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 신부이지 예비 밥 담당은 아닌걸요

밥 담당을 거부하던 예비 신부가 자발적 밥 담당이 되기까지

by 안나

"행복해?"

2020년도 10월 결혼식을 올린 30대 초반 동갑내기 부부인 우리가 공통적으로 자주 듣는 질문이다.


"장단점이 있지만 잘 지내고 있어."

이 정도의 지나치게 행복을 뽐내지도, 힘들다고 징징대지도 않을 만한 수준의 일괄된 대답을 하곤 한다.


신혼생활 또한 특별한 것보다 삶을 살아가는 과정의 일부이기에 행복할 때도 있고 행복하지 않을 때도 있다. 서로가 행복한 순간을 더 많이 만들기 위해 노력을 하며 맞춰가기에 전반적으로 행복함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다.




약 8개월 남짓한 결혼 준비 기간, 내가 가장 많이 듣던 호칭은 '신부님'이었다.

처음 예식장에 전화를 걸었을 때 세상 친절한 직원분이 내게 "안녕하세요 신부님!"이라며 인사를 건네었을 때부터 결혼식을 치르기 바로 직전인 순간까지 나는 '예비 신부'였다.


설렘만 가득할 것 같았던 예비신부 기간은 생각보다 고뇌의 순간들이 많았다. 결혼 후 내 자아가 사라지진 않을까, 나라는 인간이 결혼이란 제도에 순응할 수 있는 성향일까, 결혼과 동시에 부여되는 여러 역할과 기대를 어느 선까지 감당해야 하는 걸까.


평소의 나는 가족 및 지인들에게 조차 입에 발린 말을 잘하지 못하며, 속마음을 잘 드러나지 않는 '무뚝뚝'에 가까운 성향이었으나 '예비신부'가 되고 스튜디오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반지를 고르고, 지인들에게 결혼 소식을 전하고 어른들께 인사를 드리며 '예비신부' 스러운 수줍고 설레는, 나답지 않은 모습을 보이려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동시에 마음속에선 불안함이 계속 요동쳤다. (물론 자발적으로 설렌 순간들도 존재했다)




예비신부였던 내가 가장 듣기 싫었던 말들은 나에게만 쏟아지던 그놈의 '밥' 걱정들이었다.

결혼 이후의 나는 당연히 밥을 잘하고 간단한 반찬쯤은 뚝딱뚝딱 만들어 냉장고를 잘 채워놓는, 잘 차려먹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뉘앙스의 말들을 여럿 듣기 시작했다. 나도 직장생활을 한다는 걸 망각한 건가 싶어 서운했고 점차 반감이 생겼다.


"과일은 깎을 줄 아니?"와 같은 없던 걱정까지 샘솟게 만드는 불필요한 질문과 걱정들은 마치 '너는 곧 밥 담당 이 될 운명'이라는 주문처럼 들려왔고 점점 나를 옥죄어 왔다.

'밥'이라는 단어 안에서 모든 가사 노동의 주가 내가 되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을 느꼈다. 나는 직장생활과 가사 노동을 동시에 완벽하게 해낼 자신이 없는 인간이었고 누군가에게 밥을 차려주기 위해 결혼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왜들 밥밥 거리는 건지 황당했다.


가장 의지하던 나의 부모님 조차 쉽게 해 먹을 수 있을 반찬, 국 등에 대한 레시피 들에 대해 얼굴 마주칠 때마다 설명해 주셨다. 처음에는 30여 년 평생 주방과 담쌓고 직장 생활만 하던 딸이 잘 챙겨 먹고 다니려나 걱정되셨으리라 생각하며 가볍게 넘겼다지만 어느 순간 서러움이 폭발해 "왜 나한테만 자꾸 밥 하라는 거야, 나도 회사 다녀서 평일에 밥상 차리기 힘들다고!" 며 성질을 내곤 했다.




90년대 극초반 출생의 나는 딸 둘, 아들 하나, 삼 남매 중 장녀였다. 나의 부모님은 절대 남녀차별 적인 언행을 하지 않았고, 모든 자식을 소중하고 평등하게 대해주셨다. 이러한 부모님의 노력 덕분에 20대 초반까지는 남녀 차별에 대한 서러움을 크게 느끼지 않고 성장했으며 나 또한 편향된 사고를 갖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부모님의 울타리를 벗어난 사회생활을 하면서 불합리한 상황들을 목격하고, 경험하기도 하면서 울컥하고 황당함을 느낀 적이 있었지만.)


부모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끔 마주치는 먼 친인척들은


" 네가 빨리 결혼해서 나가 주는 게 부모한테 효도하는 거다. "

" 딸만 둘이었는데 아들 하나라도 낳아서 얼마나 다행이야. "

" 여자 인생 성공은 남자 잘 만나는 게 최고다, 남자 잘 만나야 돼. "


등의 존재를 초라하게 만드는 발언들을 했고, 내 마음속은 그들의 가치관을 거부하며 답답한 감정들과 동시에 이상한 첫째의 책임감으로 채워졌다.


