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하라로 떠나는 기차. 또 다시 여기에 올 인생의 날이 있을까. 떠나는 도시를 바라보면서 올라오는 애잔함에 마음이 약간 스산해졌다.
기차 안 내 자리를 찾았다. 자리에 앉아있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대뜸 아무 말 없이 일어났다. 그리고는 내 무거운 짐을 번쩍 들어 선반위에 턱 하니 올려주는 것이었다.
다소 경직된 무뚝뚝한 얼굴에 진중함이 서려있는 남자. 그의 이름은 아지즈벡이었다.
그는 역도선수 출신의 코치로, 해외에서 선수들과 대회에 참가하고 6개월 만에 아내와 아들을 만나러 집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이제 곧 국가 대표팀의 코치로 일하게 된다는 그는 대개 심각하고 진지한 표정을 유지했으나, 가끔 봉인 해제된 빙구미소를 풀어보였다. 빙구미소를 자각한 후에는 급히 얼굴의 미소를 지워버리고 다시 근엄한 코치의 얼굴로 금세 돌아오곤 했다.
"항상 표정이 이렇게 근엄해요?"
"나는 인생에 매우 진지한 사람입니다. (무슨 번역기가 이런가;)"
그는 내가 준 한국 청포도 사탕을 입안에 오물오물 굴리며 꽤나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뜨겁게 내리쬐는 중앙아시아 대륙 오후의 태양, 건조하고 뜨거워진 열차 내 공기, 덥고 나른했다. 간식을 파는 상인들만이 기차의 중간복도를 휘저으며 신선한 공기를 주입하고 있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드디어 부하라에 도착했다.
태양빛이 내리쬐는 낯선 곳, 여기는 어디이며, 나는 어디로 가야하나.
뒤에서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아지즈벡씨다.
"연락하겠습니다. 내일 만나요. 부하라를 구경시켜 줄게요!"
역 앞에 택시기사님들의 무리를 시크한 표정으로 통과했다. 필요가 없다는데도 자꾸만 나를 따라오는 기사님을 간신히 밀쳐냈다. 이제 얀덱스 택시를 타고 숙소로 이동하면 되었다. 그러나 한쪽 땡볕에서 여전히 손님을 기다리는 그 택시기사님이 어쩐지 애잔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이렇게 미련을 또 떨었다.
"얀덱스 택시에서는 이 정도의 예상 가격이 나와요. 기사님이 같은 가격에 해주시면 기사님 택시를 타려고요."
나는 그렇게 기사님의 택시에 올라탔다. 숙소는 멀지 않았다.
"허허. 이건 아니지. 지금 얼마를 왔는데, 이걸 택시비라고 내시나"
도착 후 택시비를 고이 드리는 순간, 상냥했던 얼굴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기사님은 처음 합의한 금액의 배가 넘는 금액을 너무도 당당하고 뻔뻔하게 이야기했다.
미련하게 택시기사님을 곧이곧대로 또 믿어버리다니... 나의 미련함과 세상 친절 맞았던 기사님에 대한 배신감에 도무지 진정이 안 되었다. 나는 울분을 최대한 가라앉히며 처음 합의했던 것과 다르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렇게 영어로 잘만 말씀하시던 택시기사님은 갑자기 영어가 머릿속에서 사라졌는지 못 알아먹겠다는 표정이었다. 그저 본인말만 하면서 돈을 더 안주면 안가겠다고 버티며 러시아어로 고함을 질렀다.
너무나 화가 나서 손이 덜덜 떨렸다. 아무리 돈이 중요하다지만 세상에 어떻게 이런 사기를 치나.
길가에서 택시기사님과 옥신각신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데, 경찰로 보이는 한 분이 다가오셨다. 무슨 일이 있는 거냐며 아주 서툴고 느린 영어로 내게 물으셨다.
