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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무용_ 존재의 밑바닥 힘까지 쥐어짜서

몸과 마음과 정신의 힘을 쏟아붓기

by 움직이기

"선생님이 하시는 것을 보면, 때론 너무 쉽게 보여요. 힘을 별로 안 들이고 하는 것처럼 보여요. 그래서 저도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실제로 해보면 전혀 그렇게 쉽게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제가 수강생분들 앞에서 동작을 하며 시범을 보일 때, 그것이 때로는 너무 쉬운 듯, 힘도 별로 들이지 않고서 마치 그냥 버튼만 누르면 매번 자동적이며 일률적으로 출력되는 로보트처럼 보인다는 것을 최근에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정직하게 말씀드리자면, (기술적 표현이든 정신적 표현이든 난이도가 너무 낮은 것을 제외하고) 움직임을 할 때마다 저는 그것을 제대로 표현하려고 저의 온 몸과 정신을 합일시키고, 그 순간에 제 마음을 온통 집중하며 쏟아 붓습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 정말로 애를 쓰고 발버둥칩니다.

물론 이렇게 저렇게 무수한 반복연습을 통해서 그 동작을 수행할 때 가장 효율적이고 적절한 상태를 몸과 정신에 각인시켜 놓았기 때문에, 어떤 부분들은 가장 효과적인 방식으로, 반자동적이며 거의 반사적으로 수행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그 동작을 할 때의 호흡의 세기랄지, 호흡을 넣는 특정 위치랄지, 그 동작을 할 때 활성화되는 특정 근육의 위치랄지 팔을 휘두르고 다리를 휘두르던 나만의 그 특정하고 섬세한 방향이나 세기랄지, 그 동작으로 온전히 들어갔을 때 주로 떠올리던 정신적 상상이랄지, 혹은 그 동작으로 들어가기 수월하게 만드는 나만의 정신적 물꼬나 회로 등등 이같은 것들이 이미 몸과 정신에 저장되어서, 표현의 비효율성이나 실수를 현저히 감소시키지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미 저장되었다고 해서 몸과 정신을 별로 준비시키지도 않고, 힘을 들이지 않고 애를 쓰지 않고 수고를 들이지 않고서도 자동 로보트처럼 매번 똑같이 정확히 출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움직임이 행해지는 상황, 현장은 매번 다르고, 나의 신체와 정신상태도 매번 변화하는 유동적인 것이기 때문에 까딱만 잘못해도 표현이 원하는대로 원하는 만큼 되지 않고 어그러질 가능성이 무수히 많습니다.

그래서 움직임 표현을 할 때마다, 특히 기술적이든 혹은 정신적이든 표현의 난이도와 정밀성, 섬세성이 높은 표현일수록 다른 어떤 것도 생각나지 않을 만큼 그 순간, 그 장소에 온전히 몸과 정신을 합일시켜서 존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표현을 위해서 존재의 밑바닥까지 쥐어짜서 힘을 쓰고 애를 쓰려는 성심과 진심, 의지가 정말로 요구됩니다.

물론 아주 고도로 섬세하고 정교한 표현을 눈을 감고 편하게 신선놀음하듯 할 수 있는 춤의 고수가 있겠습니다만, 저의 수준과 경험에서 춤이란 것은, 할 때마다 매 시간과 공간속에서 온전히 존재해야 하는 것이고, 몸과 마음과 정신의 힘을 쏟아야 다다를 수 있는 것입니다.

존재의 밑바닥, 존재의 모든 진실하고 원시적인 힘을 성실하게 기꺼이 헌신하려는 순간적인 의식적/무의식적 의지 같습니다.(제가 또 너무 진지모드로 들어간 것 같습니다만;)

그래서 수강생분들이 외부에서 보시는 것처럼, 편하게 그냥 되는 듯이, 그냥 물 흐르는 듯이 하고 있지 않다는 것, (정말로 그런 수준이 있다면 되고 싶습니다) 실제로는 정말로 많은 힘을 쓰고 (어쩌면 "억지로" 혹은 "죽어라고" 라는 표현이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애를 쓰면서 아주 성심껏 동작표현을 하려고 발버둥친다는 진실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겉으로 현저하게 티가 나지 않을 뿐, 모든 춤꾼들이 사실은 그렇게 춤추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저도 그랬고, 무대위에서 온통 핏발 서린 눈을 하고 있던 저의 동료들도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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