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 '취미'가 무엇이냐는 누군가의 물음에 수줍음 없이 '운동'이라고 대답할 수 있게 되면서 건강과 적당한 근육이 붙어있는 탄탄한 몸에 대한 욕심이 커졌다. 마른 몸이 매력적이라고 느끼던 이십 대에는 유산소 운동에만 집중했었다면 여러 번 골골 거리며 체력이라는 것이 삶의 질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 깨달은 뒤에는 근력 운동에 집중했다. 체중은 오히려 늘었고 기존에 헐렁이던 바지 통이 딱 맞을 정도로 허벅지에 근육이 붙었지만 (지방도 함께 붙긴 했다) 어느 순간 지하철 계단이나 아파트 계단을 두 칸씩 올라도 숨을 헐떡이지 않는 내 모습이 기특했다. 건강해야 한다는 목적을 지닌 철저한 계획형 인간답게 일주일에 최소 3회는 적당한 근육통을 느낄 정도의 운동을 하기로 했고 대부분 그것을 해냈다. 삼십여 년을 함께한 이 몸이 홀쭉해졌다가 탄탄해지기도 했다가 짜고 단것에 집착하면 다시 말랑말랑 불어나는 변화들을 겪어보며 내 몸을 알아간다. 동시에 몸이 보내는 익숙한 신호들에 '또 왔구나' 하며 그다지 놀라지 않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예를 들면 관자놀이의 미세한 통증이라던가, 명치의 통증, 먼지가 많은 날 돌아다닌 뒤 느껴지는 목과 코의 따가움들. 하지만 이런 신호를 무시한 채 무언가를 무리하게 추진하면 반드시 몸살이라는, 그동안 쌓아 올린 체력이 무력해지는 고통을 경험한 뒤 시든 식물 마냥 기가 꺾이곤 했다. 후천적인 노력으로 체력을 단련함에도 타고나길 골골대는 몸이어서 그런 이 신호는 꽤 자주 느껴지는데 '요즘의 난 이 정도로 꺾이지 않는 강한 여자야' 라며 무시한 채 종종 무리하게 계획을 이어간다.
지난 주말. 토요일 아침을 운동으로 상쾌하게 시작하기로 한 날이었다. 주말의 아침을 건강하게 시작하는 이상적인 내 모습은 정신까지 탄탄할 것 같았다. 다이어리에도 '토요일 웨이트 + 유산소 꼭!!'이라며 아끼는 보라색 볼펜으로 꾹꾹 눌러 적어놨으니 이건 꼭 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베개에 뉘어있던 머리를 드는 순간 관자놀이가 띵하니 쑤셨다. 다시 침대에 눕고 싶었지만 계획을 세우기만 하고 실행하지 않는 내 모습에 실망하고 싶지 않아 욕실로 가 세수와 양치를 했고 통증이 느껴지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가며 스킨과 로션 그리고 선크림을 발라줬다. 왠지 따듯한 밥을 먹고 두통약을 먹은 채 한숨 푹 자야 할 것 같았지만 오늘은 건강한 하루를 보내기로 계획한 날이기에 주섬 주섬 운동복을 껴입고 헬스장으로 향했다. 내 몸을 잘 안다는 자신감이 아닌 오만함이었던 것일까. 평소보다 낮은 중량의 아령으로 가볍게 운동했음에도 땀이 미친 듯이 났다. 더워서 나는 땀이 아닌 식은땀이었다. 그냥 집에 돌아가려다가 이 어질어질함을 실내의 먼지 탓으로 돌리며 러닝머신 대신 봄바람을 맞으며 공원을 한 바퀴 뛰기로 했다. 오늘의 건강 프로젝트 수행은 반드시 유산소로 마무리되어야 했으므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가며 발걸음을 부지런히 옮겼다. 전 날 휴대폰을 많이 봐서 발생한 두통 정도로 치부하며 공원을 한 바퀴 돈 뒤 축 쳐진 몸을 이끌며 겨우 집에 돌아갔다. 뜨끈한 물로 샤워를 하고 나면 개운해지고 체력이 금세 올라올 것이라는 바람과 달리 오들오들 강력한 오한에 결국 한풀 꺾여 몸살약을 먹고 몸을 쭈그린 채 이불 안으로 스멀스멀 들어갔다. 다음 날 오후가 되어서야 칙칙해진 얼굴로 침실 밖을 겨우 기어 나온 나는 식은땀으로 절여진 몸을 따듯한 물로 닦아내며 몸이 보내는 신호를 철저하게 무시한 대가였음을 받아들였다.
건강이든 인간관계든 일이든 다년간의 경험으로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을 무시한 채 꼭 이렇게 한 번씩 스스로의 뒤통수 팍 때려본다.동시에 얼얼함 속에서 비로소 나라는 존재에 대해 선명하게 파악하게 된다. 평생 나를 안다는 것, 또 내가 아는 나와 바라는 나의 균형을 잡는다는 것이란 늘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