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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와 고유 Jun 24. 2023

주인집 할머님의 떠남


이사 나온 예전 집, 주인집 할머님이 갑자기 엊그제 돌아가셨단다.



지난 5월에 이사나오면서 정산이 채 안되서 남아있었던 것들이 있었다. 주인집 할머님의 아드님과 정산때문에 이야기를 나누다가 알게 되었다. 갑자기 엊그제 돌아가셨다고.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한달전에 내가 이사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할머님은 매우 정정하셨는데 말이다. 어쩜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실 수가 있을까.



할머님은 허리와 다리가 매우 불편하셨다. 항상 허리가 깊게 구부러져 있었다. 계단을 오르시거나 이동하실때는 매우 천천히 조심스럽게 움직이셔야 했다. 그래서 할머님은 밖으로 외출하실 때에 개인전동차를 반드시 이용하셨다. 집 앞에 전동차가 있으면 할머니가 집 안에 계신다는 의미였다. 허리와 다리가 불편하셨던 것 빼고는 할머님은 매우 정정하셨다. 늘 새벽에 일찍 일어나셔서 뚝딱뚝딱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셨다. 눈이 오는 날에는 계단과 집앞에 쌓인 눈들을 싹싹 치워 나르시곤 하셨다.



아마 시작은 개떡이었을게다. 할머님과의 첫 교류가.

예전 집에 살던 어느 날, 할머님은 집에서 손수 만든 거라면서 나에게 진한 녹색빛이 나는 개떡 댓 개를 주셨었다.


"집 떠나 혼자살면 이런 거 먹을 기회가 없을텐데. 한번 먹어봐요"


먹을것을 나에게 나누어 주시는 할머님의 마음에 순간 나는 가슴이 무척 따스해졌었다. 사실 나는 이제 혼자 서울에 산지도 꽤나 오래되었고, 또한 이런 간결한 생활에 익숙함과 편안함을 느낀다. 그러나 가끔은 명치 깊숙하게 헛헛하고 시린 날들도 느끼곤 했던 것이다. 할머님이 건네주시는 작은 음식들은 나의 그런 감정들을 따듯하게 어루만져 주는 거였다. 잘은 먹고 다니는지, 배는 안 곯고 다니는지 나의 안위를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생각해준다는 것. 생각보다 가슴팍을 기운차게 북돋아주는 것이었다.  



할머님은 나에게 어느날은 김장을 하러 간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 내 문 앞에는 쑹덩쑹덩 썰린 김치 한 포기가 반찬통에 담겨져 있었다. 혹시 내가 못 봤을까봐 전화도 직접 하셨다. "문 앞에 김치 본 겨? 다 먹으면 반찬통 가져와요 또 줄테니까"



어떤날은 거실에 군고구마가 해놨으니까 가져가서 먹으라고 하셨다. 어떤 날은 아는 집에서 고구마를 캐서 가져왔다면서 내 것을 따로 떼어놓으셨다. 어떤 날은 감자도 주셨고 또 어떤 날은 고추반찬도 주셨었다.



처음에는 할머님이 주신 음식들에 손이 선뜻 가지 않았었다. 그러나 한번 손을 대기 시작한 이후 나는 할머님이 주신 음식들을 진심으로 좋아했다. 할머님의 음식은 정말 맛이 좋았고 재료들이 무척이나 신선했다. 할머님의 음식들을 정말 살뜰하게 잘 먹어대었다. 그럼 나는 할머니가 좋아하실만한 과일이나 음료수, 꽈배기나 도너츠, 빵, 뻥튀기과자 같은 것들을 가져다드렸다. 할머님은 그럼 또 잘 먹었다면서 또 음식을 주시는 거였다. 이렇게 할머님과 나의 음식셔틀순환은 계속되었다.



내가 이사간다니까 무척이나 아쉬워하셨다. 할머님은 내가 이사가던 날, 나에게 직접 담은 2리터짜리 페트병에 담긴 고추짱아치를 건네주셨다. 할머님은 나에게 며칠후에 무릎시술을 받을거라고 말씀하셨다. 그동안 다리때문에 수술을 정말 많이 받았는데, 이번에 또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할머님의 목소리에서 나는 슬픔과 두려움, 체념같은 것을 순간적으로 포착했었다. "시술이라는데, 시술은 금방하고 빨리 회복되는거 맞겠지?" 하고 나에게 물으셨을때, 갑자기 나는 나도 모르게 쎄함을 느꼈다. 나는 오늘이 할머님을 보는 마지막이 될 수도 있겠다. 할머님이 돌아가실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문득 떠오르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갑자기 왜 이런 생각이 드는거지 하면서 설마.. 아니야 그럴리 없어 하면서 고개를 내저었었다.



그때 할머님은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당신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신걸까. 내가 이사가던 그 날, 그게 내가 할머님을 보는 마지막이 될 줄이야...  이렇게 느닷없이 순식간에 죽음이 찾아올 수가 있나... 그날 나를 갑작스럽게 치고 흔들었던 그 생각이 현실이 되다니...



아드님에게 장례식장을 물어보았다. 할머님의 장례식장에 가려고 한다.

할머님은 지금쯤 순수 에너지가 되셔서 온 우주를 자유롭고 평화롭게 활보하고 계시겠지.



후... 이럴줄 알았다면 할머님이 좋아하시는 거 더 자주 사다드렸을껄....

아직도 할머님의 모습이 제 기억속에 생생합니다. 믿기지가 않습니다.

할머님 그때 저를 이렇게나 저렇게나 먹여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할머님 덕분에 마음이 따듯해진 날이 많았습니다.

고맙습니다 할머님.

할머님의 명복을 진심으로 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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