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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쭌쭌이맘 Dec 22. 2023

4화. 어느 날 격렬했던 첫째 아이와의 싸움

격렬하게 싸우고 격렬하게 사랑하자 ❤️

제3차전. 2023년 12월 어느 날.

막내가 학교 수업이 끝나고 전화를 했다. 수화기 너머 친구들 목소리가 신났다.

"엄마, 나 배가 아파서 학원 안 가고 집에서 쉬면 안 될까?" 옆에 친구들에게 조용히 하라는 목소리엔 힘이 넘쳐나는데 아프다고?

"언제부터 아팠어?"

"아침부터..." 갑자기 목소리가 그렁그렁 울먹거리기 시작한다.

"음.. 일단 학원 갔다가 정말 참기 힘들면 선생님한테 말씀드리고 집으로 와"

"싫어, 안 갈 거야.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맨날 그래" 엉엉 울면서 할 말은 다 한다. 그런데 이 익숙한 느낌은 뭐지.

나는 학원을 가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30분쯤 후에 전화를 했더니 정말 학원에 안 가고 집에서 쉬고 있다고 다. 이 당당함! 오빠, 언니는 싫다고 반항을 해도 결국 학원을 가는데 막내 이 녀석은 뭘 믿고 이리 당당하지.

아이는 배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다며 또 울었지만 모른 척하고 학원에 가라고 한 후 전화를 끊었다.

5분 정도 지났을까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막내가 많이 아프다고 우는데 왜 학원을 가라고 했냐는 거다.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 녀석. 평상시엔 아빠한테 전화도 잘 하지 않으면서 오늘은 엉엉 울면서 전화까지 하다니. 남편은 아이가 아프니까 오늘은 그냥 쉬게 하자고 했다.

나라고 아프다는 애를 학원에 보내고 싶겠어? 나라고 처음부터 이런 모진 엄마였겠냐구.

막내에게 전화를 해 어디가 아픈지, 어느 정도인지 물어보니 조금 나아졌다고 하길래 침대에 누워서 하루 쉬라고 했다.

다가올 후폭풍을 걱정하면서..



첫째 아이가 학원 수업이 끝나고 전화를 했다. 모두 같은 학원을 다니니 막내가 안 온 것을 알고 전화를 한 것이다.

"엄마 왜 막내 학원 안 왔어? 집에서 핸드폰 보고 있다는데?"

"막내가 많이 아프대. 아파서 울었어" 괜히 긴장되는 건 왜인지.

"내가 전화하니까 집에서 핸드폰 한다는데? 엄마는 내가 아프다고 할 때는 학원 가라고 하면서 왜 막내는 쉬라고 해? 왜 막내는 집에서 쉬면서 핸드폰 하는데 야단도 안치는 거야? 왜 나만 혼내는데?"

사무실이니 저녁에 이야기하자고 하는데도 아이는 속사포로 말을 쏟아냈다.

또 시작이다!

정말이지 난 첫째 아이와 이런 말다툼이 너~무 힘들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온몸에 힘이 다 빠져나가는 기분이다. 저녁에 이야기를 하자며 그냥 전화를 끊었다.

내 목소리가 높아진 듯한데 전화를 끊고 나니 옆자리 동료들이 보였다. 민망함도 잠시 둘째 아이가 전화를 했다.

아이고.

왜 막내는 학원 안 가느냐고 또 묻는다.

머리가 지끈거려서 저녁에 이야기하자고 하니 다행히 둘째는 알았다며 전화를 끊었다.

[작년 군산 철길마을에서 그린 삼 남매 캐리커쳐. 가만 보고 있으면 아이들마다 닮은 포인트가 있다. 첫째 아이는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온다�]

퇴근하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고, 남편과 저녁을 준비하는 내내 기분이 풀리지 않았다.

아이들이 전화했다는 것을 알기에 남편도 내 기분을 풀어주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오늘은 도통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이들을 봐도 기분이 풀리지 않고, 퇴근 후 해야 할 일들이 오늘따라 더 힘들게했다

그렇게 저녁 내내 냉랭한 분위기가 이어지다가 잠들기 전 첫째 아이가 조심스레 다가오더니,

"엄마 오늘 힘든 일 있었어? 회사에서 힘들었어?" 하고 물어본다.

뭐라고 말할 기운도 없어 그냥 고개만 끄덕이니 "엄마 힘내! 나를 봐서라도 힘내!" 하며 살며시 나를 안아주고 간다.

