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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쭌쭌이맘 Dec 27. 2023

제5화. Ep.1 보라카이로 가는 길

여행은 언제나 작은 변수들로 시작한다

남편 지인들과 가족동반으로 필리핀 보라카이로 떠나기 일주일 전,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더니 폭설이 내렸다. 아이들 학교 체험학습 신청을 하고, 이 폭설에 인천공항까지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는 건지, 눈길에 안전할지 걱정이 한가득 되었다. 기차표는 금요일이라선지 일찍 매진이 되었고 수시로 확인해 봐도 빈자리는 나오지 않았다.


출발 당일 아침, 8시쯤 일어난 둘째 컨디션이 이상하다. 남편이 열체크를 하니 37.5!!!!!!

아니 어젯밤까지 아무 일없이 잘 잤는데 갑자기 왜 열이 나지.

남편과 나는 긴장했다. 저번에 독감 걸렸는데 설마 또 독감일까.

서둘러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나는 둘째와 이비인후과로,  남편은 첫째와 미용실로 갔다.

평일 아침이라선지 다행히 손님이 없어 바로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아이는 독감검사를 했고 아직 초기라 결과가 안 나올 수는 있지만 일단 독감은 아니라고 했다.

다행이다. 감기약을 지어 집으로 돌아오니 첫째 아이도 멋지게 커트를 하고 왔다. 남편이 평상시보다 앞머리를 살짝 더 잘라서 첫째 기분이 안 좋다고 알려주길래 멋지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고 보니  지난 7월에 역시 지인들 모임으로 남편이 첫째와 대만을 가기로 했을 때, 그날은 저녁 출발이라 아이는 학교를  다녀온 후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기다리고 있었다.

일찍 저녁을 먹는데 아이 얼굴이 그랗다.

뭐지? 설마 하며 체온을 재보니 37.8!!!

정말 당황했다. 하루 아니 몇 시간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아이를 두고 남편 혼자 갈지, 취소를 할지 이야기를 나눴지만 솔직한 마음은 아픈 애를 남겨두고 남편 혼자 간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첫째는 열이 나면 39도는 기본이고 그때는 해열제는 들지 않아 무조건 응급실 가서 주사를 맞아야 했기에 이번에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니 남편 없이 혼자 셋을 돌볼 수는 없었다. 첫째도, 남편도 아주 많이 아쉬워했지만 어쩔 수 없이 가지 않는 것으로 했다.

아이는 엄청 슬퍼했으며, 결국 독감판정을 받고 3일 동안 응급실 가서 해열주사를 맞아야 했다.


이러니 열이 나는 둘째 때문에 온 가족이 긴장할 수밖에.

걱정은 한시름 놓았지만 언제 열이 날지 모르니 수시로 체크하고 긴장해야 한다. 아이는 자기 몸이 안 좋으니 예민하고, 걱정되어서 이것저것 챙겨주면 또 그런다고 짜증을 냈다.

[버스에 커텐이 있다니?  창가에 앉은 둘째는 커텐을 촤악~ 치더니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둘째는 올해 9월 친정 식구들과 태국 여행을 갈 때 사고를 친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그때는 남편이 직접 차를 운전하고 공항에 다. 지하에서 발레 파킹을 하고 잠시 아이들과 화장실에 들른 다음  수하물을  보내러 가니 대기줄이 꽤 길었다.  한참 기다린 후  짐을 부치고 친정 식구들을 만나 식사를 하러 갔는데 둘째가 핸드폰을 화장실에 두고 왔다고 했다. 너무나 평온한 얼굴로 별일 아닌 것처럼 말을 하는데 나는  헉! 머릿속이 하얘졌다.

벌써 30분도 더 지난 것 같은데.

나는  먼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고 아까 봤던 화장실 구조를  생각하면서 화장실을 다 돌아다녔지만 없었다.

하필 차에서 내릴 때 나랑 실랑이를 하다가 핸드폰 전윈도 아예 꺼놔서 위치추적도 할 수 없었다.

남편이 유실물센터에 가봤지만 있을 리가. 아이 핸드폰은  1년도 안되었고 아직 할부도 안 끝났는데.


