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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쭌쭌이맘 Jan 09. 2024

8화. 마늘향으로 가득 찬 하루

알리오올리오 파스타와 삼계탕

주말 아침 사무실 언니의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부고 문자가 부서 단톡방에 떴다.

며칠 안보이시더니  일이 있으셨구나.

몇 개월 전 잠시 언니와 이야기를 나눌 때 어머님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연세가 신 어머님이 스스로 몸을 돌보기 힘드신 때가 되어서 언니네 7남매는 의논 끝에 첫째 언니가 일하는 요양병원에 모시기로 했단다.


첫째 언니가 일하면서 자주 얼굴을 보고 이야기도 나누니 어머님도 처음엔 잘 적응하시는 듯했으나 코로나 시기에 첫째 언니가 사정이 생겨 요양병원에 갈 수 없게 되자 어머님은 눈에 띄게 쇠약해지셨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어머님댁으로 모셔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적인 문제로 어머님은 또 요양병원에 들어가셔야 했다.

그러다 어머님 상황이 좋아지지 않아 결국은 첫째 언니집으로 다시 모셔오게 되었단다.


어머님은 두 번의 요양병원 기억 때문인지 자식들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으셨고, 어느 날 잠시 정신을 차리신 듯 또박또박한 말투로 "나는 너희들을 키울 때 이러지 않았다."라고 말씀하셨단다.

왜 내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지.

7남매 모두 가정을 이루어 곁을 떠나고, 남편마저 보내고 홀로 남으신 어머님에게 남편이 떠난 자리가 쉽게 채워지지 않을 테니 어쩌면 어머님은 이제껏 보다 몇 배 더 빠르게 나약해지고, 계속된 요양병원 생활은 몸도 마음도 더 피폐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너희들을 키울 때 이러지 않았다.

모든 부모님의 마음이지 않을까.




나는 종종 삼 남매에게 너희들이 20대가 되면 아빠엄마의 역할은 거기까지이니 모두 독립해서 살라고 한다.

물론 삼 남매는 죽을 때까지 아빠엄마 집에서 산다고 하지만, 그리 멀리 안 가더라도 당장 사춘기만 돼도 한 번쯤 이 집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20대가 되면 너희가 싫다 해도 보내줄 테니 괜히 아무것도 없는 사춘기 때 집 나가서 고생하지 말고 스스로 힘을 키우고 당당하게 독립할 때까지 조금만 참으라고 한다. 아직 삼 남매는 다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그렇게 아이들이 모두 독립을 하고 나면 남편과 나는 둘이서 건강하게 즐겁게 살 수 있을까 생각도 해본다. 이가 들어서 아이들에게 의지하지 않을 만큼 우리 부부 스스로 경제적인 여유를 가지며 가끔은 여행도 다니고, 흰머리 희끗희끗해도 삼 남매와 그들의 아이에게도 멋진 할아버지,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 12년째 워킹맘으로 열심히 일을 하는 것이겠지.




마트에서  마늘과 대파를 사 왔다. 마늘을 저렴하게 팔기에 2 봉지나 샀더니 양푼 한 가득이다. 솨~ 수돗물을 틀어 마늘을 쓱쓱 씻어 채반에 담아 탈탈 물기를 털어냈다.

잘 씻은 마늘은 꼭지 부분을 잘라준다. 너무 많은 양이라서 그냥 할까 했지만, 꼭지 부분은 갈리지 않고 음식에 쓸 때도 그대로 남아있어 보기에 좋지 않아 결국 다 잘라냈다.

결혼 초에는 항상 친정엄마나 시어머님이 곱게 빻아 꽁꽁 얼려서 주셨는데 수고로움을 알고 나니 얻어오는 게 죄송하고, 언젠가 인터넷에서 주문한 냉동마늘은 흐물흐물 물기가 줄줄 흘러서 그 뒤로는 직접 갈아서 사용하고 있다.

깨끗이 정리한 마늘은 7~8번쯤 나눠 믹서기에 갈았다. 마늘이 곱게 잘 갈렸다.

손질할 때부터 눈이 매웠는데 믹서기에 가는 중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남편에게 선글라스를 가져다 달라고 했다. 앞치마를 두르고 양손 비닐장갑에 마스크 그리고 선글라스까지 착용한 내 모습에 남편은 엄청 웃더니 다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엄마, 맛있는 냄새가 나! 맛있는 마늘빵 냄새야" 마늘빵을 좋아하는 큰아이가 냄새에 홀린 듯 방에서 나왔다.

[마늘이 너무 많다. 그래도 이렇게 예쁘게 담아 냉동실에 넣어두면 한동안 든든하다]

"어머? 너는 정말 단군의 후예가 맞구나. 마늘 냄새를 좋아하다니!" 하하하. 이 냄새가 좋다니.

하지만 둘째와 막내는 "으악 냄새!" 코를 막으며 방으로 후다닥 들어가 버렸다.


마늘은 작은 사이즈로 소분해서 냉동실에 차곡차곡 정리해 두었다.

막내는 이렇게 간 마늘로 남편이 직접 만들어주는 알리오올리오 파스타를 정말 좋아한다. 항상 엄지 척! 하며 먹어주니 남편도 흔쾌히 파스타를 만들어 준다.

그런 맛있는 마늘인데 냄새가 난다고 도망가다니!

[남편이 직접 만들어주는 알리오올리오 파스타. 막내가 파스타를 먹을 때는 마늘향이 찐하게 나는 걸 좋아해 남편은 간 마늘에 얇게 썬 마늘까지 듬뿍 넣는다]




점심은 삼계탕을 먹으러 갔다. 20여분 정도 차를 타고 가는데 주말 오후 여유가 있어선지 내 기분도 좋고, 마침 좋아하는 가수인 잔나비의 노래가 나오는 것도 딱 내 마음에 맞아 흥얼흥얼 따라 불러본다.


한 여름에 북적대던 삼계탕집은 겨울에도 손님이 많았다.

다섯 식구라서 삼계탕 다섯 그릇에 음료수를 추가하면 십만 원을 꽉 채운다. 그래도 늘 아이들도 한 그릇 다 비워 든든하게 먹고 가니 돈이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오늘따리 향이 이상하다.

닭고기를 한 점 먹는데 앗. 이것은!!!

강한 마늘 향이 훅~ 내 코와 입을 강타했다.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남편도 마늘향이 너무 강하다며 인상을 찌푸렸지만 다행히 삼 남매는 신경 쓰지 않고 오늘도 잘 먹는다.

깍두기를 더 담아 오는 길에 남편은 식당에 마늘향이 너무 강하다는 의견을 주고 왔다며, 이런 건강한 피드백은 꼭 필요한 거라고 했다.

마늘향은 강했지만 오늘도 한 그릇씩 맛있게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거실문을 여는 순간 훅~ 강하게 풍겨오는 이 독한 마늘향.

오늘은 마늘과 인연이 있는 날인가 보다.

[삼계탕 다섯 그릇. 남편은 인삼주를 곁들이고 아이들과 나는 탄산음료를 곁들여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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