이건 병 주고 약 주기 아닌가!


처음엔 아이들이 머리가 아프다, 다리가 아프다, 어지럽다 등등 전화를 하면 일단 학원을 쉬라고 했는데, 그게 어느 순간 어디까지가 진짜인지 또는 꾀병인지 구분이 안 되는 순간이 왔다. 명확한 기준이 없이 어느 때는 집에서 쉬라고 하고, 또 어느 때는 학원을 가라고 하니 아이들도 헷갈릴 테고, 왜 나는 갔는데 오빠(동생)는 안 가? 이렇게 반기를 드는 상황도 생겼다. 그래서 일단은 학원을 갔다가 힘들면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돌아오라고 한다.

그런데 막내 이 녀석이 규칙을 어겼고, 언니 오빠가 충분히 반기를 들 만한 상황이 되었다.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누구도 서운하지 않게 그렇게 상황을 정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애석하게도 그런 지혜가 없는 난 매일매일 삼 남매와 티격태격하며, 나 스스로 깊은 감정의 우물에 빠지기도 하고, 또는 아이를 울리기도 하고. 12년 차인데도 엄마라는 자리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학교 끝날 시간에 아이들에게서 전화가 오는 경우 살짝 긴장하게 되는 건 왜인지.




제2차전 2023년 11월  어느 날.

퇴근을 하는데 첫째 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나 친구들이랑 7시에 pc방에 가도 돼?"

"엥? pc방? 거길 왜" 아이가 처음으로 pc방을 간다고 했다.

"그냥 친구들이랑 가서 라면 먹고 놀고 올게"

5학년 남자아이들끼리 저녁시간에 pc방에 라면을 먹으러 간다고? 굳이 pc방에서?

"안돼, 너무 늦은 시간이라 pc방은 좀 위험할 것 같은데, 차라리 주말 낮에 가자. 위험해서 안돼"

그러자 아이는 가서 라면만 먹고 올 건데 왜 못 가게 하느냐, 혹시나 누가 시비라도 걸면 자기는 다 대처할 방법도 알고 있고, 친구들도 다 가는 위험한 곳도 아닌데 엄마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왜 그러느냐..

아!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이는 나와 의견이 부딪힐 때는 언제나 '엄마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이 말을 하면서 아주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곤 한다. 그 말과 그 표정이 나를 굉장히 힘들게 한다.

아빠에게 여쭤보라고 했더니 회식 중인 아빠가 엄마랑 상의해서 결정하라고 했단다.

아이와 실랑이만 더 길어질 것 같아 전화를 끊고 남편에게 전화해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어보니 남편은 자꾸 제재만 하지 말고 경험하게 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며 다녀와도 좋겠다고 한다.

처음부터 아이게게 그렇게 말을 해주었다면 나랑 이런 실랑이는 하지 않았을 텐데.

다행히 그날 아이의 약속은 취소되었다. 친구들도 학원 끝나고 늦은 시간이라 취소하자고 했단다.

나는 아이와 무엇을 위해 싸웠을까.



제1차전 2023년 9월  어느 날.

저녁에 씻고 나오니 막내가 안방 침대에 누워 울고 있었다. 소리도 내지 않고 울고 있는 모습이 너무 짠해 보였다. 첫째와 둘째에게 물으니 첫째가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쟤는 게임을 너무 못해"라고 한다.

몸으로 말해요라는 게임으로 속담을 설명하는데 막내가 자꾸 틀리니 첫째가 화를 낸 것이다.

막내는 아직 어리니까 오빠랑 언니보단 못할 수 있지, 그렇다고 혼내면 어떡하냐고 했더니

"게임을 못해도 너무 못해" 첫째는 여전히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퉁명스러운 뒤통수만 보여주었다. 하고 싶은 말을 꾹 참고 방으로 들어가 막내를 달래주었다.


그리고 둘째, 막내와 셋이서 공을 주고받는 놀이를 하는데 잔뜩 화가 난 표정의 첫째는 게임에 끼지 않고 옆에 앉아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서로 공을 주고받다가  둘째가 던진 공에 막내가 얼굴을 맞았고 또 울기 시작했다. 아휴.

