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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Jan 25. 2021

타인의 위로

출근길 아침, 지하철에서 마주친 모르는 할아버지

약 3년 전, 당시의 나는 모 의류 회사에 재직 중이었으며 온라인몰을 담당하던 부서에 소속되어 있었다.


팀 내에는 나와 마음이 맞는 소수의 마음 따듯한 동료들도 있었지만, 수직적이고 강압적인 사내 분위기는 언제든 사직서를 내고 싶은 마음을 굴뚝 솟게 하기에 충분했다. 정해진 출근시간은 9시였으나 늦어도 아침 8:30까지 도착해 업무를 시작어야 했고, 권고사직이 비일비재하다 보니 일부 팀장급들은 상부에 의견을 내고 개선을 요청하기보다는 만만한 팀원들에게 책임전가를 하거나 회의라는 명목 하에 감정 풀이를 하곤 했다.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공격하는 안타까운 구조의 집합체였다.


 마음속으로 저주하면서도 아침마다 그 집단에 소속되기 위해, 매일 아침 지하철 7호선과 3호선에 몸을 실었다. 엄청난 인파의 환승구역인 고속터미널 역을 거치남들처럼 목적지를 향해 가고 또 집으로 돌아오는 일상을 반복했다. 내가 내리고 싶지 않아도, 내가 걷고 싶은 의지가 없더라도, 다른 이들의 의지로 엄청난 인파에 휩쓸려 충분히 끌려다닐 수 있는 시간대였으며 공간이었다.






아침 일찍 회사에 도착하면 지옥철에서 소진된 지친 심신을 다독이며 업무를 시작하기에도 모자랐는데, 당시 부장님은 아침마다 긴급회의라며 팀원들을 소집해 매출을 올릴 생각을 하라며 소리쳤다. 매출이 안 나올 땐 매출이 적다며 핀잔을 들었고, 매출이 잘 나오면 자만할 때가 아니라며 또 다른 질책을 다. 채찍과 당근을 동시에 주어도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었음에도 회의실 안에서  당근은 구경조차 할 수 없었고 채찍만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회의시간은 분명 모든 인원이 다 같이 목소리를 내고 토론하는 거라고 알고 있을 나이의 성인 집합체였지만, 가장 상급자인 한 사람만이 일방적인 목소리를 내는 분위기였고,  나를 포함한 모든 팀원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책상이 뚫어질 듯 노려보며 침묵하거나 질책이 본인을 향할 경우 누군가의 탓을 하고 변명하기에 바빴다.


 나 또한 누군가 툭 친다면 육두문자를 내뱉을 것만 같이 분노가 차있었지만 다음 달 카드값이 또르르 빠져나갈 현실에 순응하여 다이어리에 낙서에 가까운 의무적인 끄적임을 행하고 있었다. 회의실의 투명 유리가 불투명하게 느껴졌고 감옥 같이 느껴졌다. 나이 먹을 만큼 먹은 성인들끼리 모여 앉아 서로를 공격하고 상처 주는 소리를 한다고 해서 매출이 오르는 것도 아닌데 이 무슨 시간낭비인가 싶었다. 서로 감정 상할 시간에 몰아치는 업무를 처리해내는 게 개인에게도 회사차원에서도 더 이득인 것이 자명했지만 나의 상급자 또한 그 보다 상급자인 누군가로 받는 질책과 무거운 책임감을 슬기롭게 헤쳐내지 못하고 아랫 직원들을 향한 근거 없는 공격과 책임 전가하는 잘못된 방법으로 본인의 마음을 위로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오전 내내 부장의 감정 쓰레기통 역할이 된 후 자리에 돌아온 뒤에는 밀린 업무들을 처리하느라 미간에 힘을 잔뜩 주고 마우스를 쉴 새 없이 딸각거리고 키보드를 부서져라 두들겼다. 조직 내에서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 감정을 삭혀두며 생산성 있는 일원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엑셀 파일을 편집하고, 전산처리를 하는 기본적인 업무와 더불어 내 담당한 몰들의 고객 클레임을 처리해야 하는 것도 업무 중 하나였는데 이 부분이 당시 감정적으로 요동치던 나를 더 힘들게 만들었다. 세상에는 정말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처음 보는 논리를 펼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오버핏' 상품을 구매해놓고 옷이 왜 크냐는 사람,

본인은 '마른 77'이라 66을 주문했는데 왜 옷이 작냐는 사람,

모델 (연예인) 이 입었을 땐 이런 핏이 아닌데 왜 안 예쁘냐는 사람 등.

동시에 이들 주장의 마무리는 "불량이다, 환불해라, 보상해달라!"로 끝맺음되곤 했다. (물론 처리 기간도 경과요, 택도 제거된 상황도 항상 겹친다)


이런 상황이 계속 반복되다 보니 최소한의 인내심까지 같이 고갈돼 버리는 듯했고 이성의 을 놓아버리고 싶은 순간에 자주 직면했다. 이성적인 상황이었다면 아무렇지 않았을  간략한 전산처리까지 부정적인 감정이 전이되면서 벅차 지기 시작했다.


