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MZ 베이비

by 움직이기

나는 원래 히바(Khiva)까지 여행하는 것을 계획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굳이 가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또 다른 역사유적이나 이국적인 도시의 볼거리를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특정한 물리적 장소나 환경이 의미가 없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아니라는 확신이 점점 생겼다. 어딜 가고 안 가고의 문제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동시에 끝없는 표류의 가벼움 또한 온전치 않다고 느끼는 것이었다. 그렇게도 버둥거리며 새로운 물리적 장소와 표류를 갈망했건만... 문제다 문제.



“오! 미안해요.”

내 방문을 갑자기 열어젖힌 외국남자. 둘 다 화들짝 놀랐다. 그는 화장실을 찾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밝은 갈색곱슬머리에 그리스인처럼 생긴 이 청년은 터키에서 온 에미르였다. 이스탄불에 사는 에미르는 18살 때 처음 여행을 시작했단다. 그는 그때부터 여행을 지속하고 있으며, 지금도 벌써 9개월째 배낭여행 중이라고 했다. 나는 그가 이스탄불에 산다는 말에 호들갑을 떨며 좋아했다. 사실 이번 여행 일 순위는 터키 이스탄불이었다. 하지만 여행 직전, 터키 중남부 지역에 엄청난 규모의 지진이 일어났었고, 그 참담한 상황에 도무지 터키로 갈 수가 없었다. 나는 걱정이 돼서 그에게 안부를 물었다. 그는 본인의 가족과 친구들은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피해상황이 정말 처참했다고 했다. 그의 깊고 큰 두 눈이 무겁게 내려앉았고, 나는 어떤 말조차 밖으로 꺼내기가 어려웠다.



저녁때 숙소에서 에미르와 다시 마주쳤다. 우리는 숙소 마당에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나는 차를 마시고, 에미르는 담배를 폈다. 이스탄불 대학교에서 역사를 전공하는 대학생이라는 그는 2001년생 MZ 베이비였다. 잠깐만, 가만있어보자... 나는 에미르의 이모뻘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의 대화는 꽤나 즐거웠다. 그는 나보다 한참 어린 베이비지만, 매우 용감하고 거칠고 열정적이었다. 본인은 모르는 것 같은데, 그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는 혼자 하는 긴 여행 속에서 자신의 길을 묻고 찾고 되새김질했을 터였다. 때론 고독 속에서 때론 여행의 희열과 낭만 속에서, 때론 낯선 사람들과 낯서 장소 틈바구니 속에서 그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디로 가야할지 생각하는 시간들을 대면했을 것이다.



여행해서 시작해서 한국과 터키 사회문화, 역사 이야기까지 그렇게 우리의 대화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우리는 짧은 시간 내에 꽤 많이 친해졌다. 그가 갑자기 내 나이를 물었다. 에미르는 나를 자기 또래로, 혹은 자기보다 조금 위로 생각한 것이 분명했다.

"음...... 나는 30살. (나는 마흔 살 이모란다)"

“..............................”

순간 당혹감에 휩싸인 에미르의 얼굴. 30살로 한참 내려 깎았는데 그것마저 2001년생 베이비에겐 충격이었던가 보다. 그런데 뭐 이모가 이해를 못하는 건 아니니까.


다음날, 밤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또다시 에미르를 만났다. 혼자 걷던 거리를 에미르와 같이 걸으니, 거리가 다시 새로운 공간으로 다가왔다. 누군가와 함께 이 거리를 걷게 될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런데 삶은 또 어쩜 이렇게 급진적으로 전혀 예상도 못한 방식으로 전개되는지, 나는 어느새 저 머나먼 아나톨리아 이스탄불에서 온 친구와 거리를 걷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어두운 밤, 낯선 곳을 돌아다녀도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어디로 갈지 혼자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고독하지 않았다. 나는 가벼움과 안정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이것은 내게 무척 신선한 것이었다.


우리는 볼로하우즈 모스크 주변 벤치에 앉았다. 마침 예배시간을 알리는 아잔이 울렸고, 에미르는 아잔의 몇 구절을 따라서 낭송하기 시작했다. 기독교의 주기도문처럼, 아랍어로 된 무슬림 공통기도문인 것 같았다. 에미르는 지금은 많이 잊어버렸지만, 예전에는 아랍어 기도문을 다 외웠다고 했다. 에미르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기도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에미르가 터키인이고, 무슬림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레 다가왔다. 어떻게 이렇게나 나와 다른 사람을 이렇게나 먼 땅에서 만나게 되었을까.


에미르는 본인은 담배도 피고, 맥주도 마시고, 여자도 사귀는 매우 타락한(?) 무슬림이라고 했다. 다소 세속적이고 자유분방하지만, 에미르는 알라와 코란의 가르침을 믿는 무슬림이었다.

