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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쭌쭌이맘 Apr 09. 2024

11화. 마음에 뿔이 솟아났다.

결국엔 내 마음을 찌르게 되는 것임을..

브런치에서 어느 작가분의 글을 읽는데 글의 마지막에 하루를 돌아보며 감사한 일들을 몇 가지씩 적어두시는데 어쩌면 이렇게 사소한 것에도 감사함을 느끼시는지, 이렇게 늘 감사하는 생활을 하시니 글에서 따스함이 느껴지고 그 기운이 나에게도 전해져 내 마음까지 위로가 되는구나 싶었다.

나도 일상 속에서 작고 소소한 순간에도 기쁨을 느끼고, 행복함을 느끼고 즐거움을 느끼는 편이다. 하지만 그런 순간을 감사함보다는 나는 이만한 일을 누릴 자격이 있어, 내가 이번 주 이만큼 고생했으니 나는 이 순간을 충분히 누릴 자격이 있어라는 약간의 거만함도 포함되어 있는 듯 하다.


그래서 나도 아이들과 함께 오늘 하루 감사했던 일들을 적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런 시간이 내 마음을 다스리는 것뿐 아니라 아이들도 작은 것에 감사함을 느끼고 점차 이런 행동이 생활화된다면 아이들이 커가는 과정에서도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도 절대 당연한 것이 아님을 그래서 감사함을 느끼고 고마움을 느낄 수 있다면 어느 하나 허투루 쓸 수 없을 것이며, 이러한 태도는 아이의 삶을 더 풍요롭고 여유롭게 해주지 않을까.

처음에는 오늘 하루 중 감사했던 일이 무엇인지 적으라고 하면 평상시 그런 표현을 잘하지 않는 아이들이 어려워하겠지. 선물을 받는 것도 아니고, 하루 종일 학교에서 공부하고 학원을 다녀온 게 전부라 힘들기만 하는데 뭐가 고맙고 감사한 일이라는 것인지 세 아이의 반발이 보지 않아도 눈에 보이는 듯 하다.


이들과 함께 천천히 하루에 한 가지라도 적어볼 수 있다면 어느 날은 고민하지 않아도 감사한 순간들이 샘솟듯 솟아나지 않을까. 무엇보다도 감정의 기복이 심한 나 스스로를 위한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저번 주말엔 활짝 핀 벚꽃도 구경하고 또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비를 보면서 아름다운 곳에서 가족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면서도 나는 감사함을 느끼지 못하고 서운하고 죄송함에 내 마음에 삐죽삐죽 뿔이 난 일이 있었다.


아빠 생신으로 친정 식구들 모임이 있었다.

그런데 아침부터 세 녀석들 기분이 안 좋은 것인지 차를 타고 가는 도중에도 그리고 도착해서 할아버지, 할머니, 이모, 삼촌을 만났는데도 제대로 인사도 하지 않고 표정도 뚱~ 했다. 다들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셔서 시간이 지나면 기분이 풀릴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대답했지만 이 녀석들이 왜 이러는 건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남편은 식사를 하면서 아빠와 술을 마셔서 이후 이동할 때 내가 운전을 해야 했다.  운전은 늘 남편 몫이었기에 목적지도 제대로 듣지 못한 상태에서 부모님과 아이들을 태우고 운전을 하려니 긴장이 되었다.(남편은 자리가 부족해 걸어서 이동하고 있었다.) 내가 길을 헤매고 있으니 엄마가 언니에게 전화를 해 스피커폰으로 위치를 설명해주기도 했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던 나는 우회전하는 길을 두 번이나 지나쳐서 직진을 해버렸고 한참을 가서 유턴을 해서 돌아와야 했다.

결국은 목적지 주차장까지 가지도 못하고 근처 길가에 주차를 했고, 목적지를 제대로 확인하는 않은 내 부주의를 탓하며 이렇게까지 헤맨 내 자신에게 화가 났다. 으윽!


천변길을 따라 활짝 핀 벚꽃 사이로 샛노란 천이 걸려 있고 그 아래 아기자기한 물건을 파는 플리마켓이 열리고 있었다. 구경하는 내내 나는 즐거웠고, 이것저것 사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야 했다. 남편은 술도 한 잔 했고, 이런 장소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둘째 아이와 한번 휙 둘러보고는 광장에 있는 의자에 홀로 앉아 있었고, 막내는 커다란 솜사탕도 먹고 마음에 드는 인형도 사게 되어 기분이 좋았고, 첫째와 둘째는 어째 반응이 미지근한게 빨리 숙소에 가소 쉬고 싶은 듯 힘든 표정이었다. 이런 체험을 즐기면 좋으련만 언제나 즐거운 건 나 혼자다.

[캐릭터 모양의 솜사탕은 귀 한쪽도 다 먹지 못하고 결국 버렸고, 요 작은 인형은 꽤 비싸게 샀는데 깨비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언젠가 저녁식사 시간에 첫째 아이가 수업시간에 단소로 연주하는 곡이 너무 좋아서 다 같이 들어보자고 노래를 틀어주니 둘째 아이가 정색하는 표정으로 "이건 엄마의 취향을 너무 강요하는 거 아냐?" 이러길래 그냥 꾹 참고 바로 노래를 끈 적이 있다. 지금 이 상황도 나의 취향을 너무 강요하는 것인가.


