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구의 여행은 빡세다

by 움직이기

비비하눔 모스크(Bibi-khanum)를 영접하러 가기 전, 조키르 아저씨가 아이스크림을 사주셨다. 별로 먹고 싶지 않다고 말씀드렸는데, 듣지도 않으셨다. “아 글쎄 먹어보라니까 그러네요.” 지금 이 여행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 무의식적인 표정과 몸짓에 드러 났나 순간 아차 싶었다. 아저씨는 생업을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던 것 뿐 이었다. 그게 비록 이곳에 처음 오는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약간의 거짓말과 심리게임, 비즈니스 상술과 자본주의 미소를 포함한다 할지라도. 아무튼 선택은 내가 한 것이었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것, 호구의 선택일지언정 이 경험을 최대한 의미 있게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비록 돈으로 점철된 우리의 관계라지만, 아저씨가 돈만 밝히는 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계속된 나만의 착각일지 모른다) 나는 최대한 아저씨를 진실하게 대해야겠다고, 예의를 잃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찌됐든 나 자신이라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또한 한국인이라는 국민적 차원에서 행동거지를 잘 챙기며 돌아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영접했다 아름다운 비비하눔...! 티무르 왕이 사랑하는 왕비를 위해 건축한 모스크다. 바빌론의 네브카드네자르 2세도 왕비 아미티스를 위해서 사막의 땅 한 가운데에 꽃과 분수가 넘치는 아름다운 공중정원을 건설했건만, 아무튼 대제국을 건설한 대쪽 같은 왕들도 여인 앞에서는 말랑말랑 세상 속절없는 사랑꾼들 이었나보다.

당시 왕은 제국에서 가장 뛰어난 건축가들과 예술가들을 수도인 사마르칸트로 불러 모았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티무르 대왕의 인도 원정 중에 사원을 만들던 젊은 건축가가 비비하눔을 사모했단다. 왕비는 건축가에게 한 번의 키스를 허락했는데 그 사실이 왕에게 발각되고 말았단다. 분노한 왕은 건축가와 왕비를 모스크의 꼭대기에서 무참히 떨어뜨렸다고 한다. 아련한 이야기가 버무려지니 남다르게 다가오는 법, 비비하눔 모스크는 기품 있는 무게감과 우아한 아름다움을 고고하게 드러내고 서 있었다.



이후 우리는 시압바자르(Siab Bazaar)로 이동했다. 파닥파닥 날생선이라도 튈 것 같은 분위기의 바자르는 무척이나 신나는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40살 인생 처음으로 착즙 석류쥬스를 영접하였다. 주먹만 한 크기의 싱싱한 석류가 통째로 팍팍 들어가는 그야말로 100프로 석류쥬스 말이었다. 착즙기를 연신 눌러대는 쥬스 청년의 몸놀림은 꽤나 분주했다. 신선하고 새콤달콤한 쥬스가 온 몸에 촤악 퍼져나가자 나는 금세 초롱초롱해지는 것 같았다.

아저씨는 나를 상점 곳곳으로 데려갔다. 이것저것 먹어보라며 내게 계속 주시는데 나는 은근한 구매 압박을 느꼈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견과류 스니커즈 같은 우즈베키스탄 전통 디저트인 할바를 파는 가게에 갔다. 아저씨는 할바 상인 부부를 본인의 친척들이라고 나에게 소개했다. 아저씨는 “이슬람 종교문화권의 가족과 친척”의 개념으로 내게 그렇게 소개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당시 매우 진지했던 나는 말 그대로 피를 나눈 혈족인 친척으로 받아들였다. 나는 안 그래도 아저씨의 가이드 비즈니스를 생각해서 아저씨가 소개해주는 가게에서 무언가 하나쯤 사드리려고 했었다. 그런데 아저씨의 친척이라니 다른데 말고 여기서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지금 돌이켜보면 외국인인 나를 두고 서로의 비즈니스를 상생 도모하는 그런 자리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와장창 할바 무더기를 샀다. 비싸게 주고.

나 호구 맞나봐.



우리는 전통 수작업으로 카펫을 만든다는 공장을 방문했다. 이곳이 사마르칸트에서 카펫으로 가장 유명한 곳이란다. 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입구 벽면에는 각국 대통령들의 방문사진들이 떡하니 걸려있었다. 우리나라 문재인 대통령의 당시 방문사진도 있었다.

영어로 내게 설명해주는 친구는 아프가니스탄계 남자 소년이었다. 카펫공장이 본인의 가족 소유란다. 고등학생인 이 친구는 학교가 끝나면 공장에 와서 방문객에게 영어로 가이드를 한다고 했다. 이 친구에게는 마치 매너리즘에 빠진 중년사내 같은 기계적이고 무심한 태도와 십대 소년의 순수함이 뒤엉켜 있었는데, 그것이 참 오묘한 느낌을 주었다.



