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함에 온기 한 방울 더해보기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깊고 긴 대화를 나누지 않았음에도 금세 피곤이 몰려올 때가 있다. 사무실 안의 모습이 그 사람의 다인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사무적인 관계인 사람과 식사 자리에서 나누는 대화라던가, 몇 년 만에 누군가의 결혼식에서 우연히 만난 지인과의 의무적인 안부와 기약 없는 약속에 대한 대화 등이 대표적이겠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다가오는 흥미를 즐기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내 편인 듯 내 편 같지 않은 사람들. 숱한 기약 없는 약속들과 신뢰 없는 애정 표현들을 경험하다 보니 누군가를 알아가는 행위에 지쳐버렸다. 쿨한 척 '난 이제 소중한 지인들 외의 타인들에겐 관심이 없어졌다'라고 표현하곤 했지만 사실 지쳐버렸다는 표현이 맞겠다.
내가 느낀 경험과 감정들을 남들도 똑같이 경험하지 않을까. 이처럼 나와 같은 심리를 가진 타인들과 공적으로 만난 자리에서 나누는 대화는 형식적으로는 친절해 보이지만 끝나고 난 뒤에는 공허함이 가득했다. 책 잡히지 않기 위해 감정이 배제된 대화를 한 뒤에는 항상 '내가 말실수 한 건 없을까', '감정적인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이성적인 사람으로 보였을까'등 자기 검열로 마무리되곤 했다. 대화 중 침묵이 편안함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닌, 뻘쭘함과 불편함으로 느껴지는 자리들을 나이가 먹어가고 사회적 만남이 많아질수록 자주 경험하게 되지만 쉽사리 익숙해지지 않는다.
안부를 가장한 계산적인 호구 조사에 마음의 벽이 닫히고, 잘 모르겠다고 에둘러서 표현한 말이 묘하게 험담으로 와전되어있던 경험들에 일일이 반응할 의욕은 사라졌지만, 호감을 가지고 다가오는 보석 같은 사람들에게 조차 마음을 닫아 버린 채 '이 사람은 보석일까 혹은 언젠가 뾰족하게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유리일까' 본심을 재본다.
함께 호흡을 맞춰나가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유독 어색한 상황 이어서일까.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함에도 늘 마음이 공허했던 직장 내에서의 점심시간. 마침 근처에 있던 20년 지기 친구와 갑작스레 만남이 결정되어 오래간만에 마음 편한 평일 점심 식사를 즐겼다. 친구가 알아봐 둔 스테이크 덮밥 맛집으로 신나게 향했다. 말과 행동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만큼 나를 너무 잘 아는 오랜 친구와의 식사는 편안했고 즐거웠다. 수저를 누가 먼저 놓을지, 물은 누가 먼저 따를지 서로 눈치 볼 필요 없다는 사소한 것들이 포근했다. 급식 먹으러 달려가던 어린 시절의 뻔하디 뻔한 추억 팔이를 되새김질하며 홀쭉해졌던 배를 따듯한 음식으로 빵빵하게 채워주었다.
점심 식사를 마친 뒤 직장으로 복귀하자 동료들은 내게 어떤 메뉴를 먹었는지 맛은 어땠는지 질문을 건넸다.
"스테이크 덮밥 먹었는데 맛있었어요! 우리 다음에 다 같이 가요."
마음속 공허함이 거둬진 상태여서였을까. 평소 어색하게 느꼈던 새 동료들과 그곳에 가서 맛있는 스테이크 덮밥을 함께 먹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곧이어 그 마음이 진정성 있게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좋아요! 꼭 같이 가요!"라며 미소 짓는 옆자리 동료와 시답지 않은 대화를 몇 마디를 더 나눴다.
마음 없는 대화에서 느껴지던 공허함을 유발하는 주체를 대부분 타인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마음속의 주체는 결국 나였다. 이론에는 늘 충실하지만 이토록 직접 경험해봐야 깨닫게 되는 것이 결국 마음이고 그에 따른 인간관계인 것을 다시 한번 되새김해본다.
누군가 나를 향해 던져준 관심은 관심 그대로 받고, 안부는 안부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걱정은 걱정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에도 노력이 필요한 마음 닫힌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이 안타깝지만 공허한 내 마음에 온기 한 방울씩 더해 줄 수 있는 방법임에 확실하니 조금씩 노력을 더해본다. 마음이 온기로 가득 찬 날에는 별 필요 없는 노력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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