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한 죄책감 거부하기

일방적인 강요를 당연시하는 이들을 멀리할 것

by 안나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뭐." 라며 충분히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상황에서도 유독 "너 때문에." , "다 네 탓이야."라는 말을 주로 사용하며 상대방에게 죄책감을 한가득 던져주는 이들이 한 때 내 곁에도 일부 있었다. 그런 이들은 내가 생일을 챙겨주고, 예쁜 말을 해주고, 힘들 때 옆에 있어주더라도 아주 소소한 점을 끄집어 내 트집 잡곤 사골처럼 우려먹으며 힐난했다. 본인이 필요할 때 연락을 한번 받지 않았다거나, 갑작스러운 만남 요청에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응하지 못할 경우 본인의 서운함에 여러 부정적 감정을 한가득 담아 아주 크게 부풀렸다. 누군가에게 비상식적인 의무감을 던지고 상대방이 그것에 불응하거나, 본인을 만족시키지 않을 경우 "너에게 실망이다." , "우리 사이에 그런 것 하나 해주기 어렵냐."라는 '죄인 만들기'에 열중하는 것에 익숙했던 이들이었다.


생각해보면 이들이 내게 쉽게 강요하던 것들은 항상 일방적이었다. 예를 들어 "내가 지금 안 좋은 일이 많아 힘드니 (먼 거리에 있는) 본인의 집 근처로 바로 달려와 달라."라는 우정이라는 가면을 쓴 무리한 요구들을 나는 단 한 번도 그들에게 당연하게 강요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현재까지 내 곁을 지키고 있는 소중한 사람들은 무리한 요구 자체를 하지 않았을뿐더러, 어쩔 수 없는 상황에 갑작스러운 부탁을 하게 될 경우면 매우 미안해했다. 갑작스러운 요구 자체가 상대방을 불편하게 한다는 것을 기본 전제로 깔고 서로에게 더욱 조심하던 이들에겐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무리한 요구를 당연시하는 이들의 요구를 힘든 상황임에도 들어줄 때면 그들은 "역시 넌 착해." 라며 더 무리한 요구를 했고, 어느 순간 그 요구에 불응하는 순간이면 "변했어.", "가식이었어." 라며 상대방의 마음이 한시도 편할 수 없는 말들을 내뱉었다.




어릴 적부터 늘 내게 공격적이던, 나보다 세 살 많은 사촌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모든 이에게 대체적으로 심술궂었던 것 같다. 그녀는 불안한 본인의 심리를 항상 공격적으로 표현했고, 나는 그런 그녀의 개인적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하며 무례한 말과 행동을 자주 참아 주었다. 하지만 결국 내가 얻은 건 오직 화뿐이었다. 몇 번 이해해해주다 보면 언젠가 내게 고마움을 느끼고 변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해는 한없이 미련한 짓이었다. 참아줄수록 그녀는 내 모든 걸 비아냥 거리기에 바빴고, 어느 날은 술에 잔뜩 취해 온갖 막말과 추태를 부렸다. 얼마 남아있지도 않던 정이 뚝 떨어졌고 비위가 상했다. 그 이후 그녀는 내게 사과 한 마디 조차 없었고 나는 더 이상 그녀를 상종하지 않았다.


약 5년 가까이 만나지 않은 채 시간은 흘렀고, 나는 내 결혼식에도 당연히 그녀를 초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친척간 얽히고설킨 관계로 그녀는 내 결혼 소식을 어찌 알고 결혼식에 나타났다. 그 날 모든 하객들이 반갑고 소중했는데, 그녀는 유일하게 달갑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신부대기실에 들어오자마자 그녀는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 없이 "어떻게 나를 초대하지 않을 수 있어?", "연락도 안 할 수 있어?"라며 온갖 죄책감 던지는 추태를 부렸다. 시간이 지나 조금이라도 변하지 않았을까 싶었지만 그녀는 더욱더 심술로 가득 차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일방적 죄책감 투척에 더 이상 흔들릴 내가 아니었다. 나는 의례적인 미소를 계속 지으며 다른 손님들에게 집중했다. 내 소중한 날을 망치려는 의도인지, 단순 심술 부림인지는 중요하지는 않았다. 하나뿐인 소중한 날, 내 기분이 초대도 하지 않은 그녀로 인해 더럽혀진 것만이 확실했다.

