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쓰고 나니 또 한 번 실감이 난다.
딱히 유행에 민감한 사람이 아닌데, 대퇴사시대에 발맞춰 나 역시도 '퇴사했습니다'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게 되었다.
최근 직장 관련된 글을 하나 올렸었는데, 사실 그건 몇 개월 전에 써놓고 저장만 해두었던 글이다.
처음에는 적응하는 게 힘들었고, 일이 익숙해지는 게 힘들었고, 일이 익숙해진 후엔 사람에게서 오는 스트레스를 견디는 게 힘들었다.
그러다 이 모든 게 조금씩 무뎌졌을 시점에, 아이러니하게도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다.
생각해 보니 괜찮아진 게 아니라 건강하지 않게 무뎌졌던 것 같다. 일을 할수록 전문성이 쌓이기는커녕 자존감이 떨어지고 스스로의 모습을 사랑해주지 않게 되는 것을 그냥 그대로 둘 수 없었다.
퇴사는 생각보다 정말 정말 정말(!!) 큰 용기가 필요했다. 너도 나도 퇴사를 한다니 쉬운 줄로만 알았는데, 막상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아도 어쨌거나 매달 따박 따박 통장에 꽂히는 월급이 주는 안락함은 무시할 수 없었다. 아무리 쥐꼬리만 한 월급이어도 결심하는 그 순간에는 그 한 푼이 아까워 마음이 오락가락했다. 돈만 걱정되는 것도 아니었다. 안정적인 직장은 호기롭게 나가는 순간 나는 이제 더 이상 돌아갈 곳이 없다. 조직은 안에 있을 땐 답답해 죽을 것 같지만 나오면 그만큼 튼튼하고 견고한 곳이 없다. 실패해도 돌아갈 수 있는 곳을 늘 마련해 두고 안전한 길로만 다녔던 나에게 이번 결정은 어찌 보면 나답지 않은 무모한 일이다. 좋게 말하면 용기 있고, 나쁘게 말하면 대책 없는 거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내가 조직을 떠나 나 하나 먹여 살릴 1인분을 할 수 있을까, 막연한 두려움이 자꾸만 제동을 걸었다.
그렇지만 '너 한번 사는 인생 이렇게 살래? 너 이렇게 정년까지 다니면 후회 없을 것 같아? 행복할 것 같아?'라고 스스로 물었을 땐, 자다가도 벌떡 깨서 완강한 NO를 외칠 수 있었다. 이대로 내 젊음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마음속으론 이미 늦은 것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컸지만, 인생을 길게 보면 아직 새파랗게 어린 나이이기 때문에.
그리하여! 남들처럼 일하다가 마음의 병이 온 것도, 건강이 안 좋아진 것도 아니지만, 나는 나를 너무 아끼기 때문에 퇴사했다.
머리 싸매고 고민한 게 민망할 만큼 퇴사를 말하고 난 이후의 절차는 생각보다 아주 간단하다.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사직서를 상사 책상에 탁 던지고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하고 싶었는데.. 현실은 여전히 사무실이고, 침침한 눈으로 모니터 앞에서 때굴때굴 눈만 굴리고 있다.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눈만 깜빡이고 손가락만 움직일 뿐 도저히 살아있다고 느껴지지 않아 마음을 괴롭혔던 이 시간이, 이제는 나온 이후를 도모하기 위한 예열의 시간이 되었다. 2월 중순경까지만 현 직장을 다니기로 했고, 그때까지 하던 일들은 모두 잘 끝내놓고, 인수인계까지 하면 이제 자유의 몸이다. 그토록 바랬던 자유인데, 추위에 맨 몸으로 나온 기분에 마냥 신나지만은 않다. 똥 싸러 들어갈 때랑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는 게 이런 건가. 그래도 불안함 사이사이에 기분 좋은 설렘이 조금씩 피어오른다.
한번 사는 인생, 모험 한 번쯤은 해봐야지! 내 인생을 책으로 낸다면 아마 이야기의 큰 변곡점 중 하나가 바로 지금일 것 같다.
이 결정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줄진 모르겠지만, 퇴사를 강행하냐 마냐의 고민 속에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오빠가 해준 말이 있다.
유튜브를 보다가 누군가 한 말이었다는데, 인생은 수많은 선택들의 연속이고 그 선택이 옳은 선택인진 알 수 없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그게 잘한 선택이었음을 입증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밖에 없다는 것. 해도 후회할 것 같고 안 해도 후회할 것 같을 땐 가끔 질러보는 것도 괜찮다. 최선을 다 하면 그걸로 충분히 값지고 무언가는 남기 마련이니까. 올 한 해는 좋아하는 일이 잘하는 일이 되도록 열심히 공부할 예정이다. 그 과정에서 몰랐지만 사실은 내가 좋아하고 있었던 또 다른 무언가를 발견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벌써 좀 신이 난다.
앞으로 글들도 많이 올리게 될 것 같다. 말이 좀 많은 편이니 잘 봐주셔요.
인생 배팅 함 가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