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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쭌쭌이맘 Jan 02. 2024

제7화 새해 첫날 단추를 잘 꿰어보자

시작부터 삐그덕 대는 느낌은 괜한 나의 걱정일지.

23년 12월 31일 자정 12시! 삼 남매와 함께 거실에서 TV를 보며 보신각 타종소리를 들었다.

어릴 적에는 졸린 눈을 비벼가며 12시까지 기다려 보신각 타종 소리를 듣는 게 굉장히 큰 일처럼 느껴졌는데, 나이가 들어 그게 무슨 의미일까 싶을 때 이젠 아이들이 커서 12시 종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또 한 해가 지나갔구나. 

그런데 어느 순간 내 나이가 가물가물 해지는 것 같다. 언제부터 나이를 세어보지 않게 되었을까.


26살이 되던 해, 회사 후배가 농담처럼 "언니, 이제 언니도 꺾였네" 하면서 손바닥을 폈다가 기억자 모양으로 탁! 꺾었을 때 아! 내가 나이를 먹었나 하는 생각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26이라는 숫자가 가볍지는 않지만 26은 한창 만개하는 시점이 아닐까. 20대 초반에 예쁜 꽃봉오리를 틔워서 활짝 피워 아름다운 향기를 내고 한껏 자태를 뽐낼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 또한 내가 나이를 먹어 뒤돌아보니 아 그랬구나! 하고 느끼는 것이다. 

그때는 후배의 말처럼 지는 시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30에 가까워질수록 나 스스로 나이에 대해 느끼는 압박감 같은 게 있었고, 오히려 진짜 30이 되었을 때는 평안한 느낌도 있었다. 뭔가 불안정한 20대 한 고비를 넘은 느낌.


그리고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아! 내가 노산이구나 하는 걸 느끼고,

아이들이 자라면서 아빠 엄마 나이를 물어보면 항상 20살이라고 대답을 하다가 어! 내가 몇 살이지? 잠시 멍해질 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숫자 앞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고, 4로 시작하는 내 나이가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는 이 느낌.



1월 1일 새벽 5시. 남편이 나를 깨운다. 남편과 올해 첫 일출을 보러 가기로 했다.

그런데 이불속 포근 한 느낌이 좋아 일어나고 싶지 않아 이불을 뒤집어쓰고 못 들은 척했다. 남편이 다시 일출을 보러 가자며 깨우는데 안 봐도 돼~ 하면서 그냥 잠이 들었다. 어제 하루 종일 일출을 봐야 한다고 남편과 아이들을 달달 볶은 게 나인데, 싫다는 아이들은 놔두고 남편과 둘이서 보러 가자고 했는데 결국 일어나지 못했다.


그러다 일어나니 8시 20분. 아직 미세먼지가 남아있긴 했지만 새해 첫 해는 활짝 떠올라 있었고 그제야 새벽에 일어나지 못한 게 아쉬웠다.

떡국을 끓일 육수를 올리고 아쉬운 마음을 잠시 가다듬는데 그 새 일어난 둘째가 왜 일출을 보러 가지 않았냐고 묻는다. 그러니까 엄마도 너무 아쉽다. 몇 번을 생각해도 정말 아쉽다.

조금만 부지런을 떨었으면 멋진 풍경을 봤을 텐데.

육수가 보글보글 끓을 때 남편이 일어났다. 남편은 부스스한 모습 그대로 떡국을 끓이는데 잠이 덜 깼을 텐데도 후다닥 손은 빠르다. 그리고 아이들을 깨워 새해 첫 식사를 맛있는 떡국 한 그릇으로 간단히 했다.


그때 친정엄마가 멋진 일출 사진을 보내주셨다. 오늘 같은 장소로 일출을 보러 갈 예정이었는데 나의 게으름으로 인해 못 봤다. 엄마는 새벽 5시에 출발했는데 그 시간에도 사람들이 많았으며, 더군다나 어린아이들도 많이 왔다고 우리 삼 남매도 같이 봤으면 좋았겠다 하셨다. 

아휴. 이 아쉬움은 계속 더해간다. 남편! 내년에 다시 도전해 봐요.

[엄마가 찍은 바닷가 일출 모습. 사진으로나마 새해 첫 기운을 듬뿍 받아본다]


아침 정리를 하고 커피를 한 모금 한 뒤 베개커버를 세탁기에 돌리고 거실 카펫은 건조기에 넣어 먼지를 털어낸다. 새해 첫 약속을 지키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려 괜히 더 바쁘게 움직여본다.



거실 한 켠 작게 마련된 나의 정원에 있는 어항의 물갈이를 할 때가 된 것 같다. 작년에 사무실에서 구피 4~5마리를 가져다 키운 게 한때는 치어까지 해서 40여 마리가 된 적도 있었는데 한동안 나의 무관심으로 이제 20여 마리 정도가 남은 것 같다.

어항 벽면에 이끼를 깨끗이 닦고 바닥에 깔아놓은 작은 돌들도 박박 문질러서 여러 번 헹구었다. 다시 깨끗한 물을 어항에 채우고 물고기를 옮겨놓은 뒤 싱그러운 물풀을 채워주니 또 예쁘다.

