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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J YP Oct 07. 2020

영화 #담보 이야기

롱리뷰, 스포 없습니다

영화 포스터


일단 영화에서 드러난 신들만 보면 ‘담보’는 예고편 (과 개봉 타이밍… 왜 지금 개봉하는지가 예상되는 ㅎㅎ) 보다는 덜 노골적인 신파 영화인 것처럼 보인다. 인물들 간의 만남과 헤어짐을 그리면서 극한으로 감정을 터뜨리는 장면은 잘 없다. 의도만 보면 흘러가는 시간을 통해 자연스럽게 익어가는 감정의 열매를 또르르 굴러 보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 같다.


부녀의 정을 다룬 대표적인 신파 ’ 7번 방의 기적’과 비교하자면 여백이라고 볼 수도, 밍밍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내 의견을 말하자면 윗 문단에 대한 가능성을 인지한다고 쳐도 후자에 가깝다.


일단 살펴볼 것은 성동일 캐릭터다. 성동일은 정말 안 좋은 인간이지만 인간으로서의 최저 하한선은 있기에 그것 때문에 아이를 놓지 못하는 사람일 수도 있었고 아니면 원래 아이와 통할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환경 때문에 위험한 인물 코스프레를 하는 사람일 수도 있었다. 영화 속에서는? 잘 모르겠다. 이 캐릭터의 의중이 뭔지. 영화 자체가 이 ‘캐릭터’를 너무 떠 받들여 주니까. 일단 연기와 연기를 담아내는 촬영 문제다. 너무 앞서 나가서 ‘멋있으려고’한다. 성동일이 멋있게 느껴지는 연기를 하면 안 되는가? 당연히 안 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캐릭터에게 물어다 준 ‘큰 일’을 한 이후에 얼굴에 힘을 빡! 주는 장면은 생경하다. 어떤 느낌을 말하자면 표정에서 나오는 연속성이 없다. 멋있고 말고를 떠나 같은 캐릭터에서 나온 얼굴 맞아? 싶다. 그리고 그 표정을 잡아내는 화면과 뿌리는 타이밍이 심히 ‘짜잔~’스럽다. 이런 태도는 자녀의 장기자랑 중에 지레 앞서 나가 사방팔방 ‘우리 새끼가 우쭈쭈’ 가만있지를 못하는 부모들 같다. 이게 너무 심하면 ‘느그들 한 테나 자식이지…’ 소리까지 나오는데 영화도 아슬아슬하다. 


이런 ‘멋짐’을 담아내고자 하는 순간 이외에 성동일 캐릭터에 대한 묘사는 BADASS 한 아재를 묘사하기 위해 유구한 한국 영상물 역사를 통틀어 여러 번 사용된 ‘찰진 손맛’과 ‘욕설’이다. 문제는 일단 그런 짓 자체가 기본적으로 캐릭터에 대한 호감을 깎는다는 것 이외에도 그런 장면이 ‘무의미’ 하게 영화 전반에 걸쳐 많이 나온다는 것이다. (심지어 ‘웃기기 위한 시도’로서도 비교가 되는 신파 영화에 대해 짜내는 힘이 부족하다 이 점도 전체적으로 절제를 위해 설계된 영화의 톤 인 것 같긴 하지만…)


영화 자체가 성동일을 ‘챙기는’ 인상을 주는 데는 각본 부분도 있다. 이야기가 뻔하고~ 뭐 그런 부류로 가고 싶지는 않다.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영화가 성동일이 벌이는 짓에 필요 이상으로 변명을 해 준다는 점이다. 일수를 뜯고 있지만 말이야 사실은 XX도 많이 해 줬어. 성동일이 꼬마가 싫어해도 굳이 꼬마를 ‘담보’로 부르는 이유는 말이야… 등등 성동일이 아이를 끔찍이 생각하는 것과 별개로 나쁜 사람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아이를 사랑할 자격이 없는 인간이라는 것은 아니다. 사람을 좋아하는데 자격이 있는 것은 당연히 아니니까.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그게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어쩌면 어른 ‘담보’를 묘사하는 부분에서도 그런 시야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뜨거운 사랑을 받았기에 ‘나라에 동량이 되는 인재가 되었습니다?’ 물론 부모로서 뿌듯한 마음이 들 것이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책갈피 같은 디테일로 들어간 부분들이 대부분 이런 틀 안에 갇혀 있으면 갑갑하게 느껴진다. 소녀의 성장 과정에서 어떤 에피소드를 기점으로 시간이 전환되는지, 매개체가 되는 사건이나 매체로 무엇이 나오는지를 본다면… 영화도 인물을 사고하는 방식이 예스럽(?) 다는 것을 분명히 알 것이다. 시대 배경을 그렇게 잡아 놓았다는 것부터가.


