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천천히 숙소의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아직 공사 중인 방들은 토히르씨의 손안에서 곧 간결한 손님방으로 탈바꿈 하게 될 터이다.
이 모든 작업들을 현재는 별다른 외부 도움 없이 토히르씨 혼자 도맡아서 하고 계시는 모양이다. 근 몇 년간 코로나 직격탄을 맞고, 현재도 관광비수기라서 작업에 필요한 자본금이 넉넉지 않아 보였다. 자재들이 아무렇게나 널려있는 공간들을 의욕적으로 가리키며 함박웃음을 짓는 토히르씨의 얼굴에 현실의 무게감이 빠르고 미세하게 스쳐 지나감을 느낀 것은 나만의 착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여기서 표면만 들췄다 가는 여행자일 뿐이다. 이 땅에서 매일의 삶을 꾸려가는 이곳 사람들의 실제적 일상을, 밥벌이의 고됨을 나는 알 수 없을 것이다. 우즈벡에는 생계를 위해 조국을 떠나 한국, 미국, 러시아 등 세계각지로 가려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고 한다. 솔직히 한국에서 몇 년 만 일하면 우즈베키스탄에서 집도 몇 채 사고, 가족을 부양할만한 충분한 돈을 벌 수 있단다. 그래서 정말 많은 우즈벡 사람들이 비자신청을 하고 무작정 기회를 기다린다고 한다.
토히르씨도 여기에서 숙소를 운영하는 것보다 한국에서 일하는 것이 가족을 부양하는데 훨씬 더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토히르씨는 나이 때문에 한국에서 일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토히르씨가 한국에 오려면, 결혼비자나 여행비자로 오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엄청난 액수의 통장잔고를 증명해야 하는 여행비자는 언감생심 꿈도 못꾼다고 했다.
"어릴 적부터 한국에 정말 가고 싶었는데 실질적으로 방법이 없네요. 하지만 언젠가 꼭 한국에 갈 거 에요. 한국에서 꼭 만나요!"
토히르씨 말씀대로 정말 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었다. 물론 현실의 벽이 존재한다지만 견고해 보이는 세상논리가 깨지는 것도 우리네 삶이니까. 어떤 기회나 만남이 언제 어떻게 우리에게 다가올지 어디로 우리를 갑자기 이끌어낼지 모르니까.
어느새 저녁 시간, 새 도시의 거리와 사람들을 보고 싶었다. 숙소를 나서는 순간, 세상 어두운 거리 때문에 적잖이 당황했다. 아니 무슨 사람 사는 데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도시는 침묵과 어둠에 푹 잠겨있었다.
누가 쏟아놓고 갔는지 밤하늘에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은 손만 뻗으면 금세 닿을 것만 같았다.
쏴아 - 부하라의 건조한 사막바람이 내 몸을 훑어 지나갔다. 봄 내음이 실린 바람은 부드러웠다.
약간의 두려움에 맞서서 어둠을 풀어헤치며 빛이 모여 있는 시내 쪽으로 묵묵히 걸었다.
멀리서 황금빛을 발하는 미나렛이 보였다. 부하라 어느 골짜기에 있더라도 저 첨탑만 잘 따라가면 길을 잃을 리는 없을 것 같다. 사막바람이 거셌고, 쌩쌩 지나가는 차들 뒤로 모래바람은 사정없이 춤을 추고 있었다.
미나렛 방향을 따라 얼마나 걸었을까. 적막한 어둠속에서 거대한 흙성이 그 몸집을 쑥하고 드러냈다.
바로 아르크 성(Citadel of ark)이었다. 이 흙성은 긴 시간을 묵직하게 버티고 서서는 침묵 속에서 현재와 조우하고 있었다. 13세기 몽골제국에 의해 파괴되고, 14세기 티무르 제국 시대에 부활한 우즈베키스탄은 티무르 제국 지배 이후 히바 칸국, 부하라 칸국, 코칸트 칸국으로 분리되었는데, 부하라는 부하라 칸국의 중심도시였다. 1920년 러시아에 정복되기 전까지 부하라 왕들의 거주지였던 이 아르크성은 7세기에 건축된 이후 파괴와 재건을 반복했단다. 현재 성의 모습은 18세기 재축조된 것이란다.
