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유와 고유 Jan 27. 2024

나는 왜 무용을 좋아하는가.

어려서부터 춤추는 게 그저 신나고 좋았다. 초등학생 때부터 tv에 나오는 가수들 뒤에서 춤추는 백댄서가 되고 싶었다. 가수들만 나오면 그 앞에서 열심히 몸을 흔들어대었다. 춤을 배우고 싶었지만 넉넉지 않은 집안환경 때문에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공부해서 이 집안을 살려야 한다는 진지한 부모님 말씀. 송구하지만 부모님은 매우 큰 착각을 하셨다. 결국 나는 스무 살이 넘어서 결단했다. 평생 이렇게는 도저히 못 살겠다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하고 싶은 것은 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못 배워서 한 맺힌 무용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무용을 하는 것은 힘들지만 정말이지 좋았다. 물론 다는 아니지만, 보통 무용은 어릴 때 엄마 손에 이끌려 무용학원에 오는 것으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입시무용은 상당한 교육비가 필요하기 때문에 집안형편이 좋지 않으면 전공은 어려운 경우가 많다. 나는 나보다 좋은 환경에서 일찍부터 무용을 시작한 친구들을 보면서 무용을 늦게 시작할 수 밖에 없었던 내 환경에 대한 박탈감과 부모님에 대한 원망에 자주 사로잡히기도 했다.



한참동안 거의 무용에 미쳐서 살았다. 무용과를 졸업하고 무용단에 들어가고 무용수로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춤은 내 안에서 시간과 함께 점차 축적되고 성장해갔다. 나는 나 자신이 움직임을 통해 점점 커지고 상승되는 것을 느꼈다. 신체조절능력이 세밀하게 발달되면서 마음의 욕구와 감정들을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 말보다 훨씬 직접적이고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몸과 마음이 혼연일체가 될 때 느끼는 충만한 기쁨과 희열은 무척 은밀한 나만의 것이었다. 그것은 무한한 자유로움으로 열린 세계였다.

무대에서 힘과 마음을 다해서 내 안으로 들어가서 움직이려고 애를 썼다. 그것이 나에게는 매우 중요했다. 그래야지만 내가 진실할 수 있었다. 빈껍데기 거짓말, 혹은 현란한 미사여구 같은 움직임을 늘어놓으면 스스로 부끄러웠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스스로 진실하지 않았다는 것을 나 자신은 아니까.   



몸과 마음의 막이 없어져서 하나가 된다. 움직임이 점차 쌓이면서 숨이 차오른다. 감정은 격앙되고 신체 허용치가 극에 달할 때 무아지경으로 들어간다. 그때 (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나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자유로움과 초월성 같은 것을 느꼈다.

내 육신의 껍데기는 헐떡이며 움직임을 수행하느라 너무 힘든데, 그 속에 나는 이상하리만큼 자유롭고 황홀했다. 마침내 육신의 껍데기를 벗어나 다른 무한한 세계로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공연 무대는 내 나름대로의 정화의식이나 제의 같았다. 나를 순전하게 불태워서 어떤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길. 그 순간에는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았으며 어떤 것도 상관이 없었다. 그 충만하고 은밀한 황홀감은 그야말로 나만의 것이었다. 이 세상의 어떤 것도 나에게 이런 상태를 주는 것은 없었다. 나는 정말 이대로 무대에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무대에서 죽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공연이 다 끝나고 나면 진이 쏙 빠져서 대개는 매우 헛헛하고 취약해지고 고독해졌다. 마치 다 타고 남은 하얀 잿더미가 된 심정이었다. 내 모든 피땀을 쏟고 나면 나는 그렇게 텅 비워져서 한동안 덩그러니 있었다. 다른 동료들은 어땠는지 몰라도 나는 자주 이런 상태에 빠졌다. 작업이 끝나면 그렇게 한동안 하릴없이 떠도는 마음에 맥없이 방황을 하고, 고민을 했다. 이렇게 힘든데 무용을 계속 해야 할까, 과연 평생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이래도 계속 이렇게 살고 싶은가, 다음에는 또 어떤 작업을 해야 할까. 어떡하면 더 좋아질 수 있을까... 적어도 내게는 신체적 정신적 에너지 부담이 많이 드는 일이었다. 할 때마다 내 존재를 온전히 드러내고 쏟아 부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까지 어느 정도 그럭저럭 이런 완급조절이 잘 되지 않았고, 일의 특성상 그렇게 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걸 어쩌랴. 이거 말고 이 세상에 그 어떤 것도 이런 충만한 황홀감을 주는 것은 없는 걸.     




작가의 이전글 [나의무용이야기] 아름다움이란 외적인 조형미가 아니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