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글, 퇴사 후 내 일상의 전부다.
아침마다 책을 읽고, 그에 한참 못미치는 글을 일주일에 꼭 두번은 써서 올리려 노력중이고, 사진을 찍으러 무거운 카메라를 목에 건 채 서울 곳곳을 걸어다니고 있다. 둘다 무언가를 기록한다는 공통 분모를 갖고 있으니, 요즘 나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기록광인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마치 지구 밖 무슨 무슨 행성 무슨 무슨 별에서 온 지구 여행자같이 주변을 둘러싼 것들을 놓치지 않고 뷰파인더 안에 담으려 한다. 멈춰서서 본 렌즈 너머의 풍경은 너무 익숙하면서도 동시에 생경할 때가 있다.
그래서 눈으로 한번, 입으로 한번, 귀로 한번, 코로 한번, 손으로 한번, 오감을 다 작동시켜 미쉐린 평가단처럼 한 장면을 음미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적인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카메라를 들면 한번 더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글 잘 쓰는 사람은 왜이리 많은거냐며 툴툴거리지만 하얀 종이 위 검은색 활자 하나로 마음을 뜨끈하게 하는 작가들의 문장들을 읽고 있으면 그저 경이로워 그 섬세한 문장들을 천천히 느끼기 바쁘다.
옆에 앉은 사람이 일행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눌 때면 이어폰으로 귀를 막지 않고 그냥 조용히 들어보기도 한다. 본의 아니게 엿듣는 모양새가 되지만, 그러다 퍼뜩 떠오르는 생각이 글감이 될 수도 있으니 허공을 응시하는 척 귀는 커다래진다. 때론 방송에 나오는 거창한 이야기들보다 지독하게 현실적인 에피소드들이 마음에 잔향처럼 은은하게 오래 남기도 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어바웃타임에서 마지막 네레이션은 이렇다.
"이제 난 시간 여행을 하지 않는다. 하루를 위해서라도. 그저 내가 이 날을 위해 시간 여행을 한 것처럼 나의 특별하면서도 평범한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며 완전하고 즐겁게 매일 지내려고 노력할 뿐이다."
정신없이 하루를 살다보면 중간 중간 놓치는 소중할 수 있었던 순간들이 있기 때문에 주인공 팀은 하루를 다 지내고 나면 장롱 속에 들어가 시간을 돌려 다시 그 하루를 살았었다. 다시 돌아가 일하는 동안에 나 하나 감당하기 힘들어서 직장 동료에게 미처 하지 못했던 작은 위로의 말을 건네보기도 하고, 가게 점원과 포스기 앞에서의 짧은 대화도 꼭 눈을 맞추며 감사함을 표한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그런 작은 티끌같은 순간들이 모여 우리의 하루를 충만하게, 알알이 채워주기 때문에. 때론 아침부터 바쁘고 지쳐 한껏 예민해진 내 기분을 움켜쥔 채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내어주신 따뜻한 국물과 꼭 닮은 식당 이모님의 말투에 마음이 녹아내리기도 하듯이.
그렇게 매일 하루씩 더 사는 시간여행을 하던 팀은 그 과정에서 시간 여행의 깨달음을 얻는다.
사실은, 시간여행이 꼭 필요하지 않다는 것. 그저 내가 마주한 날을 하루를 돌려 다시 온 것처럼 즐겁게 살면 되니까.
눈 앞의 문제를 잡고 끙끙 거리면 절대 풀리지 않을 것 같다가도,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한숨 훅 뱉고 다시 차분히 문제를 읽으면 의외로 문제의 실마리가 나 여깄소 하면서 손을 들 때가 있다.
그렇게 내 하루도 한 발 물러서서 즐기러 온 사람처럼 관망하면, 내 인생도 꽤 시트콤처럼 웃기고 영화처럼 아름답기도 하며, 일기장에 쓸 문장들처럼 무탈하다는 걸 느낀다.
퇴사 후 하루 24시간이 온전히 내 지휘 하에 돌아간다.
시간이 많아지고, 하는 일의 대부분도 앞에서 말했다시피 기록 또 기록이다보니,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한 걸음 뒤에서 관망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지나가는 아기의 꿈틀거리는 얼굴근육과 엄마의 미소가 눈에 꽂히고 버스 정류장에 앉아있는 할머니들의 청자 없는 각자의 대화가 소음이 아닌 이야기로 귀에 꽂힌다. 버스 아저씨의 빙긋 웃는 눈매가 보인다.
사는 맛 나는 이유는 퇴사해서가 아니라 이런 여유 때문이겠다. 눈에 자꾸 밟히는 것이 있으면 잠시 멈춰서 볼 여유. 어디선가 폭신한 빵 냄새가 나면 오늘 간만에 빵 구울까, 생각할 수 있는 여유.
알록달록한 세상에 무채색인 내가 들어가도 그 색이 입혀지지 않았는데, 이제는 그 색을 온몸에 끼얹는 것같다. 비로소 생기가 돈다. 왜 퇴사 전에 이러지 못했을까.
하루를 쫓기듯이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속도대로 보내는 건 이만큼이나 중요한 일이었다. 하루를 쫓기듯이 살면 혼자 질주하는 자동차처럼 내 손과 핸들 외 그 주변은 뿌옇게만 보인다.
천천히 한 템포씩 늦더라도 내 속도로 가면 여유가 생기고 그제서야 주변을 볼 수 있다. 즐기듯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한 중학교 앞에서 버스가 정차해 밀물처럼 안으로 들어오는 중학생들의 왁자지껄함에 '아 시끄러워..잠은 다 잤네..'하고 눈과 귀를 찡그리듯이 꾹 닫았던 내가, 며칠 전 변성기가 아직 오지 않아 더 시끄러운 중학생 남자아이들의 이야기를 슬며시 듣고 조용히 웃고 있었다.
거창하지만 그 순간 왜인지 모르게 세상에서 동떨어지지 않고 어엿한 한 일원이 된 것만 같았다. 나 살기 바빠 굴 속에 웅크리다가 굴 밖으로 나와 세상에 나앉은 기분. 골방같은 사무실 안에 갇혀 있다가 잠깐 밖으로 나왔을 때 사방에서 들리는 왁자지껄한 대화소리, 경적 소리, 호루라기 소리에 정신이 깨는 것처럼 나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임을 다시금 느낀다.
나에게 너무 매몰되어있었나보다. 세상을 지나치게 1인칭 시점으로만 살았나보다.
나도 모르게 마음에 다른 것들을 들일 수 있는 여유 공간을 만들어주는 이 시간들이 언제 끝날진 모른다. 불안감에 또 어딘가에 황급히 소속되어 다시 직장인이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하루를 돌려 시간여행하는 것같은 지금 이 마음을 꼭 안고 가고 싶다. 여유는 만들면 되니까. 사실은 퇴사 여부가 아니라 결국 마음가짐에 달린 거니까. 어떤 깨달음은 당연해보여도 꼭 찍어먹어봐야 알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