남편은 차분하게 우리가 처음 도착했을 때부터  동선을 따라가 보자며 발레 파킹했던 곳을 찾아 한층 더 내려갔다. 앗! 그러고 보니 나는 한층 더 위에서 찾고 있었다. 이런!

주차를 하고 여기서 들어와서 바로 보이는 화장실에 들어갔으니 저 화장실이네!!!

바로 들어가서 아이가 사용했던 칸을 들어갔더니 맙소사!!!

선반에 아이 핸드폰이 얌전히 놓여있는 게 아닌가.

다리가 풀린다는 느낌이 이런 걸까.

정말 다행이었다. 아이는 핸드폰을 찾았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식탁에 놓인 돈가스를 먹었다고 한다.



아픈 아이와 추운 날씨 때문에 걱정스러운 마음을 안고 우리는 12시 버스를 타고 인천으로 출발했다. 날씨 때문인가 생각보다 길이 막혀 5시가 넘어서야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수하물을 보내고 저녁을 먹고 수속을 밟고 나니 긴장이 풀리는지 피곤이 몰려온다. 탑승시간까지는 아직도 한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


남편과 다른 일행분들은 장시간 밤 비행기를 편안하게 해 줄 알코올음료 섭취위해 자리를 비웠다. 3박 5일  이 자리는 종종 있었고, 나는 솔직히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가족과 함께 여행을 왔으니 지인들과 어울림도 중요하지만 남편에게는 어떤 상황에서든 지켜야 할 가족이 있지 않은가. 물론 남편이 이를 소홀히 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해외에서 어떤 상황이 일어날지 모르는데 술을 자주 하는 그 상황이 나는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드디어 기다림 끝에 탑승이 시작되었다. 남편이 첫째와 함께 앞에 앉고 나와 두 딸들은 바로 뒷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여자 둘 남자둘 일행이 오더니 그중 한 여자분이 남편 옆 빈자리에 앉았다. 그때는 아무도 몰랐다.

남편이 다음 날 아이들에게 진실의 방으로 오라는 통보를 받고 조사(?)를 받게 될지.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출발이구나!

첫째 아이가 "막내야 비행기 이륙할 때 엄마 무서워하니까 꼭 손잡아줘야 해" 막내에게 당부를 했다.

내는 "엄마 무서워? 잡아줄게" 뭔가 시크하게 내 손을 잡아준다.

나는 발이 땅에 닿아있을 때 안도감을 느끼는 사람이다. 비행기를 장시간 타는 것도 무서운데 특히 이. 착륙할 때 순간 몸이 붕 뜨는 듯한 그 미묘한 느낌이 무서워서 남편이 그리고 첫째 아이가 손을 잡아줬는데 첫째가 잊지 않고 막내에게 당부를 한 것이다.

첫째는 남편에게 없는 이런 세심함으로 종종 나를 감동시킨다.

막내가 내 손을 꼭 잡아주며 우리 가족의 보라카이 여행이 시작되었다. 부디 좋은 여행이 되길~

[이른 아침 숙소를 나와 혼자 거닐어 본 보라카이는 예뻤다. 하늘도, 물도, 사람도. 남편 말처럼 어떤 고민도 없이 지낼 수 있었던 행복한 시간]

아주 작은 공항에 도착해서 입국수속을 하고 나오니 여행사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본인은 공항에서 안내만 하는 가이드라며 정식가이드는 보라카이 숙소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섬까지 안내해 줄 현지인과 함께 다시 장시간 이동한 끝에 숙소에 도착했고 가이드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가이드를 보는 순간 같이 근무하는 지인과 너무 닮아서 깜짝 놀랐다. 정말 도플갱어? 쌍둥이?

이렇게 닮을 수가 있을까.

그래서 타지에서 괜한 친근함이 들었을까.

반가웠는데 그런데 그 반가움은 하루 만에 실망과 서운함, 속상함, 무슨 이런 가이드가 있을까, 이렇게 바뀌고 말았다.


첫날 가이드와 미팅을 끝내고 우리는 숙소에서 바로 잠이 들었다. 아. 남편과 일행분들은 새벽 5시까지 또 술자리를 했다고 한다. 이렇게 계속된 술자리는 또 다른 사고를 가져왔으니!!!


보라카이!! 굿 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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