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도착한 사마르칸트. 역 앞 택시기사님들에게 호갱 당하지 않으려면 이제 정말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나는 지금 막 태어난 사슴 새끼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눈뜨고 코 베이는 거란 말이다. 사마르칸트에서는 얀덱스 택시 앱이 안 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기사님들과 흥정에 들어가야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얀덱스 택시 앱은 히바를 제외한 나머지 큰 도시에서 매우 잘 작동한다.)
생애 처음으로 발을 디디는 이 낯선 장소에서 나는 막막함과 약간의 고독감에 속절없이 휩싸였다.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하나.
"안녕하세요!"
응? 순간 뒤에서 한국 사람이 나를 부르는 줄 알았다. 페르시아 계통인 듯 약간 진한 얼굴을 한 택시기사님이 세상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서 다가오고 계셨다.
자연스러운 한국말로 친근하게 다가오는 기사님께 나도 모르게 아이고 안녕하시냐고 꾸벅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기사님은 대전 해찬들 공장에서 거의 20년간을 일하시고 돌아오셨단다. 내게 사원증까지 떡하니 보여주셨다. 아니 해찬들이 웬 말이냐. 푸근함을 한바가지 선사하는 그 이름.
그렇다, 나의 살던 고향은 대전. 그럼 당연히 아저씨 택시를 타야지 어쩌겠는가. 대전 해찬들에서 다 오셨다는데.
택시 기사님은 내 숙소위치를 한번 스윽 보시더니, 가격을 제안하셨다. 합리적인 가격이라서 굳이 흥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기사님은 숙소로 가는 내내 본인의 한국경험을 침까지 튀겨가며 쭉 늘어놓고 계셨다. 낮고 자그마한 집과 건물들이 가지런히 늘어선 황토색 사막도시의 이국적 풍경이 차창을 스쳐지나갔다. 한국보다는 약간 더 뜨거운 태양, 손바닥이 퍼석거리는 쌀쌀하고 건조한 날씨가 느껴졌다. 낯선 곳을 찾아오느라 긴장했던 몸은 뭉근하게 풀어지고 있었다. 알싸한 취기 같은 노곤함이 밀려오고 있었다.
"사마르칸트는 유적들이 흩어져 있어서 걸어서 못 가요. 택시로 이동해야 되는데 유적지마다 이동할 때 택시요금 많이 나와요. 사마르칸트는 넓어서 걸어서는 유적지 다 못 봐요. 괜찮다면 내가 택시로 가이드 해줄 수 있어요. 50달러에 하루 종일 같이 돌아다니는 거에요. 어때요? 아 진짜 걸어서는 못 본다니까."
숙소에 다다를 무렵, 길가 옆에 차를 세우고 말씀하시던 아저씨.
아아.. 나는 왜 그 때 뿌리치지 못했는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사실 사마르칸트의 거의 웬만한 유적지는 걸어서 충분히 관광이 가능했다. 당시 나는 이 실크로드의 역시도시 사마르칸트에 대한 환상으로 가득했다. 이런 유서 깊은 역사유적지들을 돌아다니면서 하루 종일 가이드 해주신데 겨우 50달러? 저렴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50달러도 턱없이 부족한 거지요. 아이고 암요 암요 이러면서.
게다가 (물론 의도적인 밑 작업 이었겠지만) 숙소로 오는 내내 한국이야기를 늘어놓으시며 친절하게 대해주시는 아저씨의 제안을 단칼에 뿌리치기가 어째 좀 미안한 것도 사실이었다.
오케이! 그렇게 나는 사마르칸트 유적지 하루 가이드를 결정해버렸다.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나갈 채비를 했다. 갑자기 의심이 파도처럼 밀려오기 시작했다. 어떤지 직접 알아보지도 않고서, 걸어서는 유적지 답사를 못한다는 아저씨 말만 덥석 믿고 충동적으로 결정을 해버린 게 아닌가.
‘호갱 당한건가? 아니야. 나는 지금 호갱 당한 것이 아니야. 합리적인 선택이었어.’
주문인지 최면인지 모를 것들을 속으로 중얼거렸다.
택시기사님의 이름은 조키르, 아저씨와 본격적으로 사마르칸트 탐사에 나섰다. “배고파요?” 아저씨는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동네 골목에 자리 잡은 빵집으로 나를 인도했다. 리뾰쉬카(우즈벡인들의 주식빵)와 솜싸(감자나 고기를 넣어 만든 세모난 빵)로 배를 뜨듯하게 채웠더니 아저씨에 대한 불신이나 의심도 누그러드는 기분이었다. 고작 한 조각 빵에 굴복 당하는 내 자신이 우스웠지만 어쨌든 사실은 사실이었다.
첫 시작은 구르 아미르(Gur-e Amir). 아무르티무르 묘지였다. '구르'는 묘, '아미르'는 지배자라는 뜻으로 지배자의 묘지라는 뜻이다. 1403년-1404년 티무르가 자신의 손자 무함마드 술탄이 이란에서 죽은 것을 추도하기 위해 지었단다. 티무르자신도 1405년 명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떠나던 중 병사하여 이곳에 수장되었다고 한다. 묘지 안에는 티무르, 손자 무함마드 술탄, 아들 샤호르, 샤로흐의 아들 울루그벡, 티무르 스승의 관이 전시되어 있었다.
