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바뀐 프러포즈

요트 속 낯선 여자의 이름

by 안나

2020년도 7월. 여름이었다.

결혼식을 3개월 정도 남겨 놓은 시점이었고, 우리는 신혼집을 단장하느라 매우 바빴다. 새로운 가구를 들이고,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러 다니느라 정신없었고 더운 날씨 탓에 이마엔 땀이 송글 송글 맺혔다.


그날따라 당시의 남자 친구이자, 현재의 남편인 A는 저녁에 맛있는 걸 꼭 먹으러 가야 한다며, 이만 정리를 마치자며 보챘다.


"그만해 그만. 밥 먹으러 가자!"

"왜?"

"그냥.. 집 정리하느라 고생도 했고, 몸보신이나 하게."


표정에서 모든 게 다 티 나는 A의 얼굴을 바라며, '아, 뭔가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덩달아 나도 신이나 외출 준비를 했고 차에 올라탔다.

더운 날 온갖 짐 정리를 몰아한 덕분에 이마가 지끈지끈 아프기도 했고, 차창 밖으로 비추는 햇빛이 강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렇게 몇 분을 달려 금방 도착한 곳은 한강이었다.


한강에 위치한 식당 중 눈에 띄는 곳에 들어가 피자로 배를 채운 후 잠시 산책을 했다. 한강에 요트들이 둥둥 떠있는 걸 보는 순간 저걸 곧 타겠구나 하는 예감이 당연스럽게 들었다. 내가 너무 금방 눈치를 채자 A는 허탈하다는 듯 요트를 탑승하는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여러 대의 요트가 둥둥 떠있었고, 우리는 그중 한 요트에 안내를 받아 탑승했다.

탑승하면서 나는 핸드폰을 켜고 이 순간을 남기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가장 최적의 필터를 골라내는데 집중하느라 요트에 꾸며놓은 장식을 자세히 보지 못했다.


되어 보이는 남자 직원 둘이 연이어 탑승했고, 우리가 탄 요트는 한강 한가운데로 시원하게 물살을 가르며 달렸다.


우리가 앉은 의자 앞에는 노트북이었던지, 태블릿 PC였는지, 아무튼 어떤 네모난 화면이 있었다.


"안전 수칙 영상 보실게요."

직원의 뻔히 보이는 거짓말에 웃음이 픽 하고 나왔지만, 정성껏 준비한 A와 이들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눈앞에 TV나 드라마에서 자주 보던 프러포즈 영상 속 한껏 멋 부린 글자들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진선아 나랑 8년 동안 연애해주느라 고생했어..'


무언가 잘못되었다.


나의 이름은 진선이가 아니오, 더군다나 우리는 당시 3년이 미처 안된 기간 동안 연애를 한 사이었다. 그런데 8년 연애에 내 사촌, 친척, 친구 중에도 없는 이름인 진선이라니.


"저 진선이 아니에요!"


A 또한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이거 뭐가 잘못된 거 같은데요."라고 말했다.

우리의 어두워진 표정을 본 두 직원은 당황한 기색을 물씬 풍기며 다급한 대화를 나누더니, 새로운 영상을 틀어주었다. 연 이어 나온 영상은 확인사살이라도 하려는 듯, 또 한 번 진선이를 외치고 있었다.


나는 당황스러운 상황에 웃음만 나와 더 이상 내가 진선이가 아니라는 의사 표현 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영상 속 진선이라는 여성분과 그녀에게 이 멋진 프러포즈를 준비한 남성분의 러브스토리를 신중하게 감상할 뿐이었다.

동시에 "이분들도 다른 요트 탄 거 아니야?"라는 엄청난 오지랖도 선보였다.


우리의 해탈한 표정을 바라본 직원들은 누군가와 계속 통화를 하다가, 우리를 바라보고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혼란스러운 요트 주위로 물살이 어지럽게 일렁였다.


"죄송합니다. 다시 돌아가서 다른 요트 타실게요."

직원은 이렇게 말한 뒤 배를 돌려 다시 선착장으로 향했다.


그때부터 갑자기 물살이 점점 거세지면서 나는 뱃멀미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마에선 식은땀이 맺히기 시작했고, 속은 니글거리기 시작했다. 아까 먹은 피자가 목구멍에서 자기를 내쳐달라고 요동치는 듯했다.




선착장에 도착하자 이번에 마찬가지로 앳되어 보이는 느낌의 여자 직원이 사색이 된 얼굴로, 고개를 연신 숙이며 "죄송합니다."를 반복했다.


"아.. 괜.. 괜찮아요."