“신을 믿어?” 에미르는 내게 죽으면 어떻게 될 것 같냐고 물었다. 나는 죽는 순간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갈 것이고 우주 안으로 사라질 것 같다고 말했다. 신의 존재도, 천국과 지옥도 아무것도 나는 확신할 수 없노라고 말하면서 약간의 아찔함과 막막함을 느꼈다. 그저 죽어보기 전까지는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 절대 알 수 없는 인간이기에 말이다. 그렇다고 불확실성과 두려움이란 감정에 압도되어, 보험 들듯 종교와 신앙세계에 발을 들이는 것은 딱히 개인적으로 동하지 않을 뿐이었다. 분명한 건 반드시 곧 죽는다는 사실 뿐이다.


에미르에게는 역사와 민족, 문화적 자부심이 느껴졌다. 그가 자국 터키에 대해서 언급할 때마다, 나는 그 기저에 깔린 긍지를 정말 느낄 수가 있었다. 특별히 에미르가 역사를 전공하는 친구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이것이 터키인들의 일반적인 태도인건지 분간이 잘 가지는 않았다. 에미르는 난데없이 오스만 제국의 술탄 흉내를 내며 으스대곤 했다. 그렇다. 그는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한 오스만 제국의 까마득한 후손이었다.

내가 에미르의 나이였을 때, 나는 미국 음악을 들으면서 춤을 추고 다녔다. 영어를 공부했고 미국드라마를 보곤 했다. 서양의 춤이 좋아서 현대무용을 했고, 발레를 했다. 그런데 이 2001년생 터키친구 에미르는 내 앞에서 자국의 역사를 이야기하며 감흥에 젖는 것이었다.



에미르가 갑자기 일어섰다. 그리고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전통춤을 추어대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터키에서는 결혼식에서 이런 전통춤을 춘단다.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치면 결혼식에서 밀양아리랑 같은 가락에 맞춰 탈춤 같은 민속춤을 춘다는 말이다.

감흥에 취해 살짝 찌푸린 미간과 감긴 눈, 춤추는 에미르.

나는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조국의 역사와 민족, 전통과 문화에 대해서는 팔짱을 끼고 심드렁한 태도로 살아왔던 내 자신을 대면하면서.



자정이 넘은 시각, 집 창문에서 새어나오는 빛도 이제 거의 사라졌다. 어두운 골목 사이 어스름한 가로등 빛에 흙집들의 거친 형체가 군데군데 보였다. 사방이 죽은 듯이 고요했다. 칠흑같이 까만 하늘에선 별이 쏟아질 것 같았다. 볼을 스치는 사막바람은 여름밤처럼 감미롭고 신선했다. 고요하고 환상적인 지금 이 곳, 시공간이 사라졌다.

숙소 앞에서 에미르가 한참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키스해도 되냐고.

평소 장난기 많은 에미르의 얼굴은 온데 간데 사라지고, 약하고 순진한 얼굴이 나왔다. 그 얼굴을 더 감상하고 싶어서 나는 좀 능글맞게 가만히 있었다. 베이비는 용감한 남자였다. 40살 이모라고 세상 속 시원하게 진실을 말하고 싶었지만 동시에 말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앞의 특정 상황으로 잠깐 어색해졌지만 금세 평소대로 돌아왔다. 우리는 서로 간에 마음을 활짝 열었고 좋은 친구가 되었다. 에미르가 내일 아침에 히바에 같이 가자고 했다. 나는 안 그래도 히바에 가냐 마냐를 두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 이 여정에서 필요한 것이 새로운 도시 탐방은 더 이상 아니라는 사실은 내 안에서 확실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번에 히바에 가지 않으면 또 언제 우즈베키스탄에 오게 될지 기약할 수 없고, 또한 히바에 가지 못한 것을 내내 후회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흔들림을 그저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충동이 내 속에서 거세지면 결국은 가게 되리라 생각하고서.

"에미르, 너는 왜 여행하는거야?"

"음......... 자유를 찾으려고."


다음날 아침, 배낭을 다 싸고 이제 히바로 출발한다는 에미르가 나를 보며 인사했다.

"히바에 정말 안 올 거야? 혹시라도 히바에 오게 되면 꼭 연락해야 돼! 보고 싶을 거야."

그래 다시 만나게 될 거라면 어떡해서든 만나게 되겠지. 나는 에미르를 향해 손을 흔들며 밝게 웃었다. 그리고 황급히 에미르를 뒤로 하고 숙소를 나섰다. 씁쓸한 감정이 올라오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어느 시기 때부터 내재되기 시작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어려서부터 애착을 느낀 누군가와 같이 있다가 분리될 때 강렬한 슬픔과 막막함, 두려움을 느꼈다.

시간이 지나면서 헤어짐 또는 분리와 연계된 감정들은 충분히 조절할 수 있을만한 크기가 되었다. 애초에 사람에게 애착과 기대를 품는 마음 자체를 놓아버리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늘 마음대로 잘 조절되는 건 아니다. 내 속 깊은 어디엔가 묻혀 있다가 한 번씩 희미하게 형체를 드러냈다가 사라진다.

혼자여야만 하는 인간존재의 속성에 대한 씁쓸함이 온 몸에 퍼지기 전에 얼른 나 자신을 전환시켜야 했다. 그래서 의지적으로 웃으면서 나는 괜찮다고, 나 자신에게 일러주듯 환하게 인사하며 손을 힘차게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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