아... 나는 여태껏 인생에서 이토록 인상적인 성곽을 보지 못했다. 이것은 또 다른 버전의 고대 페르시아 바빌론 이슈타르 문인가? 타슈켄트 하즈라티 이맘 광장에서 느꼈던 장엄함과 압도감이 다시금 나를 순식간에 덮쳐왔다. 충격에 온몸이 마비되는 것 같았고, 다리가 무너질 것 같았다. 나는 내 눈 앞에 보이는 것이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실체인지 아니면 환상인지 도무지 분간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웅웅웅 귓가에 세차게 밀려드는 사막도시의 바람소리. 칠흑 같은 어둠. 광막한 광장 터. 강하고 신비스런 존재의 위용을 내뿜는 성.
눈물이 터졌다.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무슨 일을 하던 사람인지, 무슨 고민이나 했든지 간에 아무것도 파악되지 않았고, 아무것도 중요한 게 없었다. 내가 누구인지조차 기억해내기 힘들었다. 시간도 없어지고 공간도 없어졌다. 오로지 이 세상에 저 성과 나 밖에 없었고 내 몸과 정신은 그저 텅 비워진 것 같았다. 그것은 내 몸과 정신의 수용치를 넘어선 극도의 황홀감, 무아지경 같은 거였다.
“자아의 상실과 더불어 우리는 확장되고, 가벼워지고, 확산된다. 우리는 일상적인 삶 속에 더 맴도는 경직되고 찌든 편협한 자아의 차원보다 훨씬 더 실재적인 또 다른 차원에 도달한다. 마치 우리를 형성하는 보편성의 숨겨진 질료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기라도 하듯, 이처럼 드넓고 활력에 찬 공백 속에서 일종의 소환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 장 루이 시아니 「휴가지에서 읽는 철학책」 중에서
1712년에 지어졌다는 볼로하우즈 모스크(Bolohovuz masjidi)가 성 바로 맞은편에 서있었다. 형이상학적 무늬들이 섬세하고 정교하게 조각된 여러 개의 나무기둥들이 지붕을 받치고 있었다. 모스크는 경건함과 신비스러움을 넌지시 발하고 있었다. 곧 예배시간인지 이미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행여 늦을까 부지런히 발걸음을 재촉하는 무슬림들의 모습이 여기저기서 보였다. 자전거를 타고 오는 사람도 있고, 아들의 손을 이끌고 오는 아버지도 보였다.
예배당 입구에는 수많은 신발들이 각자의 생김새대로 어지럽게 놓여있었다. 급히 예배당으로 달려오시며 옷매무새를 정리하는 무슬림 노신사분이 예배당 안으로 쑥 들어가셨다.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다. 나는 그저 한참을 멀찌감치 서서 예배하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명치 아래 깊숙한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고요함이 내 딱딱한 몸과 살에 번져가고 있었다.
볼로하우즈 모스크에서 눈을 돌려 황금빛 첨탑으로 향했다. 까만 밤하늘 속 우뚝 서서 빛나고 있는 첨탑, 바로 칼론 미나렛(Minaret of Kalon)이었다. 1127년에 건축된 이 첨탑은 높이 46m로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높단다. 천여 년 전 이렇게나 높고 견고한 첨탑을 상상했다니, 그리고 그것을 실제로 구현시켰다니... 인간의 생각과 의지라는 것은 가끔 놀랍도록 위대하게 느껴진다.
아래 지름만 9m인 이 엄청난 몸집의 첨탑은 블랙홀처럼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일 것만 같았다. 심장이 쿵쿵 울려대며 뛰었다. 몸이 덜덜 떨리는 전율은 경이로움을 넘어선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 앞에 주저앉고 싶었고 엎드리고 싶었다. 마치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고,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내 머릿속 어떠한 정보로도 해석이 금세 안 되는 거였다.
맨 아래에서부터 꼭대기까지 눈을 따라 한참을 올려다보았다. 첩탑에서 흘러나온 황금빛이 주변을 온통 물들이고 있었다. 나는 텅 비었다. 동시에 충만했다. 그리고 고독했다. 이 고독한 충만감이 좋아서 혼자 여행을 하는 것일 테다. 하지만 인간이란 이곳에 서서 저곳을 갈망하는 존재인건지 나는 이 환희의 순간을 함께 나눌 누군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말았다.
오롯이 내 기억 속에만 존재할 시간이 될 테니까. 나 말고는 아무에게도 증명될 수 없는 주관적 시간이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