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방구석댄스, 클럽댄스는 "춤"이 아닌가?
형식의 틀과 관습에서 해방되어 자기 방식으로 자유롭게 움직이라면서, 대체 왜 수련을 해야 하는 걸까요?
수련이 안된 사람의 움직임이라도 사실 그 사람 스스로 자유롭기만 하다면, 진실하기만 하다면 그것도 춤 아닌가요?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가 있지 않나요?
물론 그렇습니다. 예를 들면, 자기 방에서 혹은 클럽에서 자기만의 흥과 감성에 흠뻑 취해서 스스로 "자유롭게", "진실하게" 흔드는 몸짓 또한 춤이며,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수련 여부와 관계없이, 자신의 내면에 깃든 정신을 자유롭고 진실하게 몸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충분히 좋은 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체적 수련이 쌓이지 않은 상태에서 내면에 깃든 정신을 진정 "자유롭게", "진실하게" 몸으로 표현하고 구현해내는 것이 가능할지 의문스럽습니다.
그저 "내 마음대로, 내 몸이 되는대로, 내 몸이 편한 방식대로, 그저 감각대로 느낌대로, 있는 그대로 날 것 그대로 움직이는 것"을 혹시 자유롭고 진실한 것이라고 상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되기도 하고요. 그것을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롭고 진실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있는 그대로, 꾸밈없이, 날 것 그대로의 자유로운 춤. 그러나 수련하지 않은채로 춤에서 자유로움과 진실성을 추구하면, 자칫하면 그 춤은 가벼운 방종이나 자기위로, 자기도취적 발산, 무작위적 배설의 차원이랄지, 매우 개인적이고 특수한 감각적 차원에서 맴돌다가 끝나버릴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춤 수련은 현 시점까지 축적되어 온 춤 문법을 쌓는 작업입니다. 그 속에 내재된 신체적 정신적 예술적 자산을 획득해 나가는 작업이고요. 그것은 마치 어린 아이가 언어를 익히는 것과 비슷합니다. 아이는 자신을 표현하고, 타인과 세계로 연결되고 확장되기 위해서 언어를 배웁니다. 기존 단어들과 문법을 배웁니다.
언어를 익히지 않고서는 아이는 지금 당장 자신의 속에서 웅성대고 있는, 외침같은 감각이나 감정, 욕구가 무엇인지도 명확히 인지하기가 어렵습니다.
언어를 모르는 아이는 자기 나름대로 "자유롭고 진실한 방식으로", 손짓이로든 발짓이로든 눈빛이로든 동물적인 소리로든 자신의 있는 자원으로 자신을 표현하려고 들겠지요. 그러나 언어를 모르니 아이는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내적 상황을 분별하여 제대로 인지할 수가 없습니다. 인지가 제대로 되질 않으니 당연히 표현이 되지 않지요. 상대는 아이의 표현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상대와의 소통이나 공감이 어려운 거지요.
아이가 상대와 소통을 하고, 교감을 나누려면, 타인과 세계로 연결되려면 궁극적으로 보편적인 의사소통, 언어를 배워야 합니다. 그것없이는 아이의 표현은 언제까지나 파편적이고 무작위적인 외침, 날 것의 발산 차원에서 벗어나지 못할 테니까요.
저는 춤 수련도 그렇다고 봅니다. 수련없는 춤은 범위가 매우 협소하고 특수한 개인적 차원에서, 자기도취적 발산, 날 것의 파편으로만 끝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나의 몸짓이 나만의 감각적이고 폐쇄적이고 좁은 세계 차원에서 향유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도 물론 좋습니다. 그러나 그 차원에서 벗어나서 사람들과 공감하고 소통하고, 더 넓은 세계로 연결되고 확장하고 싶다면, 보편적인 몸짓 언어를 수련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전 사람들이 쌓아놓은 풍성한 몸짓언어를 쌓는 것입니다. 쌓으면 쌓은 것을 해체하고 파괴하고 변형하고 확장할 수 있습니다. 그 속에서 애쓰고 씨름하면서 자신만의 진정 자유롭고 진실한 몸짓언어, 고유한 언어가 탄생되는 것이지요.
물론 쌓는 것만이 자유나 고유성을 보장해주는 절대적이고 유일한 길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쌓지도 않고서, 자유나 고유성에 접촉할 수 있는 가능성이 과연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