둘째는 마지못해 옆에서 막내를 달래주는데 막내는 점점 더 크게 울었다. 그때였다

첫째 아이가 세게 맞지도 않았는데 왜 불쌍한 척 우느냐, 하나도 안 아프겠다, 공의 강도가 아플 만큼 센 것이 아니었다 등등 동생에게 계속 모진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정말 꾹 참았다. 내가 끼어들면 스르르 풀릴 상황도 꼬여버리고 결국 아이들 스스로 자연스레 풀 기회를 날리는 경우가 있어서 참으려고 했는데 그 마지막 순간에!

"야! 그만 울어" 첫째 아이가 큰소리를 냈다. 나도 더 참지 못하고 "그만해. 너는 뭐 하는 거야?" 참았던 말을 쏟아내버리고 말았다.

첫째 아이도 할 말을 또박또박 쏟아냈고, 나도 다 쏟아내 버리고. 그 사이에 둘째가 막내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그때 그만둬야 했는데.

그날에 대해 나는 남편에게 정말 격렬하게 싸웠노라고 이야기를 해줬다. 무슨 전장도 아니고 격렬하다니.

그렇지만 격렬했다고 밖에 표현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울고 있는 아이를 보니 날카로운 말과 달리 너무 동글동글 귀여운 얼굴이었다.

지나간 일까지 꺼내어 엄마에게 서운하다고 울고 있는데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마흔 넘은 내가 고작 12살인 아이와 이렇게 죽기 살기로 싸울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내가 아이에게 말하는 것처럼, 남에게는 이렇게 못하면서 정작 내 가장 소중한 아이에게 이렇게 모질게 굴고 있다니.

엄마가 소리를 질러 미안하다며 아이에게 먼저 사과를 했다. 아이는 안보는 척하더니 이내 내 품에 안겼다.

한껏 서럽게 더 울고 나서야 점차 안정을 찾았다.




올해 들어 부쩍 첫째 아이와 부딪힘이 많아지면서 이게 사춘기의 시작인가, 정말 사춘기란 녀석은 꼭 이렇게 거칠고 힘들게 티를 팍팍 내면서 와야만 하는 걸까 생각해 본다. 나는 사춘기가 뭔지도 모르고 지나온 것 같은데(부모님의 생각은 다르실까..�)

퇴근 후 저녁 준비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세탁기를 돌리거나 거실 청소를 하거나, 건조기에서 빨래를 꺼내 정리하거나 이 모든 걸 아이들이 잠들기 전 다 하려고 하니 늘 바쁘고 아이들은 뒷전이었다.


아이들은 퇴근 후 내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쪼르르 달려와 꼬옥 안아준다.

아침 잠결에 헤어졌다가 저녁 6시 반에 만나는 엄마가 이토록 반가울까. 종일 떨어져 있다가 엄마를 만났으니 해주고 싶은 이야기도 있고, 같이 하고 싶은 놀이도 있을 텐데 엄마는 늘 바쁘다 바빠~ 하면서 눈도 마주치지 않고 행여나 놀아달라고 하면 너희들끼리 놀라며 등을 떠밀었다. 어느 순간 그런 나를 보게 되었고, 반성과 함께 아이들과의 시간을 우선으로 하자는 다짐을 했었다.

하지만 설거지도 청소도 잠시 미루기엔  해야 할 일들이 눈에 아른거리니 결국엔 아이들보다 설거지와 청소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눈에 보이니 손을 멈출 수가 없다.


지금은 아이들이 엄마의 손길과 품을 필요로 하지만 이런 시기도 잠시, 곧 엄마 품을 답답해하고 엄마의 손길은 귀찮아져 벗어나고 싶어 하는 그런 대상이 되는 순간들이 찾아올 텐데, 내가 그때 잡으려 하면 아이들이 자신들이 필요로 할 때는 봐주지 않다가 왜 이제야 당신이 필요할 때 찾는 거냐고 혹시나 나를 뿌리치게 되는 건 아닐지.


있을 때 잘하라는 말!

내 곁에, 내 눈에, 내 품에, 내 손길 안에, 내가 해줄 수 있을 때.

지난 시간 후회하지 말고 지금부터 아이 눈 한번 더 마주치고, 웃어주고 안아주고 뽀뽀해 주자!


가끔은 또 격렬하게 싸우게 되더라도 그만큼 더 격렬하게 아껴주고 사랑하자�

[몇 년 전, 강천산을 오르다 잠시 쉬는 삼 남매의 뒷모습에서 힘들어함이 느껴지는 듯하다.^^ 뭐든지 사랑스럽고 예뻤던 시기였다.  아이와 나의 황금시기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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