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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쭌쭌이맘 Dec 29. 2023

제6화 한여름날의 크리스마스 in Boracay

보라카이에서의 소중한 순간들

Ep1.  물놀이는 언제나 즐거워. 절대 지치지 않는 아이들의 무한 체력

보라카이 첫날 아침은 요란한 빗소리로 시작되었다. 

쏟아지는 비속에서도 이른 아침부터 비를 맞으며 수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곳에선 우리도 외국인이겠지만 내 눈에 보이는 외국인들이 마냥 신기했다.

그날 아침 가이드는 우리에게  한국인들은 비를 맞으면 큰일 나는 줄 아는데 보라카이는 미세먼지가 없어 깨끗한 비라서 맞아도 좋다며 다음엔 비가 오면 수영장 선베드에 누워 선글라스를 끼고 비 오는 하늘을 바라보면 정말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다음날에도 비가 왔지만 차마 그 비속에서 누워 하늘을 볼 자신은 없었다. 하지만 한 번쯤은 해볼 만한 경험일 것 같다.

아이들은 맘껏 물놀이를 즐겼다. 물놀이를 하다 배가 고프면 피자나 치킨(우리나라 치킨을 생각하며 주문했다가 많이 실망함)을 시켜 먹으며 또 놀았고, 끝나지 않을 것처럼 정말 열심히 놀았다.

[첫날부터 시작된 아이들의 즐거운 물놀이. 지치지도 않는지 좀처럼 끝나지 않는 물놀이. 너희들만 좋다면야~]
[첫날 둘째는 컨디션이 안 좋은지 발만 담그고 물에 들어가지 않으려 했다. 옆에 첫째 아이는 너무 신난 표정이네]


Ep2. 호핑투어와 바나나 보트체험

예정된 크리스털 코브섬은 날씨로 인해 들어갈 수가 없다며 우리의 일정은 에메랄드 빛 아름다운 보라카이 바다에서 호핑투어를 하고, 바나나 보트를 타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우리의 현지 가이드인 51세의 조셉은 바다에서 아무 장비 없이 맨 몸으로 튜브에 의지한 두 아이들을 10여분 정도 끌어주며 바닷속 구경을 하도록 해주었다. 두 녀석을 합하면 거의 90킬로 정도는 될 것 같아 묵직했을 텐데 너무 감사한 마음이었다. 덕분에 아이들은 안전하고 재밌게 물속 구경을 할 수 있었다.

아이에게 좋은 경험이 되었을 것 같다. 물론 물을 무서워하는 나는 감히 도전하고 싶지 않았지만.

[바닷속 구경을 하지 않은 막내가 지루한지 하품을 하네. 첫째는 바닷속 구경을 할 준비를 모두 끝냈다.
[조셉아저씨가 아이들을 이끌고 바닷속 구경을 시켜주고 있다. 저 멀리 배를 타고 물고기를 잡는 어부 아저씨란다. 대단하다. 이 파도에 저 작은 배에 의지할 수 있다니.]

그리고 아이들이 너무 좋아했던 바나나 보트체험. 나는 바닷물이 쉴 새 없이 눈, 코, 입으로 들이쳐서 이건 여행이 아닌 마치 극기훈련 같다는 생각에 너무 힘들었는데 아이들은 한번 더 타고 싶다며 무척이나 좋아했다.

맨 앞자리에 앉은 남편은 파도에 여러 번 떨어질 뻔했고, 아름다운 보라카이의 짠 바닷물은 입속으로 계속 들어오고, 수경을 착용했지만 눈도 제대로 못 떴다 조금 불만이었다.

그런데 물놀이가 모두  끝나자 라면을 끓여주는 게 아닌가!  물놀이 후 라면이라니. 모두들 환호하며 정말 맛있게 먹었다.