괜찮다고 말했으나, 사실 나, 아니 우리는 괜찮지 않았다.


프러포즈를 망쳤다는 생각을 하는 중인지 A의 표정 어두워져 있었고, 나는 그 무엇보다 뱃멀미로 고통스러운 상황이었기에 우리 둘의 표정은 각자 다른 의미로 상기되어 가고 있었다.


드디어 내 이름과 우리의 사진으로 꾸며진, 우리가 주인공인 영상이 준비된 요트에 탑승했고, 우리의 요트는 강물을 가로지르며 열심히 달렸다. 해가 진 뒤였고 물살도 세졌기에 요트는 이 전 탑승한 진선 요트보다 더 심하게 흔들렸다.

요트 내부는 꽃다발과 내 얼굴과 A의 얼굴이 가득한 사진들로 꾸며져 있었고, 케이크와 샴페인이 준비되어있었다.


"하하.. 고마워!"

나는 안 좋은 속을 최대한 숨기며 A에게 고맙다고 말했고, 등을 토닥여줬다.

생각해보면 영화나 드라마 속 프러포즈를 받은 여인은 포옹을 하거나 볼이나 입술에 로맨틱한 뽀뽀를 해주는데, 난 본의 아니게 A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해 주는 모양새를 내고 있었다.


"아.. 속상해, 그래도 내가 준비한 거니까 기분 좋아졌으면 좋겠어!"

A는 억지로 웃어 보이며 말했다. 우리 둘은 서로의 썩은 미소를 보며 서로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속상하고 뱃멀미로 속이 안 좋아봤자 열심히 준비한 A 보다 더 하겠어? 한껏 행복하게 웃어주자!라고 다짐했다.


새로운, 아니 원래 우리의 요트를 담당하는 여자 직원분은 당신들의 실수를 만회해보려는 듯 열과 성을 다해 사진을 찍어 주었다. 폴라로이드 사진과 더불어 우리의 핸드폰을 가지고 가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러주었다.


"남자분이 무릎 꿇고 꽃다발을 주실게요!!"

"아.. 이제 괜.. 괜찮.."


우리의 입꼬리에선 경련이 일어나고 있었고, 내 이마에선 식은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흔들리는 요트 위에서 어지러움을 느꼈다. 하지만 그녀는 어떤 어지러움과 뱃멀미도 느끼지 않는 듯 쉴 새 없이 다양한 각도에서 사진을 찍어 주었다.


뱃멀미 중인 나는 요트에서 빨리 내리고 싶어 계속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우리의 요트를 담당하던 그녀는 너무 죄송하기에 더 오래 태워드리고 싶다며 물살을 가로지르며 더 달렸다.


잠시 뒤 물살이 잔잔해졌고 배도 멈추었다. 우리는 한강 위에 나란히 앉아 한강 주위의 각종 불빛과 풍경들을 바라보며 식은땀을 닦아 냈다. 물살이 잔잔해지니 뱃멀미는 차차 줄어들었다.

이제야 좀 요트 위의 행복을 즐겨볼까 하는 순간, 요트는 다시 선착장으로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짧았지만 여름밤공기와 비릿한 강물 냄새를 즐기며 진짜 웃음을 터뜨렸다.




선착장에 도착해 우리가 요트에서 내릴 때까지도 여자 직원분은 미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 그녀의 실수도, 진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녀의 요트를 담당하던 남자 직원들의 실수도 아님을 안다. (처음 명단을 체크한 이의 잘못이었으리라.) 다른 이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땀을 뻘뻘 흘리며 노력한 그녀의 표정에서 진심이 보였기에, 당황스럽고 언짢았던 감정은 다소 누그러졌다. 다음 날 갑자기 억울한 마음이 들어 가슴을 툭툭 치며, "악, 내 프러포즈!"라고 몇 번 한탄을 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선착장에서 기분 좋게 걸어 나와, 잔뜩 풀이 죽은 A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수십 번 해주었다.

당시의 시트콤 같았던 순간처럼, 리 둘이 시트콤 같은 삶을 함께 하길 바란다.

너무 시트콤 같은 건 또 로맨틱하진 않으니 시트콤이 70%, 정극이 30% 정도 비율이면 좋겠지만 말이다.


진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녀와, 멋진 프러포즈를 준비했던 그녀의 남자 친구 (지금은 남편이시려나) 또한 지금 이 순간 행복한 순간을 보내고 있길 바라며, 작년 여름 유람선에서 느꼈던 여러 감정과 울렁이던 뱃멀미를 추억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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