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이름은 굴리야

by 움직이기

얼마의 시간이 흘렀다. 나는 사실 요 며칠간 이 고독한 혼자만의 여행과 걷기 속에서 권태로움과 결핍감을 느꼈다. 그렇다. 나는 여행 중에도 권태로움을 느꼈다.

나는 이곳을 잠시 스쳐가는 이방인에 불과하다. 이러나저러나 결코 이 도시에 깊게 연루되거나 뿌리내릴 수 없는, 자유롭지만 그저 표류나 할 뿐인 이방인 말이다. 표류자인 나는 절대 이곳을 진정으로 깊게 이해하지 못할 터이다. 이곳의 진짜 흙냄새와 사람냄새를 나는 모르겠지. 이 땅에 뿌리를 단단하게 박고 서서, 이 땅의 거친 흙을 만지고, 이 땅의 사람들과 부대끼며 희로애락을 느끼는 경험이 내겐 없으니.

그저 내가 하는 일이라곤 걸으며 바라보는 것 뿐 인거다.

이 자발적 표류의 가벼운 시간을 그렇게도 갈망해왔건만, 막상 이 시간의 한복판에서 나는 권태로웠다. 뭔가 또 헛헛한 결핍감에 허둥지둥 하는 거였다.


나는 84년생, 올해 한국나이로 40세. 정말로 적지 않은 나이가 되었다. 40세가 되었건만 성숙은 커녕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불안과 두려움, 피로감에 미친 듯 버둥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대체 뭘 한걸까. 그동안 나름대로 삶의 순간들 속에 충실했건만 지금 내게 남은 건 뭔가. 바닥까지 소진된 피로감과 무기력감, 삶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떡해야지만 대체 이 내 심난한 정신은 안정을 찾을 수 있겠나.

한동안 심하게 지쳐 있었다. 내 안의 생각과 감정에 콱 짓눌려져서 도무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일상이 버거웠다.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해방과 표류를 갈망했다. 아무런 책임도, 아무런 속박도 없이 가볍게 떠다니면 나는 지금보다 훨씬 행복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막상 해방과 표류의 세계 한복판에서, 이 요소들 또한 백 프로 온전할 수는 없다는 걸 깨닫는 것이었다. 하... 이래도 성에 안차 저래도 성에 안차. 이래도 저래도 온전히 채워지지 않는 결핍에 버둥거린다.

양극 사이에서 나만의 균형 잡기. 이게 나에게 필요한 것일까? 그래서 나도 모르게 이 여행을 찾아온 걸까.



이스마일 사마니(Ismail Samani)의 묘로 향하는 길, 사막바람은 이제 설레는 봄기운 한가득 실어오고 있었다. 이 영묘는 892-907년에 축조된 것으로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중의 하나란다. 천여 년 전에 세워진 묘는 현재까지 잘 보존되어 있었다. 아담한 크기의 묘 외벽과 내벽 전체에는 다채로운 문양이 매우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었다.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곧 현실로 닥칠 죽음 앞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중요한 게 무엇인가. 육체의 죽음 이후에는 어떤 세계가 펼쳐질까? 내가 죽고 지금으로부터 천년 후 세상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천년 후 미래의 후손들도 우리의 흔적을 바라보면서 지금의 나와 같은 감상에 빠져들겠지 인류문명이 지속된다면 말이다.

묘안으로 햇살이 비스듬히 길게 들어왔다. 내 마음은 고요하고 잠잠한 호수 같았다.



"오! 관람차다!"

묘에서 나오니, 바로 옆에 놀이공원이 보였다. 놀이공원의 백미인 관람차는 놓칠 수 없다. 서둘러 놀이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자그마한 놀이공원인데, 나름 구색은 다 갖추었다. 관람차도 있고 범퍼카도 있고 회전목마도 있었다. 사람들이 없어서 놀이공원은 한산했다. 운영은 하는가 싶어 보면 구석구석 한 두어 사람씩은 꼭 있었고, 한 두어 가지 기구들은 꼭 운행 중이었다.



여느 놀이동산처럼 알록달록하게 치장된 맛은 없지만, 담백하고 소박한 것이 정겨워서 마음에 들었다. 팝콘이나 아이스크림 등 간식을 파는 가게도 있고, 인형 파는 가게도 있었다. 놀이동산 특유의 경쾌한 음악이 흘렀다. 나는 관람차를 타면서 부하라 전경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주위에 타는 사람도 없고, 일하는 사람도 없었다. 혼자 탈까 말까. 때마침 직원으로 보이는 듯한 한 우즈벡 여인이 어디서 쑥 하고 나왔다.

"저거 타고 싶은데요..." 하면서 손끝으로 관람차를 가리켰다. "OK!" 그녀는 관람차로 나를 안내했다.

그녀는 티켓에 구멍을 퐁퐁 내어주면서 내게 질문을 했다. 어디에서 왔고 나이는 몇인지, 결혼은 했는지, 가족관계는 어찌 되는지 쭉 물었다. 뱅뱅 돌아가는 관람차 앞에서 폭풍 같은 호구조사가 끝났다.