집에 돌아와 사진을 보는데 바나나 보트 맨 마지막에 배에서 봤던 현지인 꼬마 아이가 타고 있는 게 아닌가! 우리 둘째 아이와 비슷하거나 좀 더 어리게 보였는데 활짝 웃는 얼굴에 미소가 예뻤고, 남편과 나의 사진도 척척 찍어주었다. 그런데 아이가 착용하고 있는 큼지막한 시계와 반지가 아이에게 어울릴만한 것들이 아니라서 묘하게 슬픈 느낌이 들었다. 어린 나이에 생계를 위해 바다에서(물론 그들에게 바다는 필수이겠지만) 일을 하는 모습이 비슷한 또래의 우리 아이들과 대조되어서 슬프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나와 막내는 배에서 내릴 때 아이에게 1달러를 팁으로 주었다.(1달러 정도의 팁은 다 주어야 한다고 했다)

예의가 아닌 정말 고마운 마음이었다.

[출발 전 앞줄에 앉은 남편이 이쁜 표정으로 v를 했지만, 끝나고 난 뒤에는 소금물에 푹 절여졌다는! 바나나보트 맨 끝에 앉은 아이가 보인다. 역시 라면은 물놀이 후에 먹는 게 제일이다!]


Ep3. 한여름날의 크리스마스

필리핀에서 크리스마스는 1년 중 가장 큰 행사라고 했다. 한국에서도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드물었지만 이렇게 눈 없이 반팔을 입고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날이 있을 줄이야.

곳곳에 예쁘게 장식된 크리스마스 트리에, 길거리 가게에는 대부분 빨간 산타 모자를 쓰고 사람들이 일을 하고, 눈이 마주치면 서로 메리크리스마스~ 웃으며 인사해 주니 크리스마스가 실감이 나면서도 춥지 않은 이 더운 날씨 때문인지 어색하기도 했다.

단정한 제복차림에 권총을 소지해 무섭게 보이는 리조트 경호원도 우리가 나갔다 들어올 때마다 문을 열어주며 웃으며 메리 크리스마스~ 인사를 해주고, 리조트에서 오가며 만나는 분들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인사를 해준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나도 그들에게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를 하니 기분이 한껏 좋아지는 것 같다.

[한국을 떠나기 전 폭설이 내린 시골에 근사한 크리스마스 트리가 완성되었다(가운데사진). 그리고 이곳 필리핀의 한 여름밤의 크리스마스 트리]


Ep4. 말룸파티 - 이번 여행의 최고의 순간이다.

마지막 날 체크 아웃을 하고 아름다운 보라카이를 떠나 공항이 있는 칼리보섬으로 나와 차를 타고 한참을 이동해 도착한 곳이다. 한국의 계곡 같은 느낌이었는데 이곳은 필리핀 현지인들의 인기 있는 피크닉 장소라고 했다. 계곡에 가족 단위로 가볍게 물놀이를 하러 오는 느낌이랄까.

보라카이에서는 외국인들이 즐기는 모습을 보았다면 이곳에서는 필리핀 현지인들이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들이 신기해서 나는 한참을 바라보다 조심스레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블루라군에서 시작되는 튜빙보트는 현지인이 일대일로 이끌어 주기 때문에 위험하지 않았다. 처음엔 래프팅처럼 위험할까 걱정했는데 잔잔한 계곡을 천천히 흘러내려가며 이렇게 맑은 하늘을 또 언제 볼 수 있을까 싶을 만큼 깨끗한 하늘과 쭉쭉 뻗은 나무들을 스쳐 지나가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는 것 같았다.

한국인이 많이 오는 곳인지 한국어도 능숙하게 하는 현지인들이 "엄마 엄마,  무거워" 농담도 한다. 농담이겠지????

한국에선  할 수 없는 아주 멋진 경험이었고 이번 여행의 최고의 순간이었다.

