도 가볍게 해주는 것 같다. 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남은 것들이 선명해지기도, 소중해지기도 한다. 앞으론 정말 좋은 옷을 조금만 사서 잘 관리하면서 오래 입어야겠다, 다짐하곤 한다.



하지만 이미 예전부터 여러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희화화됐던 것처럼, 정말로 옷장을 열면 입을 옷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몸에 걸칠 것이 아예 없다는 뜻이 아니라 이 바지와 잘 어울리는 셔츠가, 이 셔츠에 꼭 맞는 가디건이 없다는 뜻이다. 그렇게 하나씩 어울리는 것들 찾아 다시 스멀스멀 사다보니 미니멀리즘의 다짐은 매번 다짐으로 끝난다. 

분명 미니멀리즘은 맥시멀리즘보다 훨씬 어렵다. 이고지고 모든 걸 끌어안고 사는 것보다 나에게 더 이상 필요하지 않는 것들과 필요한 것들을 구분해 전자는 미련 없이 보내주는 것이 더 힘들다.



잠시 샛길로 새자면, 이건 비단 옷 정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가끔 너무 많은 것들을 끌어안고 살려고 해서 그게 독으로 돌아올 때가 있다. 옷장이 터져 나올 때까지 방치해두다 결국 옷 무덤에 파묻히는 것처럼 불필요한 것들까지 놓치 않고 있다가 그게 결국 우릴 질식하게 만든다.


모든 걸 매번 이분법적으로 '필요' 라는 잣대로 나눌 순 없지만, 적당할 때 보내줘야하는 것들이 있다. 

모든 사람이 날 좋아할 수는 없으니 내가 노력해도 자꾸 제멋대로 엉키는 관계라면 잘 놓아줄 줄도 알아야한다. 모두에게 잘 하려는 건, 모두에게 사랑받으려는 건 가능하지는 않을 뿐더러 오히려 다 무너지는 결과만 가져온다.

기억력이 좋은 건 삶을 더 편리하게 해주지만, 가끔은 망각도 필요하다. 적당히 잊고 살아야 건강하다. 뇌에 힘을 주고 모든 기억을, 감정을 다 꽉 쥐고 있으면 미쳐 돌아버릴 수도 있다. 


쓰다보니 미니멀리즘은 중요한 삶의 철학 같다. 수많은 '-이즘(ism)'들이 있지만 이건 잘 붙들고 있으면서 마음에 새기고 싶다. 옷 정리를 하다가 닿은 생각 치곤 꽤 거창해서 글이 길어졌다.






다시 옷으로 돌아와, 스티브 잡스처럼 극단적인 패션 미니멀리즘 말고 어떻게 적당한 미니멀리즘을 유지할 수 있을까. 크지 않은 단출한 옷장 하나에 다 들어가는 옷들로 이렇게 저렇게 조합해가며 입는 (하지만 매번 그 조합이 예쁜) 모습을 꿈꾼다. 여름 옷을 꺼내놓긴 했지만 천천히 더워지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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