작년에 한창 물멍을 했을 때의 기분이다. 마음이 복잡하거나 힘들 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을 때 가만히 헤엄치는 물고기나 푸른 물풀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어느 날은 물고기가 20여 마리쯤 되는 새끼를 낳아서 너무 설레기도 했지만 어미에게 잡아먹히기 전에 빨리 구해줘야 해서 뜰채와 여분의 어항을 가져다 새끼를 구하느라 바쁘게 움직이기도 했다. 생존 본능일까 그 작은 물고기들은 물풀 사이사이 숨어있거나 때론 큰 물풀 잎사귀에 올라가 어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있기도 했다. 때론 물고기들이 나의 부주의로 죽기도 했는데 저번엔 그만 화장실 변기에 한 마리가 빠져서 휘리릭~ 소용돌이치며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어떻게 손을 쓸 틈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서 나는 너무 황당하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물고기는 큰 바다로 갔을 거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물론 다 커버린 아이들은 그런 말을 더 이상 믿지 않지만 그건 아이들이 아닌 물고기에게 미안한 마음에 나 스스로 위안을 삼고자 하는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작년 회사에서 식목일날 행사를 할 때 로즈마리 화분을 4개 가져와 두 개씩 나눠 심었는데 한 그루가 죽어서 내내 화분 한쪽이 비어있었다. 모처럼 화분 정리도 해야겠다.

허브는 실내보다는 실외에서 바람, 햇빛을 쐬면서 자라야 한다기에 그동안 바깥에 두고 키우다가 폭설이 내리면서 추워져 최근 실내로 들여놓았었다. 화분 정리해도 했고 날씨도 조금 풀린 것 같으니 다시 바깥으로 내놓아야겠다. 손으로 쓰윽~ 가지들을 스치니 여전히 향긋한 향이 진하게 묻어 나온다.

내년 봄까지 이 추위도 잘 견뎌주렴.


올해 친정엄마가 준 소국은 더운 여름 잠시 시들시들했지만 이번 가을에 느지막이 샛노란 꽃송이들을 피워냈고, 작은 싹들을 더 틔우고 있어 올 가을엔 더 풍성한 소국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무척 기쁘다.

가을엔 소국만 한 꽃이 없는 것 같다. 작고 샛노란 꽃송이들이 너무 앙증맞지 않은가.

한 차례 붉은 꽃을 피웠다가 이미 시들었던 카네이션이 따뜻한 실내에 있어선가 다시 붉은 꽃 한 송이를 힘겹게 피워냈다. 잠시 이건 계절을 거스르는 게 아닌가 생각도 해보지만 작게 핀 꽃송이는 너무 예쁘다.


회사 후배가 사준 호야도 몇 개월 사이 더 풍성하게 잘 자라고 있다. 독특한 모양의 꽃이 너무 예쁘다고 했더니 후배가 작은 편지와 함께 선물을 해주었다. 올해 꼭 예쁜 꽃을 피워 후배에게 보여주어야겠다.

호야 잎은 처음 싹을 틔울 때는 옅은 핑크빛을 띄더니 자라면서 점점 푸르른 색으로 변해갔다. 올봄 우리 거실에 초콜릿 향 작은 호야꽃을 기대해 본다.

그런데 이 작은 정원은 나 혼자만의 기쁨이다. 남편도 아이들도 크게 관심이 없어서 함께 화분을 가꾸고 물고기를 기르면서 이 기쁨을 같이 나눈다면 좋을 텐데.

가끔은 작더라도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계절 따라 여러 꽃도 심고, 사과나무나 석류나무도 하나씩 심어 두고 빨갛게 익어갈 때는 아이들과 수확하며 맛있게 나눠 먹기도 하고. 

[작은 마당에 꽃과 감나무가 있는 시골집 풍경. 나의 이 작은 정원도 이렇게 크고 푸르를 수 있을까]


오후엔 시댁에 다녀왔다.

12월 31일 아침 어머님은 남편에게 전화해 오늘은 꼭 교회에 나오라고 하셨다. 하지만 남편은 내내 걱정하면서도 가지 않았고, 나도 더 이상 종교 문제에 있어 어머님께 지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기에 가지 않았다.(이 결심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면서도 우리 둘은 내심 불안했다.

어머님이 얼마나 화내실지 모르니까.


방문하는 마음이 무거웠는데 다행히 어머님은 어느 때와 다름없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그리고 이른 저녁을 드시면서 조용히 내 이름을 부르시더니, 이번 주 일요일엔 꼭 교회를 나오라고 하셨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머님은 상견례할 때도 다른 건 다 괜찮지만 교회 문제만큼은 용서하지 않겠다고 하셨다면서 강하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교회를 나오라고 하셨고, 남편에게는 별다른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결혼 전 시댁에 인사를 드린 뒤부터 교회를 계속 다니다가 코로나로 인해 교회를 가지 않게 되었고, 현재까지 우리 부부는 교회를 가지 않고 있다. 

삼 남매는 모두 남편 뜻으로 유아세례를 받지 않았다.(남편은 모태신앙이다)

종교는 이후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남편의 뜻이었고, 나도 동의했다. 어머님은 세례 받기를 원하셨지만 더 이상 남편에게 말씀하지는 않으셨다.


다음 주에도 나는 가지 않을 것이다. 남편 말처럼 종교는 스스로 선택하는 거니까.

아직 어머님이나 남편처럼 믿음이 크지 않아선지 가끔 마음 없이 참석해서 드리는 예배시간이 시간 낭비처럼 느껴졌고, 내 마음이 없으니 그 시간이 무척이나 힘들다고 느껴졌다. 

이 문제로 인해 어머님과 나의 관계, 나와 남편의 관계 또는 어머님과 남편의 관계가 요란하게 되는 걸 원하지는 않지만 올해 가장 큰 이슈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걱정이 된다.


새해 첫날이 아쉬움과 기쁨 그리고 진한 걱정으로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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