벽면과 천정을 빼곡하게 메우는 섬세한 문양들, 번쩍이는 황금빛과 신비스런 푸른빛의 아름다운 향연이 눈앞에 물결처럼 펼쳐졌다. 아... 나는 크게 감탄했다. 벽면을 따라 눈이 가는대로 몸을 360도로 빙그르르 돌려가며 곳곳을 바라보았다. 아래부터 저 높은 천정까지도 쭉 올려다보았다. 목을 90도로 꺾어야 볼 수 있는 천정은 하늘에 닿을 만큼 높이 솟아있었다.
이 사람들은 도대체 그 당시에 어떻게 이렇게 섬세한 예술적 미적 감각을 계발시켰을까. 게다가 이렇게나 정밀하고 과학적인 기술력까지 보유하고 있었다니 말이다. 먼지 같은 인간존재라지만 또 이런 것을 보면 인간 의지와 표현의 위대함과 탁월함에 세삼 놀라는 것이다.
“우리는 시간이 없어요. 아직 볼게 엄청 많아요. 오늘 종일 봐도 다 못 봐요.” 한참 감상중인 나에게 택시기사님이 뒤에서 말씀하셨다. 하.. 저는 천천히 이 공간을 더 보고 싶다고요. 내가 원하던 여행은 이런 게 전혀 아니었는데, 시간에 쫓겨 유적지 눈도장만 찍고 가게 생겼다. 후회가 물밀 듯이 마구 밀려왔다. 그 누굴 자책 하겠는가. 다 내 탓이오. 내 탓.
아저씨와 나는 금세 차로 이동하여 아프랍시압(Afrasiab) 박물관으로 갔다. 박물관으로 가는 길, 칭기즈칸에 의해 파괴되기 전까지 옛날 사마르칸트가 있었다던 나지막한 아프랍시압 언덕이 펼쳐졌다. 박물관은 이 언덕에서 발굴한 고고학유물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사마르칸트는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기원전 5세기부터 역사를 간직하고 있단다.
사마르칸트는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의 침입을 시작으로 훈족을 비롯한 북방유목민의 침략, 7세기 아랍의 침략 등 여러 이민족의 침입을 받았다고 한다. 13세기 칭기즈칸에 의해 파괴되기까지 실크로드의 교역지로 크게 번성하였으며 14세기에는 티무르가 사마르칸트를 제국의 수도로 삼아 ‘동방의 로마’로 키우고자 했단다. (출처 인용: 실크로드의 중심지 우즈베키스탄, 김성기)
말로만 듣던 7세기(650-655) 아프라시압 벽화 앞에 섰다. 사마르칸트 귀족의 저택 벽을 장식했던 거란다. 벽화의 오른쪽 끝, 상투머리에 새의 깃을 꽂은 조우관을 쓴 고구려 사신이 보였다. 그러나 벽화를 가만히 바라볼 새가 없었다. “다른 곳도 봐야 해요. 우리는 시간이 없어요.” 단순히 벽화를 영접했다는 사실 자체로 만족하고 위로해야 하는 현실이라니.
아저씨는 벌써 그 다음 유적지로 갈 생각이신지 나보다 저만치 앞서가서 빨리 오라고 나를 은근히 재촉하셨다. 이것보라 저것보라 하시면서 나를 계속 앞쪽으로 쭉쭉 끌고 가시는 거였다.
나는 아저씨한테 끌려가고 있었다. 코뚜레에 꿰어진 고삐를 따라 질질질.
아저씨와 나는 1991년부터 2016년까지 집권한 우즈벡 초대 대통령 이슬람 까리모프(Islam Kaimov)의 묘지가 있는 모스크에 들렀다. 높은 지대에 위치해 있어 주변 경관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었다. 늦은 오후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저 멀리 쏭쏭 솟아있는 모스크와 미나렛들이 보였다. 눈이 대번에 트이는 풍경에 꽉 막힌 내 마음도 팡 터지며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여기 사람들은 대통령의 묘지인 이곳을 성스럽게 여기는지, 아저씨 말씀으로는 소원을 빌고 기도하러 사람들이 많이 온단다. 실제로 모스크 안팎에서 단정한 얼굴로 기도에 열심인 사람들이 많았다. 모스크 안쪽에 아주 작은 기도실이 있다는데, 원한다면 나도 들어가서 기도할 수 있다고 했다.
머리를 조아리고 허리를 깊이 구부려야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손바닥만 한 작은 기도실이었다.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어린 아가씨가 앉아서 조용히 기도하고 있었다. 그녀는 손바닥을 하늘로 향한 채 두 손을 동그랗게 모으고서는 작은 입술을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성스러운 장소”에 대한 믿음의 태도를 잊은 지 아주 오래되었다. 물리적 장소 자체가 지닌 성스러움은 없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신비스럽고 마법적인 장소는 그저 사람들의 바람과 기대에 기인한 해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무심하고 미적지근한 가슴. 내가 너무 딱딱해진 건가.
여성의 기도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녀는 이 신성한 이곳까지 직접 와서 신에게 자신의 바람을 간절히 읊조리고 있었다. 마치 신이 자신의 바람을 듣고 다 이루어줄 것처럼. 특정 신이라든지 혹은 신의 존재여부를 떠나서 인간의 믿음, 그 몸짓과 표현 자체가 고유하고 숭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하고 믿는 것을 몸짓으로 드러내는 인간의 본성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