그동안의 가슴속 삭혀왔던 서러웠던 감정 들은 '밥'이라는 걸 내가 책임지는 게 당연하다는 듯한 일부 사람들의 태도를 겪으며 울컥 터져 나오곤 했다.




신혼생활을 유지해가고 있는 현재, 나의 남편은,

"와이프가 밥 잘해?"

"신부가 밥은 안 굶겨?" (참고로 내 인척이 한 말이다)

의 우려 어린 질문을 받는 반면,


아내인 나는

"남편이랑 집안일로 안 싸워?"

"남편이 집안일해?"

등의 또 다른 의미의 우려 어린 질문을 받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난 당당하게 "우리 둘 다 집안일 잘해!"라고 대답한다.


아내인 내가 집안일을 잘하고 밥을 잘한다고 하면 당연한 일이라는 반응인 반면에, 남편이 집안일을 잘한다는 이야기를 하면 그는 갖 칭찬을 듣게 되는 일부 반응들이 씁쓸하긴 하지만 말이다.


생각해 보면 나도 20대 후반쯤 결혼을 한 친구에게 "그럼 밥은 네가 해?"라는, 내가 결혼 준비 내내 들으며 황당했던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 나의 질문 속에는 결혼한 친구가 밥을 담당해야 한다는 생각보다, 결혼한 후 여성이 꼭 '밥'을 잘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기반한 궁금증이었다. (물론 부부 중 한 사람이 경제활동을 도맡아 책임지는 상황이라면 다른 한 사람은 가사 노동에 대해 더 많은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엔 기존 틀에 얽매이지 않는 결혼이 보편화되어 더 이상 특별한 것도 아니지만, 우리 부부는 남자는 집, 여자는 혼수, 예물, 예단 등이라는 기성세대들의 전형적인 공식을 깬 결혼을 했다.

나의 남편이 '남성'이라는 명목 하에 모든 경제적 책임을 지고 혼자서 영차영차 가정을 끌고 가는 것 또한 원치 않았고, 내가 '여성'이라는 명목 하에 모든 가사노동을 책임지고, 제부터 누가 만들었을지 모르는 '도리' 등을 강요받는 것도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부부는 동등한 존재고 한 사람만이 희생한다면 행복할 수 없기에 각자 상황에 맞게 함께 효율적으로 역할을 분담하자며 우리는 서로 끊임없이 약속했다.




현재의 우리 둘은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경제활동을 함께 하고 있으며 가사 노동에 대해서도 유동적인 분배를 진행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밥' 얘기만 들어도 도끼눈을 뜨며 진저리 치던 과거의 나와 달리 현재의 나는 '자발적 밥 담당'이 되었다. 배달 음식보다 집밥을 좋아하는 밥순이자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하루의 큰 즐거움이었기에 집밥의 기운을 얻기 위해 서툰 솜씨로 기본 반찬과 밥, 국을 만들어 내곤 했고, 생각보다 내가 차린 밥상은 맛있었다. 토스트기에 빵을 노릇하게 굽고 계란과 각종 야채를 곁들여 먹으며 집에서 간단한 브런치 시간을 즐기는 것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도마 위에 애호박, 당근, 대파 등을 올려놓고 큼직한 칼로 송송 썰어가는 행위를 통해 머릿속을 꽉 채우던 잡생각이 사라진 경험을 한 뒤에는 음식을 만드는 일은 부담이 아닌 일상 속 소소한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그 이후로 나는 수시로 밥 담당을 자발적으로 맡아하고 있다.


내가 집밥 생각이 난다며 밥상을 차린 날이면 남편은 식사 후 뒷정리를 임진다. 또 내가 청소기를 돌리거나 빨래를 하면, 남편은 음식물 쓰레기 처분이나 재활용 분리수거를 한다. 냄새나는 음식물 쓰레기는 꼭 본인이 버리러 나가는 남편을 보면 맛있는 음식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레 들곤 한다. 평일 퇴근 후, 녹초 되어 손하나 까딱하기 싫은 날이면 배달앱을 켜고 주문할 음식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신중한 토론을 한다.


서로에 대한 배려를 기반으로 각자 잘하는 것들로 자연스럽게 우리의 역할을 분담했다.




최근 항암치료를 받고 계신 할머니와 점심식사를 했다. 80대시지만 요즘 세대 마인드를 장착하고 있다고 생각한 나의 할머니조차 갑자기 '손주 사위의 밥'을 걱정하는 것이었다.


"손주 사위 밥 차려주고 온 거야?"


나는 당당하게 대답한다.

"할머니! 손주 사위도 나처럼 알아서 다 잘해, 밥도 잘하고, 빨래도 잘하고."


그러자 할머니는 얼굴에 옅은 미소를 띠었다.

"그렇지, 요즘은 남자들도 다 할 줄 알지."




결혼 준비 과정 그리고 신혼 초인 지금까지, 우리는 가정의 재정적인 관리와 가사노동의 분배에 대해 함께 논의하고 맞춰나가는 중이다.


미숙하긴 해도 둘 다 성인이며 독립된 가정을 꾸린 혼자서도 잘하는 스스로 '어른이' 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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