물류  재고는 항상 전산상 재고와 일치하지 않아 퇴근 시간 이후에도 품절된 상품들과 주문건들에 대한 잔업을 처리해야 했고 비효율적인 상황이 반복됨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대해선 아무도 나서지 않았으며 모두 소극적이고 문제를 숨기기에 급급했다.


업무적으로 지속적으로 엉키다 보니 나도 어느샌가 책임감 없고 회피, 변명을 일삼는 성향의 일부 동료들을 미워하는 마음들이 생겼고 누군가를 미워한단 감정이 생김과 동시에 내가 겪고 있는 현실이 싫어졌고 또 이런 현실을 견뎌야 하는 나 스스로가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명치항상 답답했고 가족, 친구들에게 말해도 이해해주지 못할 거란 생각에 혼자 삭히며 화가 나 씩씩댔다. 그런 나에게 출근길 지옥철은 더 괴롭게 느낄 수밖에 없는 공간이었다. 특히 사람들로 빽빽이 채워져 있어 내리는 것과 타는 것조차 쉽지 않은 지하철에서 누군가가 나를 밀거나 치면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이성의 끈을 놓지 않으려 항상 심호흡을 깊게 하려 노력했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좀처럼 다잡지 못하고 버티고 있던 어느 화요일 아침, 그날도 여느 때와 똑같이 회사로 향하는 지옥철에 내 몸을 싣고 영혼 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원치 않았던 회식자리로 괴로웠던 "월요일"을 보낸 다음날이기도 했고, 또 야근을 해야 할 것 같은 불안감과 오늘은 또 어떤 막말을 들어야 할지, 아직 주말이 오려면 오늘 포함 4일이나 더 버텨야 한다는 등의 절망  휩싸여 내 몸과 정신은 한껏 방어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누구도 나를 쉽게 보지 못하도록 웃어주지 않겠다"  혼자만의 유치한 전투태세를 준비하며 한껏 독기 가득 찬 눈빛을 하고 지하철 노약자석 근처에 비스듬히 서있었고, 외부 소음을 최소화하려고 이어폰을 깊게 꼽고 있었다.


그때였다.


내 시야 안으로 누군가의 손짓이 느껴졌다, 흠칫하며 흔들리는 손을 따라 응시하니 약 70대 정도로 보이는 할아버지 한분이 내 눈을 바라보며 노약자석에서 일어나고 계셨다.


얼핏 주위를 돌아본 후 반응을 하지 않았다. 지하철 내에서, 그것도 모르는 이가 내게 말을 걸 이유는 없었고 말을 건다 해도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닐 거라는 방어 심리가 작용했다. 아침부터 귀찮은 일이나 시비에 말리기 싫다는 생각에 내가 다시 멍 때리며 시선을 피할 때, 다시 허공에서 좌우로 흔들리는 경쾌한 손짓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이어폰을 빼고 나서 나도 모르게 미간을 살짝 찡그린 채로 쳐다보았는데 내가 예상한 공격적인 말투가 아닌 나긋나긋한 점잖은 어르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 이제 내리는데, 여기 앉아서 가요."

그분이 앉아 계시던 곳은 노약자석이었고, 나는 정확히 두 정거장이 지난 뒤에 목적지에 도달할 예정이었다.


"아.. 괜찮아요 저 곧 내려요."

살짝 미소를 지어 드리려 했는데 당시의 나는 며칠을 웃지 않고 지냈던 지라 입 주위에서 살짝 경련이 일어났다. 감사한 마음도 들었지만 동시에는 피곤한 마음에 더 이상 아무 말도 안 하시길 바랐다.


어색하게 다시 이어폰을 귀에 꽂으려는 순간 할아버지는 일어나며 웃는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아이고, 다리 아프겠다. 그냥 우리 손녀 생각도 나고 그래서.. 젊은 사람들도 힘든데 나이 많은 사람들만 앉아서 가고 미안해요, 나는 지금 내려요, 일 다니느라 힘들겠어요."  


잠깐의 순간, 그분은 내게 살짝 손을 흔들며 미소를 지으며 따듯한 말을 던진 채 많은 인파 속에서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갑작스럽게 따듯한 말을 듣게 된 나는 당황한 나머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어색하게 고개를 꾸벅해버리곤 말았는데 그 순간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들며 내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고 눈물이 차올랐다. 그 순간에도 주위를 의식했고 누군가 눈물로 차오른 내 안구를 보진 않을까 싶어 두리번거렸으나 모두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 화면만을 바라볼 뿐 나에겐 관심 없었다.


잠시 후 내가 하차할 역에 도착했고 나는 평소와 같이 많은 인파들에 휩쓸려 열차 밖으로 쏟아져 나왔고 개찰구를 향해 계단을 밟아 올라갔다. 그간 무겁게 얹혀있던 명치가 가벼워지는 느낌을 받았고, 평소에는 나를 밀어대는 인파들과 앞길을 막아 새치기를 하는 사람들에게 분노가 일었는데 그날은 이상하게 화가 나지 않았다. "사정 있겠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에 작은 여유가 생겼다.






