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옆 복도에 북카페가 생겼다. 이전에도 책이 있어서 누구나 빌려 읽을 수 있었는데 이번에 여러 곳에 있던 작은 북카페를 한 곳으로 모두 옮겨와 책이 복도 입구에서 끝까지 빼곡하게 들어차게 되었다.(사실 복도가 그리 길지는 않다.)
내가 이곳을 방문하게 된 건 후배를 따라서였다. 한참 재테크에 열이 올랐던 후배를 따라 나도 재테크 관련 책을 빌렸는데 쉽게 읽히지 않고 핑계지만 책을 읽을 시간이 나지 않았다.
퇴근 후 저녁을 먹고 뒷정리를 한 후 씻고 아이들과 잠시 10~20분쯤 놀아주면 삐익--- 내 몸의 모든 힘이 다 빠져나간 느낌이다. 사실 아이들과 놀아주는 그 짧은 시간도 너무 힘들어 너희들끼리 놀아라~ 하며 멍하니 앉아있기도 한다.
10시에 아이들이 자고 나면 책을 읽어볼까 하다가도 이내 눈꺼풀이 무겁고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하니 잠을 자야지 책을 읽을 시간 따윈 없다고 나를 유혹한다.
그러다보니 한 권도 다 읽지도 못하고 나랑 안 맞네, 내가 원하는 내용이 아니네... 이런 핑계를 대면서 책을 반납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최근에 우연히 다시 북카페를 방문했다가 제목에 이끌려 빌린 책이 있는데 나에게 딱 맞는 책이었나 보다. 아이들을 재우고 1시간쯤은 거뜬히 책을 읽고, 출근 후 업무 시작 전 10분 정도 짬을 내어 책을 읽고, 출근 시간에 책을 읽기 위해 자차가 아닌 통근버스를 타고 다니자 결심했다. 그렇게 3~4회 정도 이용하였으나 통근버스가 퇴근후 40분이 지나운행하는 이유로 저녁시간이 너무 늦어지게 되어 통근버스를 타고 다니는 건 아무래도 힘들것 같다.
한번은 아침 7시 30분쯤 집을 나섰더니, 아파트 단지에 화사한 벚꽃이 꽃망울을 터뜨리며 피우기 시작했고, 새빨간 동백꽃은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벌써 지는 것인지 떨어진 붉은 꽃잎들이 길바닥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어찌나 새빨간지 이미 시들었음에도 그 빛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요 며칠 비가 와서인지 아침 공기는 촉촉했고, 길가를 따라 예쁘게 피어난 꽃을 보며 걷는 짧은 시간이 마치 나에게 선물을 주는 것처럼 행복했다 운전하면서는 휙~ 지나쳐버리고 마는 그 순간이 정말 행복한 순간이었다.
오후 4시쯤 북카페로 갔다. 빼곡하게 꽂혀있는 책을 보며 이제껏 왜 책을 읽으려고 하지 않았을까. 나름 바쁘게 살았다고 자부하지만 분명 책 한 권 읽을 시간은 있었을 텐데 생각해 보면 너무 아쉬운 시간이다.
거의 매일 이곳에 들러 책을 읽는 분이 있다고 한다. 교대 근무하는 분인데 본인 근무시간대에 상관없이 1시간쯤 미리 출근해서 책을 읽거나 또는 퇴근 후에 여기 북카페에 앉아 책을 읽는다고 한다.
북카페를 합치기 전 다른 곳에 있는 책을 읽고 싶은데 보안상 사유로 출입이 안 되어 읽을 수 없다고 북카페를 관리하는 언니에게 말을 했다고 한다. 그분이 책을 얼마나 열심히 읽는지 그동안 봐왔던 언니는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언제든 말을 하면 대신 빌려다 주겠다고 했단다. 얼마나 책을 좋아하고 읽고 싶은 마음이 크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나는 진심으로 그분의 그런 마음이 너무나 부러웠다.
북카페를 합치게 되어 이젠 원하는 책을 마음껏 볼 수 있게 되었다고 그분이 좋아하자북카페 담당하는 언니는 이곳은 OO 씨 개인서재라며 마음껏 이용하라고 해주었단다.
그런말을 해주다니, 그분에게는 정말 행복한 순간이지 않을까.
나도 이곳을 나만의 서재로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다 부르는 이름이 아닌 나만의 비밀 이름도 지어주려고 한다.
이제 이 복도는 나의 서재이다. 언젠가 빼곡한 책장 가득한 책들을 한 칸씩 한 칸씩 다 읽어나갈 수 있겠지.
너무 많은 책이 있어서 어떤 책부터 읽어야 할지 고민이 되기는 한다.
[복도를 따라 책장 가득 책들이 있는 내 서재]
20대의 나는 책을 좋아했다고 기억한다. 그 당시 친구와 약속장소는 늘 시내에서 가장 큰 서점이었고, 서점은 늘 오가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친구를 기다리면서 책을 둘러보며 마음에 드는 책을 구입하기도 했다.
몇 년 전일까. 오래간만에 시내를 나갔더니 서점이 없어지고 그곳에 옷가게가 들어서 있었다.
너무 당황했다. 당연히 그곳에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없었다!
요즘엔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폐업하는 서점들이 많다고 듣긴 했지만 이렇게 오래되고 큰 서점이 없어질 줄은 몰랐다. 여기가 맞는 건가 두리번두리번거렸다.
그곳에서 쇼핑을 하긴 했지만, 이 공간에 책이 있었던 예전 모습을 떠올리니 씁쓸하고 허전하고 아쉬웠다.
나의 20대 시절 추억의 일부가 사라진 듯한 느낌.
4~5년 전부터 아이들이 치과에서 치료를 하고 나면 근처 서점에 들렀다. 처음엔 용감하게 치료를 잘 받았으니 칭찬하는 차원에서 서점에 들러 작은 장난감이든 만화책이든 원하는 것을 사도록 했다. 그런데 서점에 왜 이렇게 장난감이 많은지
내 계획은 이렇게 자주, 쉽게 서점을 접하도록 해서 점차 여러 책도 둘러보게 하면서 책과 가까워지도록 하기 위함이었으나 늘 아이들에 관한 건 내 마음처럼, 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아이들은 쪼르르 만화책 코너로 가거나, 셋째 아이는 슬라임에 푹 빠져 슬라임을 살 기회만 노리고 있다.
남편은 만화책이라도 읽는 게 중요하다고 하지만 이제 5~6학년인 만큼 만화책보다는 다른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늘 나 혼자만의 바람이다.
그리고 모처럼 서점에 왔으니 천천히 둘러보며 여러 종류의 책을 보면 좋을 텐데 남편과 아이들은 본인들이 사야 할 것을 고르기가 무섭게 가자고 한다. 나는 아직 더 둘러봐야 하는데 아직 멀었냐며 옆에서 재촉한다.
한참을 서서 책을 보거나, 2층에 올라가 작은 의자에 앉아 조용하게 책도 읽어보고 싶은데 옆에 앉은 아이들은 언제 갈 거냐고 재촉한다.
그렇게 등 떠밀려 후다닥 나오게 되면 아쉬운 마음에 내 마음에 삐죽삐죽 뿔이 난다.
큰 게 아닌 이런 소소하고 작은 시간들을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하고픈데 아이들에게는 핸드폰이라는 절친이 있고, 남편에게는 핸드폰, 컴퓨터, 소파 이렇게 친구 3종 세트가 있다. 나는 아주 종종 이들을 없애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이제 나에게도 서재가 생겼다. 더 이상 남편과 아이들의 등쌀에 떠밀리지 않아도 되며, 충분히 혼자만의 여유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