소년은 티가 확 나지 않는 정도의 교묘하게 기계적인 태도로 내게 카펫을 만드는 과정을 손수 보여주었다. 하나의 매듭을 만들기 위해서는 여덟 번의 정교한 손놀림이 필요했다. 가는 실들의 향연, 날렵하고 섬세한 손놀림. 손이 야물딱지지 못한 나는 바로 옆에서 봐도 어떻게 저 가느다란 실들이 각기 제 길로 가는지 혼돈스러울 뿐이었다.

카펫 재질과 디자인에 따라서 카펫이 제작되는 기간은 천차만별이란다. 한 사람이 꼬박 6개월에서 몇 년까지도 작업한단다. 카펫이 발달하지 않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여기 우즈벡에는 곳곳에 훌륭한 카펫작품들이 참 많다. 장식품에 워낙 관심 없는 나도 하나 사서 가져가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다. 작은 카펫 테이블보를 만지작 하다가 내게 정말 필요한 물건은 아니었기에 그냥 고이 놔두었다.



카펫공장을 나와 최근에 지어졌다는 복합쇼핑단지 실크로드 사마르칸트(Silk road Samarkand)로 향했다. 나는 정말이지 피곤했다. 하지만 50달러가 아깝지 않은 세상 살뜰 맞은 관광을 해야 했으므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어금니를 깨물었다. 나는 해야 한다...

이 복합단지는 실크로드를 테마로 한 거대한 규모의 쇼핑관광 센터였다. 날이 금세 어둑어둑해졌고 세상 말끔하게 정비된 단지 곳곳에 조명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법적인 시간이 시작되었다. 저 앞에 호숫가를 가로지르는 하얀 돌다리와, 유혹하듯 황금빛으로 넘실대는 신비스러운 성이 보였다. 저것은 고대 페르시아의 바빌론 이슈타르문인가? 갑자기 내가 아라비안 나이트 속에 들어온 건가? 저 성문 안으로 들어가면, 매력적인 이국언어들의 소리가 귓전에 들릴 것 같다. 터번을 쓴 진한 얼굴의 상인들과 낙타도 만나게 되겠지. 마치 알라딘이 카펫을 타고 날아다닐 것 같이 신비로운 곳. 나는 꿈꾸듯 몽환적인 시공간 속으로 훅 빨려드는 것만 같았다.


성문 안쪽으로 들어서자 아라베스크 문양으로 빽빽하게 장식된 돔과 미나렛, 건물들이 온통 황금색과 푸른색으로 물결치고 있었다. 귓가에는 아득한 아랍을 소환하는 음악이 아른거렸다.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처럼.

작은 길 곳곳에는 고급식당들과 개성있고 감각적인 기념품 가게들이 들어서 있었는데 약간 로맨틱한 느낌을 주었다. 이야, 여기에서 데이트하면 거의 뭐 날 잡겠다. 하지만 날 잡고 싶은 '그이'는 내 옆에 없다. 대신 번쩍이는 금니를 드러내며 능구렁이처럼 웃고 계시는 우리의 조키르 아저씨만 있을 뿐.

뭐 괜찮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진 듯 그야말로 뭐 어떠하리........


오늘의 마지막 코스, 바로 사마르칸트의 백미라 할 수 있는 레기스탄(Registan) 광장에 왔다. 아아... 눈앞이 아찔하리만큼 광활한 광장에 위용을 떨치고 서 있는 세 개의 메드레쎄. 레기스탄은 ‘모래땅’이란 뜻으로 옛날에 이곳은 모래로 뒤덮인 사막이었단다. 여기에서 왕의 알현식, 공공집회, 죄인의 처형 등이 행해졌는데 티무르 시대에는 대규모 노천 시장이 있었다고 했다. 티무르의 후손인 울루그벡 시대에 들어 처음으로 메드레쎄가 세워지기 시작해서 가장 왼쪽 울루그벡 메드레쎄(1417년-1420년), 오른쪽에 셰르도르 메드레쎄(1619년-1636년), 가운데에 틸랴코리 메드레쎄(1646년-1660년) 순으로 지어졌단다. (출처: 실크로드의 중심지 우즈베키스탄, 김성기)



이토록 압도적인 규모일거라고는 나는 정말 상상도 못했다. 그 시대에 대체 어떤 생각의 규모를 가진 사람들이었길래 이렇게 눈으로는 가늠조차 되지 않는 거대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을 상상하고 구현해냈을까.

멀리서 광장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한쪽에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조명을 받아 더욱 매혹적인 레기스탄 광장은 정말이지 한 폭의 비현실적이고도 완벽한 그림 같았다. 손을 뻗으면 잡힐 듯 눈앞에 생생하게 아른거리는 신기루.

내가 지금 어디 있는 거지? 꿈같고 마법 같았다.

나는 이 환상 속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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