[튜브를 타러 산을 조금 걸어가다 보면 이렇게 예쁜 사진포인트가 있다. 큰 야자수를 타고 올라간 현지인이 사진을 찍어준다. 일명 드론샷!]
[5미터 높이에서 다이빙을 하는 첫째. 여유로운 말룸파티의 하루]


Ep5. 쇼핑거리 디몰

일정에 디몰쇼핑이라고 있어서 큰 쇼핑몰을 기대했는데 가이드 말에 의하면 보라카이섬은 요만큼 작기 때문에 쇼핑몰도 요만큼 작다고 했다. 듣고 보니 그럴만하다.

디몰은 작은 쇼핑거리였지만 아기자기 예뻤다.


첫 번째는 가이드를 따라서 이곳저곳 설명을 들었고, 두 번째는 저녁을 먹고 소화도 할 겸 일행들과 걸으며 구경을 했다. 어느 가게를 지나는데 5~6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노래를 틀고 춤을 추는데  예쁘장한 얼굴에 너무 귀여웠다. 동영상을 찍다가 내리고 아이를 빤히 쳐다보는데 아이도 나를 바라봐줘 눈이 마주쳤고 우린 서로 웃어주었다. 웃는 미소가 예뻤는데 나중에 멋진 가수가 되어 있으려나.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피하려  어디든 들어가려 했는데 크리스마스 이브라 가게는 꽉 차 있었고 마지막에 급하게 들어간 곳은 가게 중앙에 큰 화면이 있고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또 노래도 부르는 곳이었다. 종업원이 대부분 남자였고(산타모자를 썼지만 왠지 모르게 무서웠다) 민소매 티셔츠를 입은 아주 건장한 남자가 가게 안을 돌아다니고 있어(남편말로는 이 가게의 가드일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괜히 무서워서 주문한 수박주스도 제대로 마시지 못했고(맛도 없었음) 빨리 나가고 싶었다. 계산을 하고 나오는 길엔 산타 머리띠가 여러 개 놓여 있어서 우리는 하나씩 머리띠를 하고 나왔다(무료인지 그냥 하고 가도 별말이 없었다.) 그 덕분인지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더 나는 듯했다.

[디몰 쇼핑거리는 화려하지 않아 정겹다. 남편과 첫째가 디몰 쇼핑거리를 지나 화이트 비치로 가고 있다]
[크리스마스 이브를 즐기는 사람들. 즐거운 시간]

마지막은 이른 아침 혼자서 숙소를 나와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를 지나 디몰 쇼핑몰을 가로질러 화이트비치까지 걸었다. 어젯밤 사람들이 즐긴 흔적을 치우는 청소부, 가게문을 열고 장사를 준비하는 사람들, 현지인들이 잔뜩 줄을 선 어느 건물 앞, 작은 호수에 위치한 크리스마스트리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었더니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거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망설이지 말고 더 빨리 와서 이 풍경을 구경할걸. 침대에 누워 망설인 시간이 아까웠다.


Ep6. 술 이 녀석! 드디어 사고를 치다

둘째 날 밤, 가이드에 대한 원망이 가득했던 날.

나와 아이들은 휴식을 취하고 남편과 일행은 옆방에서 술자리를 가졌던 날이다. 살짝 술이 오른 상태에서 자리 정리를 위해 베란다에 있는 테이블 의자를 당기는 순간 의자 다리에 걸린 테이블이 넘어지면서 테이블 위에 올려진 유리가 와장창 바닥으로 쏟아졌다.

모두 놀랐겠지??? 바로 가이드에게 사실을 알려줬고 다음날 가이드가 리조트 측과 이야기를 하더니, 비용은 확인해 보고 알려주겠다고 했다.

우리가 바깥 일정을 소화하고 들어오니 남편 침대 위에 고이 청구서가 놓여있었다.

5,550페소. 약 129천 원!

유리만 바꾸면 될 것 같은데, 유리가 그렇게 비쌀까,

바가지를 쓴 것 같다고 했지만 어쩌겠어 우리가 잘못한걸.