나는 흥분한 채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내가 경찰관님께 영어로 말하면 그 분은 중간에 서서 우즈벡어로 택시기사님께 질문을 했다. 그럼 택시기사님은 본인이 더 황당하고 어이없다는 식의 제스처를 섞어가며 우즈벡어로 한참을 하소연하는 거였다.
택시기사님이 내 말대로 합의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며 매우 미안하고 난처한 표정을 짓는 경찰관님.
"그 돈 드릴게요. 드리면 되잖아요. 그래 다 가지세요."
나도 모르게 경멸이 담긴 눈으로 택시기사를 바라보았다. 배신감과 억울함, 서러움 그리고 나의 미련함 때문에 감정이 복받치기 시작했다. 별것도 아니니 침착하고 쿨하게 넘겨야 하는데 눈물이 차오르는 거였다.
‘나는 쿨해 나는 쿨해. 나는 세상 쿨하다고... 울면 지는 거다. 절대로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된다.’
이미 눈물은 그렁그렁 차올랐다. 졌다. 역시 난 쿨하지 못하다.
하...들켰나보다. 한참 언성을 높이던 택시기사님이 갑자기 원래 금액 언저리만 받고 끝내잔다. 나는 뒤도 안돌아보고 빠르게 값을 지불하고 무작정 앞으로 걸었다. 왜냐하면 눈물이 똑 떨어지기 직전이었으므로.
"부하라에 처음 오셨는데 이런 일을 겪게 돼서 너무 미안하고 유감입니다. 하지만 부디 부하라에서 좋은 시간 보내시기를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경찰관님이 애틋한 눈빛으로 내게 말씀하셨다. 나는 몇 살인가. 아직도 이렇게 사람 말을 홀랑 믿고 이런 일이나 당하다니, 게다가 감정까지 주체 못해서 눈물까지 보이고 말이었다. 태양은 너무 뜨거웠고 캐리어는 무거웠다. 택시기사님 왈, 바로 코앞이라던 나의 숙소는 지금 여기에서 20분 걸리는 거리라는 것도 확인했다....입성 일진 한번 사납고만.
여기 부하라는 어째 사마르칸트보다 모래바람이 훨씬 더 심하게 부는 것 같다. 뜨겁고 건조한 사막도시. 구불구불 작은 골목길로 이어진 돌길과 흙길을 따라 걸었다. 모래로 뒤덮인 듯 온통 옅은 흙빛을 내는 이 작은 도시는 한적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물론 내 마음은 앞전의 일로 온전히 평화롭지는 않았지만 말이었다.
흙바닥을 세상 요란하게 가르는 캐리어 덕분에 동네 어르신들과 동네 꼬맹이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동네 속으로 꽤나 걸어 들어온 것 같은데 숙소는 코빼기도 보이질 않았다.
"안녕하세요!"
너무도 자연스러운 한국말에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봤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배꼽인사를 하는 우즈벡 아저씨. 바로 숙소의 주인인 토히르씨였다. 토히르씨를 따라 들어온 곳은 숙소라기보다는 가정집에 가까웠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생각보다 넓은 공간이 안쪽으로 깊게 이어져 있었다. 몇몇 공간들이 공사 중인지 잡다한 비품들과 가구들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널브러져 있었다. 숙소 안마당에는 큰 테이블과 소파가 비치되어 있었다. 마당의 한쪽 구석 흙밭에는 헤집어진 흙덩이들이 보였고 하늘엔 빨랫줄이 느슨하고 길게 누워 있었다.
토히르씨는 가족방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는 온 가족들에게 나를 소개시켜주었다.
얼떨결에 토히르씨의 어머님과 아내, 어린 딸과 막내아들 가족 모두를 두루 만났다. 생면부지인 나를 엊그제 본 사람처럼 따뜻하게 맞아주시는 토히르씨네 가족들 때문에 어안이 벙벙했다.
가정집 분위기의 평화로운 숙소, 벌써 내 마음은 한결 평온해졌다. 이러려고 여기까지 오는 길이 힘들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