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na Mar 02. 2021

나를 보살피다

소중한 혼자만의 시간

현재의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보석같이 귀히 여긴다. 잠시라도 혼자 있게 되는 순간이 오면 무얼 할까. 무엇을 먹을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설레곤 한다. 물론 가족, 지인 들과 보내는 순간들이 주는 행복도 소중하다. 하지만 정서적으로 혼자 버티기 어려운 시기엔 남들과의 관계도 온전히 즐길 수 없었던 상황을 여러 번 경험해보았기에 틈틈이 스스로와 교류하는 순간 집중하고자 애쓴다. 수시로 닥쳐오는 부정적 감정의 요동 속에서 스스로 버틸 수 있는 힘을 어설프지만 조금씩 키워 나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나 보살피기 위 노력을 다하기 시작한 것은 3~4년이 채 되지 않았다. 그 전의 나는 혼자 있는 것을 못 견뎌했다. 겉으로는 혼자서도 잘 지내는 듯 당당한 척했지만 방 안에 홀로 앉아있으면 어쩔 줄 몰라하며 무조건 밖으로 나가 누군가를 만나 불안함을 달래고 싶었다. 혼자 있는 것이 두려워 지인들에게 실시간으로 연락을 만나기를 반복했다. 시간을 맞추지 못해 어쩔 수 없이 혼자 산책을 하거나 쇼핑을 하게 되는 순간이면 그 순간을 찍어 SNS에 공유하거나, 묻지도 않은 지인들에게 메신저로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알려주었고 동시에 남들의 관심을 바랐다. 보고 싶은 영화가 개봉하거나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그것들을 꼭 함께 즐길 이들을 찾느라 바빴다.




회사 내에서도 나와 맞지 않는 성향의 동료들과 억지로 잘 지내기 위해 쿨한 척, 너그러운 척, 가면을 쓰고 연기했다. 오전 업무 시간에 누군가와 기분 상하는 일이 있었던 경우 점심시간을 활용해서 오해를 풀고 잘 지내야겠다는 생각에 의미 없는 노력들을 쏟아부었다. 난 이만큼 쿨한 사람이야 라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듯 오히려 내게 실례를 범한 주범에게 커피를 사주며 상대가 스스로 미안함을 갖거나 나에게 고마워하길 바랐다. 하지만 상대방은 내 맘과 같지 않았고 나의 노력을 무시라도 하는 듯 불쾌한 행동을 반복할 뿐이었다.


내가 본격적으로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게 된 순간은 직장 내 인간관계에 회의감이 잔뜩 들었을 때였다. 앞에선 서로 웃으며 오늘 옷 예쁘다. 신발 예쁘네. 위해주는 척하며 당사자가 사라지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잡는 일부 사람들을 바라보며 비위가 상했다. 그런 이들이 내게도 같은 칭찬이나 친밀감을 표현할 때면 거부감이 들고 불편했다. 하지만 표면적으로 잘 지내기 위해 나 또한 그런 이들에게 친절 가면을 쓰고 가짜 웃음을 지어 보이곤 했다. 또 점심시간마다 반복되는 누군가의 해결 의지 조차 없어 보이는 고민들과 더불어 끝없는 직장 상사 험담을 듣는 것도 점차 버거워졌다. 그래도 난 친절 가면을 쓰고 있었기에 끊임없이 억지 끄덕임을 행했다. 대화의 공백을 견디지 못해 남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조잘대며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고 있는 주체적인 사고를 하는 것에 무기력한 내 모습은 몹시도 구려 보였다.


남들의 생각에 휩싸여 살아가느라 내 생각을 잊고 살던 어느 날. 나는 아팠다. 알 수 없는 두드러기가 몸에 올라왔고 속이 메슥거리고 어지러웠다. 그 날부터 일주일에 한 번은 회사 근처의 병원에 방문했다. "저는 오늘 병원 가는 날이에요. 맛있게 드세요." 라며 점심시간 불편한 무리 속을 빠져나오던 첫날. 갑자기 알 수 없는 훼방 감에 기쁨이 몰려왔다. 병원에서 약 처방전을 들고 나와 가까운 죽집에 들러 노란 호박죽을 시켜먹는데 그날따라 차창밖의 푸른 하늘과 회색빛 아스팔트 그리고 많은 차들이 도로 위를 연이어 달리는 모습 등이 새로워 보였다. 주변의 소음이라곤 나와 상관없는 이들의 집중하지 않아도 괜찮을 만한 대화들 뿐이었다. 이어폰을 귀에 꼽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달콤한 호박죽을 싹싹 긁어먹었다. 늘 남들의 생각을 따라가느라 분주했던 내 머릿속은 오롯이 목구멍으로 꿀떡 넘어가는 달고 꾸덕한 식감을 음미하고 좋아하는 음악 속 가사를 되뇌고 있을 뿐이었다.