"연락 못해서 미안해."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걸까. 그녀는 왜 본인을 초대하지 않았냐는 말을 여러 번 번복했다. 원하는 대답이 뻔히 보였지만 그 이기적인 바람에 끝까지 응해주지 않았다.

"얼마나 바빴으면 연락을 안 해? 난 네가 임신이라도 한 줄 알았네."

남의 결혼식에 갑자기 나타나 임신을 했냐는 것은 도대체 어느 나라 상도덕인지. 게다가 신부 대기실에서. 그녀는 불청객의 요소를 다 갖춘 말과 행동들을 했다. "당신이 싫으니까 초대 안 한 거야. 눈치 챙기고 좀 꺼져!"라고 소리쳐 주고 싶었지만 나를 바라보는 눈들이 너무나 많았에 화를 삼켰다.


"나 안 바빴어. 그리고 임신 안 했어."

바빠서 연락 못했다며 미안해하고 사정해주는 것을 바라는 듯한 그녀에게 "바쁘지 않았다."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당시 나는 아무리 바빴어도 내게 소중한 이들에게 모두 결혼 소식을 전하며 식사 대접을 했다. '안 바빴어.'라는 표현 안에 '바쁜 것을 떠나 그저 당신을 초대하고 싶지 않아서 연락을 안 한 것이다.'라는 의미를 함축적으로 담았다. 나는 곧이어 진심으로 기쁜 웃음을 터트리며 축하해주는 소중한 하객들에게 집중하며 웃음 지었고, 어느 순간 그녀는 대기실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본인의 행동과 언행을 되돌아보고 미안함을 표현하는 것 따위에는 늘 관심 없었던 그녀는 늘 누군가 본인의 기분과 상황에 늘 맞춰주길 바랐다. 그리고 누군가 본인을 만족시키지 않는다면 심술부리고 화를 냈다. 본인이 처한 부정적인 상황들을 강조하고, 주입시켰다. '내가 이런 안 좋은 상황에 있으니 내게 연민을 가지고 챙겨라.'는 무언의 압박들에 세뇌될 만큼 난 멍청하지 않았다. 더 이상 그녀가 그간 행했던 비상식적인 말들과 행동 들의 의도를 깊게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남들에게 지속적으로 부당한 죄책감을 강요하며 이기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못된 존재로부터 나 자신을 지키기만 하면 될 뿐이었다.




간혹 지인들로부터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들을 듣곤 하는데 의외로 많은 사례 중 하나가 '부당한 죄책감'을 지속해서 주는, 남 탓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한 것 들이었다. 먼저 연락 한 번 안 하는 친구에게 안부를 물을 때면 되려 "넌 왜 이렇게 연락을 안 하냐?", "넌 내 걱정은 하냐?"는 탓하고, 힐난하는 말을 듣곤 한다며 늘 자신이 잘못한 게 없는데도 죄인이 된 듯한 묘한 감정에 시달린다고 한다. 대부분 그 고민을 토로하는 지인들은 마음이 아주 여리다. 또 주위에서 착하다는 평을 아주 많이 듣는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고구마를 물 한 모금 없이 한가득 삼킨 듯한 답답함이 밀려온다. 동시에 '얜 또 왜 이리 미련하게 착한 거야.'라는 생각이 들며 안타깝다.


정말 간단하게 생각해서 나에게 착한 이들 그러니까 최소한의 배려를 하는 이들에게만 착하게 굴면 된다. 나라는 존재를 소중하게 여기는 이들이라면 일방적인 노력을 요구하고 또 이상한 죄책감을 부여하며 상대방의 마음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이상한 죄책감 즉 부당한 죄책감을 습관적으로 당연하게 투척하는 이들은 무조건 멀리 해야 한다. 그들의 세상 속엔 오직 본인의 감정뿐이고 상대방을 헤아리는 것 따위엔 관심 조차 없을 테니까.




[이미지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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