나를 관람차에 태워주면서 환하게 웃는 그녀.

"진, 우리 같이 타요!"



급작스레 나와 같이 관람차에 올라 탄 그녀의 이름은 굴리야. 어디선가 나타난 다른 남자직원이 굴리야에게 볼멘소리로 투덜대는 듯 했다. 일하는 시간인데 이렇게 설렁설렁 손님이랑 관람차나 타고 앉아 있어도 되는 거냐, 이래도 되는 거냐, 손님 없으니 괜찮다, 니가 뭐라든 나는 그냥 타겠다, 뭐 대충 이런 내용이라 짐작되었다. 굴리야는 나를 바라보더니 뭐 아무렇지 않다는 듯 그저 어깨만 살짝 들어 올렸다 내렸다.

그렇게 내 맞은편에 털썩하고 앉은 그녀. 나는 방긋 웃었다.

“하라쇼! (좋았어!)”



굴리야는 왜 갑자기 나와 함께 관람차를 타겠다고 생각한걸까? 관람차란 그곳에서 일하는 그녀에겐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그저 일상적인 노동의 시공간일 뿐일 텐데 말이었다. 그녀가 내게 어디에서 왔냐고 물을 때만해도, 의례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와 튼 작은 대화의 물꼬가 이렇게 전개되리라고는 나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일상의 어떤 순간은 불예측성, 신비와 경이로움 같은 삶의 은밀한 속성들을 가르쳐주려고 불현듯 다가온다.



관람차를 타고 위로 올라갈수록 사막의 태양은 뜨겁게 내리쬐었고 바람은 거세졌다. 실크로드 사막도시 부하라의 정경이 한 눈에 가득 들어왔다. 쉬익쉬익 바람으로 가득 메워진 귓가. 가슴이 풍선처럼 크게 부풀었다. 히-아! 나는 아주 신이 나서 소리를 질렀다. 나를 바라보던 굴리야도 웃으며 소리를 질렀다.

사막 같은 건조함과 씁쓸함, 약간의 완고함도 묻어나는 그녀의 얼굴, 바람에 속절없이 흩날리던 우리의 머리카락과 웃음소리.



관람차는 금세 한 바퀴를 빙 돌아 땅에 내려왔다. 함께 탑승해준 그녀가 고마워서 감사인사를 전하려는데 그녀가 갑자기 따라오라며 손짓했다. 그녀를 따라 간 곳은 범퍼카 입구였다. 굴리야가 범퍼카 담당직원에게 뭐라고 뭐라고 소곤대자 범퍼카 담당직원은 나더러 그냥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나는 얼떨결에 공짜로 범퍼카에 올라탔다. 이미 몇 명의 사람들이 범퍼카에 대기 중이었다. 히야 좋구만, 이거 이거 대체 얼마만의 범퍼카인가!

셀레는 범퍼카 시작 신호음 그리고 세상 정신없는 음악소리. 나는 신이 나서 범퍼카를 미친 듯이 몰아대었다. 우리 범퍼카 친구들은 서로의 꽁무니를 쫓아가며 냅다 부딪혀 대고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역시 범퍼카는 숨 막히는 추격전이다. 광란의 범퍼카 질주에 정신 나간 내 모습을 웃으며 바라보는 굴리야의 모습이 언뜻 언뜻 보였다.


이후 굴리야는 나를 매점으로 이끌었다. 아까 범퍼카장에서 일하시던 남자 직원분이 여기에서 또 일하고 계셨다. 가족 사업장인가보다 여기. 굴리야는 안쪽으로 나를 안내했고 나는 어리둥절한 채로 쫄래쫄래 굴리야를 따라갈 뿐이었다.

부엌 바로 옆 작은 공간에는 빨간 테이블과 의자들이 옹기종기 놓여있었고 금붕어가 헤엄치는 작은 어항도 있었다. 곧 굴리야가 빵과 음식을 들고 들어왔다.

"배고플 텐데 어서 먹어요."

굴리야는 이제 나에게 밥까지 먹여주는 것이었다. 아니 세상에 어떤 놀이공원이 무료로 놀이기구도 타게 해주고 밥도 먹여준단 말인가. 뱃속에 차곡차곡 들어차는 따뜻한 밥을 느끼며 이 일련의 사건들이 내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고 생각했다. 정말 이런 일도 다 일어나는 것이었다.



굴리야는 내가 한국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물었고 나는 춤을 춘다고 했다. 굴리야는 본인도 한 춤 한다며 갑자기 콧노래를 부르며 몸을 살랑살랑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교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라서 그런지 몰라도 나는 이렇게 다른 사람이 내 바로 앞에서 감상에 젖은 즉흥적인 몸짓을 하면 아직도 좀 민망해 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런 즉흥적이고 솔직한 몸짓을 좋아한다. 이 활짝 열림과 자유로움이 나는 정말 좋다.

춤추는 굴리야의 모습. 그녀가 문득 생각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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