플리마켓을 구경한 후 레일바이크를 타는데 셋째 아이는 다리가 페달에 닿지 않는데도 언니, 오빠가 하고 있으니 본인도 하고 싶은지 불안한 자세로 페달을 밟았다. 그게 재미있고 또 제대로 하지 못해서 서운했는지 레일바이크를 또 타고 싶다고 남편과 나를 설득했지만 남편은 다시는 레일바이크를 타지 않겠다고 못을 박았고, 나도 너무 힘들어서 선뜻 타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다음날도 셋째 아이는 레일바이크를 타고 싶다고 했고, 내가 아침을 먹고 잠시 잠을 자는 사이 언니들이 레일바이크를 타자고 약속을 했나 보다. 아이는 신이 나서 옷을 갈아입고 꼭 엄마와 같이 가야 한다면서 나를 깨웠다.


남편과 내가 모르는 척하는 사이 두 언니가 아이를 달래주고 같이 가자고 약속을 한 것이다. 나는 너무 미안한 마음에 얼른 일어나 겉옷을 걸치고 모자를 쓰고 따라나섰다. 그런데 가는 길에 생각해 보니 그렇게 나오느라 지갑도 챙겨 오지 못했다.

언니는 조카를 위해 열심히 운전을 해주었고, 티켓까지 끊어주었다.

언니들 덕분에 셋째 아이는 앞 좌석에 앉아 페달을 열심히 밟으며 레일바이크를 제대로 즐길 수 있었다. 온전히 페달을 밟기엔 2% 부족했지만 언니가 키가 커서 내년에 또 오자고 약속을 해주었으니 아이는 충분히 행복했을 것 같다 남편은 상황이 궁금했는지 전화를 했고, 난 아주 재밌게 잘 타고 있다고 얘기를 해주었다.

그때 미처 전하지 못했지만 셋째 아이에게 레일바이크에 대한 좋은 추억을 남겨준 두 언니에게 진심으로 고마웠다.

가끔 언니들의 이런 선의를 내가 너무 아무렇지않게 받아들이고 있는건 아닌지. 절대 당연한 것이 아닌 정말 감사해야할 일인것을.


점심 식사까지 한 후 우리 가족은 집으로, 서울 사는 언니들은 기차역으로 그리고 큰언니는 부모님과 근처 꽃구경을 하기 위해 서로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그렇게 가족 모임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허전하고 서운하고 불만인 것인지.

아이들은 잠이 들었고, 나도 선글라스를 끼고 눈을 감았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은 내 눈을 가리고 싶었다.

집에 도착해 짐 정리를 하고 세탁기를 돌렸다. 남편은 고장이 난 화장실 비데를 뚝딱 고치고 방으로 들어갔고, 아이들은 핸드폰을 들고 방으로 그리고 나는 식탁 의자에 앉았다.

왜 이렇게 힘이 나지 않은 것인지. 분명 저번주까지만 해도 내 삶은 활기차고 생동감 있고 의욕이 넘쳐 흘렀는데 지금은 아무런 힘도 없는 것 같았다.


셋째 아이 운동화를 새로 한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는데 신발을 조여주는 찍찍이 부분이 고장이 나서 셋째 아이만 데리고 신발을 사러 다녀왔다.  저번에는 마음에 드는 신발을 고르는데 한참이나 걸려서 고생을 했는데 다행히 이번에는 아이가 마음에 드는 신발을 바로 골라서 무사히 쇼핑을 끝낼 수 있었다.

오늘도 지난번처럼 오래 걸렸다면 너무 힘들었을 것이다.


집에 돌아와 식탁에 앉아 무심코 오래된 카탈로그를 하나 보는데 예전에 아이들 책상, 침대를 살 때 봤던 것이다. 남편과 카탈로그를 보면서 마음에 드는 모델에 동그라미 표시를 해두었는데 그게 벌써 3~4년 전쯤 된 것 같다.

셋째 아이가 일명 벙커침대가 마음에 들었는지 슬쩍 사고 싶다고 한다. 나는 멀쩡한 침대가 있는데 무슨 침대를 또 사냐며 안된다고 했고, 이내 아이는 눈이 조금씩 붉어지더니 그럼 여기에 동그라미는 왜 한 것이냐고 물어봤다.

나는 조금 황당했지만, 이건 예전에 책자를 보면서 마음에 드는 모델에 표시를 한 것이라 꼭 사려고 한 건 아니었다고 했더니 아이는 다시 책상과 의자에 동그라미를 한 것을 보여주면서 여기는 동그라미 표시를 하고 사주지 않았냐 그런데 침대는 왜 동그라미 표시를 해놓고 안 사주냐고 했다.

이건 엄마아빠가 미리 어떤 스타일이 예쁜지 참고만 한 것이며, 실제 너희들과 가게에 같이 갔을 때 너희들이 이런 침대는 싫다고 했고 2층 침대도 아빠와 약속을 하면 사주겠다고 했지만 너희들이 거절을 해서 지금 침대를 산 것이다라고 했더니 아이는 계속 왜 동그라미 표시를 해두었냐고 따지듯이 물었다.


남편이 아이에게 차분히 설명을 해주었지만, 아이는 또 내게로 와 책자를 보여주며 왜 동그라미를 했냐고 계속해서 물었다.

그렇잖아도 복잡한 내 마음을 아이가 마구 긁어대고 있었다.

내 지저분한 감정의 쓰레기들이 아이들에게 향하지 않도록 조심하려고 하는데 이렇게 마음 상태가 뒤죽박죽일 때는 약한 아이들에게 향할 때가 있다. 지금처럼.

9살 아이의 생떼에 머리가 지끈거리고 아팠다. 그렇게 한참 실랑이 끝에 아이는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그때 내 마음이 편안했더라면 아이에게 좀 더 친절하게 설명해 줄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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