 날 이후 원인을 알 수 없었던 아픔은 눈에 띄게 호전되었다. 그 뒤로도 여러 무리 속에서 많은 소음들에 시달리며 불편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전과 같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았다. 내가 듣고 아니다 싶은 얘기에는 크게 반응하지 않았고 억지로 다른 이들의 기분을 살피며 무슨 말을 할지 고민하며 먼저 나서지도 않았다.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주로 하고 잠시 침묵이 흐르는 순간을 어색해하지 않으며 견뎠다.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 모습을 천천히 찾아나가다 보니 어느 순간 내 점심시간의 옆자리는 본래 내 성향 좋아해 주는 극소수의 가까운 동료들로만 채워졌다. 마음 맞는 소수의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따듯한 햇살을 받으며 좋아하는 커피를 홀짝대는 순간들을 보내다 보니 감정의 피로도는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그들과 나눈 진심 어린 대화에서 진짜 즐거움을 느낄 때마다 아이처럼 깔깔 대며 웃어댔다.


하지만 학교가 아닌 회사였기에 늘 마음 맞는 사람만 골라 함께 있을 순 없었다. 그렇기에 내가 어느 선까지 감정적으로 견딜 수 있는지 파악한 후 스스로의 감정을 보살피기 위한 대처법을 구체화해나갔다. 회사 생활을 하며 혼자 있는 시간이 미치도록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나만의 주기는 대략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 꼴이었는데 그럴 때마다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점심시간을 보냈다. 좋아하는 카페폭신한 소파에 홀로 앉아 치아바타 샌드위치와 거품이 곱게 내려진 라테를 홀짝이며 눈을 느리게 꿈뻑이기도 했고, 간단히 식사를 해결한 후 하염없이 걷고 또 걸으며 멍 때리기 연습을 했다. 그렇게 오롯이 혼자만을 위한 한 시간을 즐기고 온 날의 오후는 여느 때 보다 밝았다.




회사 생활의 어려움을 겪으며 나를 보살피고 달래는 시간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달은 뒤, 가끔 해결할 수 없어 미쳐버릴 것만 같은 감정의 파도 속을 헤엄 칠 때면 친구를 불러내 한바탕 감정을 퍼붓는 실례를 범하는 대신 혼자 영화관으로 달려갔다. 그리곤 엄청 슬퍼 보이는 영화를 보며 사연 있는 여자처럼 감정을 쏟아내며 울었다. 대부분 이 방법은 사람이 없는 주말 조조나 심야 혹은 반차나 연차를 쓴 평일 오전 등에 가끔씩 시도하곤 한다. 그렇게 퉁퉁 부은 눈을 하고 나와 내가 좋아하는 식당에 앉아 그 누구의 속도에 맞추지 않는 나만의 속도로 식사를 하다 보면 감정이 한결 정돈되틀에 갇혀있기만 했던 사고가 확장되는 효과를 얻기도 다.


요즘 같은 코로나 시기에는 대체적으로 좋아하는 공간을 하염없이 거닐거나, 집안에서 좋아하는 과일을 오물거리며 밀린 소설책이나 영화를 몰아보곤 한다. 또 단 30분이라도 방 안에서 버둥거리며 홈트를 하며 거친 숨을 몰아 내쉬기도 한다. 거울 속 머리가 잔뜩 헝클어진 채 얼굴이 벌게진 내 모습을 보며 혼자 웃어대지만 노력하는 스스로가 기특하다. 이밖에도 나 스스로를 보살펴 줄 수 있는 다른 방법들 지속적으로 찾아보는 중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보다 조금이라도 더 단단해질 나를 생각하며 자투리 시간 단 몇 분만이라도 스스로를 꾸준히 보살피는 데 활용하고자 한다. 벅찬 일상 속에 지속적인 활력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이다지도 소소하고도 소중한 행위를 게을리할 이유는 없으니까.




[이미지 출처: Unsplash]

이전 04화 브런치 작가 되면 돈 버는 거냐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