그날 잠시 마주친 할아버지의 미소와 작은 배려로 느낀 내 감정에 대해 자주 생각해보았다. (심지어 최근까지도)


 "화병"이라는 명목 하에 스스로 마음속에 쌓이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병든 닭처럼 보내고 있었던 그때의 나, 모든 걸 그만두고 휴식을 취해야 상황이 끝날 것 같다고 생각했음에도 어설픈 책임감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날, 나의 깊은 한숨 소리와 분노로 가득 차 있던 내 눈빛을 그분은 느끼셨던 걸까, 아니면 그저 손녀 또래의 비슷한 젊은 여자 아이가 미간을 찌푸리고 흔들리는 열차 안에서 휘청거리는 게 안쓰러워 보이셨던 걸까.


당시 내 얼굴에 뜨겁게 달궈지고, 눈물이 차오르던 그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던 순간에 대해 꽤 오랜 시간 고민해본 끝에 이런 정의를 내리게 되었다.


내 마음속 깊은 분노를 처음 보는 분에게 들켰다는 창피함과,

처음 보는 낯선 이로부터 갑작스레 위로를 받고 난 뒤의 당황스러움,

따듯한 배려를 열린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방어적인 태세로 의심을 가졌던 나에 대한 실망감,

처음 보는 이에게 작은 배려를 해주고 마음의 여유를 선물해준 그분에 대한 감사함,

그리고 감사한 상황에서 감사하단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 부분에 대한 후회스러움.


그날 하루도 회사에 도착해서 평소와 다르지 않은 일과를 보냈다. 예정되어있지 않은 긴급회의라는 명목 하에 매출에 대한 압박과 더불어 감정 풀이를 들었으며 영혼 없이 엑셀 파일을 편집했다. 하지만 그날은 내 커피를 사면서 항상 같이 업무를 하던 동료의 커피도 함께 샀다. 평소에는 차갑게 업무 얘기만 주고받았다면 따듯한 커피 한잔과 함께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잠시 나눴다. 마음속으로만 삭히던 지겨운 매출 압박에 대한 속상함과 회의 시간의 감정노동에 대한 공감을 나누고 나니 그저 웃음이 났다. 나와 같은 감정을 느낀 동료들이 있다는 부분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아침에 지하철에서 마주친 마음 따듯한 할아버지에 대한 얘기도 잠시 했으며 동료가 주말에 다녀온 카페에 대한 정보도 공유했다.


내 시야의 중심을 직장이 아닌 내 주위로 돌리고 나니 내가 괴로워하던 일들은 잠시 잊혔 별 일이 아닌 듯했다. 물론 그 이후에도 여러 번 분노가 치미는 순간들이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마음이 맞는 가까운 동료들과 점심시간 잠시 햇볕을 쐬며 함께 걷거나, 맛있는 음료 한잔 같이 마시자며 먼저 손 내미는 여유를 가지려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타인에게 받은 작은 위로가 내게도 다른 사람과 나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던 것이다.






현재의 나는 당시의 그 직장을 떠나 다른 조직에서 수입활동을 하고 있지만 가장 힘든 시기 나를 버티게 해 준 건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아침 출근길에 우연히 마주친 한 할아버지의 짧은 위로였다.


우리에게 아침마다 매출 압박을 하던 부장님도 현재는 그 조직을 (자의적으로)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분과 잠시 1:1로 대화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자나 깨나 "매출" 생각만 할 것 같고 항상 화로 가득 있었던 그는 의외로 본인의 부족함과 감정적인 태도로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게 입에 발린 말이 었을진 몰라도 그 순간만큼은 짧게나마 진심이 느껴졌고, 그 또한 또 다른 누군가에게 압박을 받고 있는 하나의 을에 속했으며 그 압박 속에서 어떻게버텨서라도 한 가정을 지켜야 하는 가장이라는 다양한 모습들이 그려지며 잠시나마 그의 입장을 헤아려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회의를 가장한 잦은 감정 풀이는 어느 곳에서라도 멈추시길 바라요)


지금의 나는 매출 압박에서 탈출했으며 더 이상 지옥철을 타고 다니지 않을 수 있는 도보 15분 거리의 직장에서 수입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환경에서도 달갑지 않은 참신한 괴로움은 불쑥불쑥 나타나곤 한다. 남의 돈 벌어먹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임에 분명하지만 내가 견딜 수 있는 선을 정해놓고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중이다.


평일 화요일이 다가올 때마다 지하철에서 만났던 그분의 따듯한 위로가 떠오른다.


그날 아침, 복잡한 지하철 인파 속,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핸드폰만 바라보고 있는 젊은이들을 바라보며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 그분의 미소 속에 담겨있던 진심을 생각하며 사고의 중심을 조금이라도 따듯하고 즐거운 것들 위주로 두려고 한다.


추운 날씨가 잠잠해져 출근길 얇은 코트만 걸쳐줘도 견딜만한 날씨가 되었다. 내일 점심 식사 이후에는 내가 좋아하는 '플랫화이트'를 주문하러 종종 가던 카페에 들러야겠다. 또한 정성껏 내린 커피를 제공해주는 이에게 감사함을 표현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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