다른 조연들은 대부분 자기 분량 안에서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부분들을 한 것이고 다만 김희원 씨에 대해서는 한 마디 하고 싶다. 김희원 씨는 나오자마자 한국 신파 영화에서 어떻게 사용될지 훤히 보이는 역할이다. 하지만 뻔한 것 만으로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단지, 시작부터 역할이 명확하게 고정된 만큼 적어도 그 역할 안에서 충족시켜야 할 하한선은 있었다. 성동일과 츤데레적인 관계로 엮였지만 아무튼 인생에서 손꼽힐 만큼 믿고 의지하는 형, 담보한테는 설사 성동일만큼은 아니더라도 아끼고 사랑하는 삼촌. 그런데 너무너무너무나도 영화 속에서 NPC 스럽게 사용되는 바람에 어떤 장면은 심지어 그런 하한선마저도 느껴지지 않았다. ‘안 그런’ 캐릭터였다 는 게 아니라 아예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은 부분 말이다. (심지어 연기도 힘이 쭉 빠진듯한…)


마지막으로 꼬마 담보, 영화가 꼬마 담보를 다루는 시각은 확실히 다른 캐릭터들과는 다르다. 영화는 몇몇 장면에서 ‘꼬마의 시점에서 어른들의 세계에 던져진 수난’을 그리는데 일단 (아이러니하게도) 등장인물 중 가장 냉혹하게 그려지는 순간이니만큼 정서적으로 밀고 들어오는 파괴력이 장난 아니다. 캐스팅도 좋아서 왜 이런 배경과 성격을 가진 아이인가에 대한 이해가 바로 된다. 다만… 이 분의 노력과는 별개로 영화의 목표가 흘러가는 시간 속에 무르익어가는 과정을 의도했다면 꼬마 파트의 분량이 전체적으로 좀 많게 느껴진다. 정작 성동일이 아이의 진짜 ‘아빠’가 되고 나서부터는 숭덩숭덩 흘러가 버리니까. 


9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이고 디테일한 묘사가 나온다. 너무나도 대표적인 소재를 너무나도 노골적인 방향으로 사용한 감은 있지만 나도 삐삐 같은 물건에 대한 향수에 젖기도 했으니 기본적인 감흥은 있다.


그리고 부산 이야기, 난 영상매체에서 부산이 등장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반대에 가깝지. 근데 이 영화에서의 부산 비중이 좀 묘하다. 물론 다양한 부산 사람들이 나름의 역할을 가지고 연기하는 모습을 보는 게 싫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시작한 이야기고 성동일 캐릭터의 설정도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데 영화의 1/3이 부산과 관련되어 있다면…  과하게 말해서 불청객 같이 여겨지기도 한다. 게다가 마지막 설정은, 이런 식으로 이 설정을 결정적인 한방의 배경이 되는 ‘소재’로 사용하고 마는 것이 옳은 걸까?


영상매체는 소비자의 니즈에 맞춰서 진화한다. K-신파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담보’는 거기에 대한 한 가지 답이다. 다만 나에게는 2020년에 걸맞은 답을 냈다기보다는 2020년 답지 않은 부분을 더 말하려다가 꾹 참은, 공백이 느껴지는 밍밍한 감상으로 남았다. 남은 부분으로 봤을 때 공백을 ‘짜냈’다면 더 안 좋은 쪽으로 느꼈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 같으니 그래도 아주 나쁘게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우려내기 위해 드리운 여백이라는 것은 ‘안 하는’ 것을 하는 것이지 ‘하고 싶은 것’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느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에 어울리는 표현은 그래도 ‘절제’ 쪽이 가깝지 않을까.



<다섯글자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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