[남편이 깨뜨린 유리와 청구서. 예상치 못했던 지출이다.]


Ep7. 우리들의 가이드에 대하여

지인과 닮아서 괜히 친근함이 느껴졌던 가이드.

첫날 가이드가 안내해 주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디몰 쇼핑 거리를 설명해 주고, 4시쯤 마사지를 받고 저녁식사를 한다고 일정을 설명해 주었다. 아이들과 신나게 물놀이를 하고 4시에 모였는데 가이드는 보이지 않고 어젯밤부터 우리를 가이드한 현지인 조셉이 우리를 마사지샵으로 안내를 했다. 그리고 마사지 후 저녁 식사 장소에 도착하니 가이드는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필리핀은 소고기가 맛없다며 저녁으로 삼겹살을 준비했고, 농담인지 모르겠으나 웃으며 제공된 고기 외에 추가는 안된다고 했다.

그럭저럭 먹을만했고, 숙소로 도착하니 내일 일정을 설명해 주면서 자신은 다른 일행이 섬으로 들어올 예정이라서 같이 갈 수가 없어 다른 팀 가이드에게 우리를 부탁했다고 했다. 방으로 들어와 남편에게 조심스레 가이드가 제대로 안 하는 것 같네? 했더니 남편도 그렇게 느꼈다고 한다. 다른 일행들도 다들 느낀 것 같았다.


다음 날 바다로 호핑투어를 갔을 때 다른 팀들은 가이드가 있는데 우리만 없어 다른 팀 가이드를 따라다녔다. 다행히 그분은 친절했고 호핑투어도 재미있었지만 우리는 슬슬 가이드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일정을 끝내고 점심 장소로 이동하니 짜잔! 가이드가 또 식사장소에 있었다. 가이드는 맛있게 드시고 오후는 자유일정이니 구경하다가 숙소로 가시면 된다고 설명을 해줬고, 우리는 뷔페에서 식사를 했다. 식사 후 가이드는 보이지 않았고 우리는 또 우리만 남았다는 걸 알았다.


한참 후 가이드는 단톡방에 내일 일정을 설명해 주면서 저녁 식사장소를 한두 군데 추천해 주며 예약을 원하면 자기가 예약을 할 테니 연락을 달라고 했다. 처음엔 가이드가 추천한 집을 갈까 했는데, 가이드로서 역할을 제대로 해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우리가 직접 찾아서 가자고 갑자기 으쌰으쌰 분위기가 되면서 저녁에 무작정 거리고 나갔다.

생각보다 한국 음식점이 많았는데 선뜻 고르기가 쉽지는 않았다. 그러다 들어간 곳에서 일행들은 가이드가 추천한 곳보다 더 맛있다며 술과 함께 맛있게 식사를 했고 그러다 다른 일행을 데리고 지나가는 우리들의 가이드를 발견했다. 가이드는 우리가 있는 식당 앞을 지나가며 우리를 봤을 텐데 그냥 쓱 지나가버렸다.

아마도 자기가 추천해 준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먹는 우리가 괘씸했겠지. 우리도 네가 괘씸했어.


마지막 날 아침,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오늘 일정을 설명해 주며 또 자기는 이 섬을 벗어날 수 없어서 조셉도 아닌 다른 분과 함께 일정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끝까지 버려졌다며 엄청 분해했다.

모든 일정이 끝나고 저녁 식사를 하러 간 곳에(이곳도 이미 예약된) 가이드 이름이 적힌 식탁에서 저녁을 먹고, 옆 카페에도 가이드 이름이 적힌 테이블에 앉아 우린 망고주스를 마셨다. 아휴.


단체 여행을 많이 해보지 않았지만 이런 모습이 정상적인 가이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정해진 기간에 비싼 돈을 내고 가이드를 통해 편하고 안전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권리를 가진 게 아닌가. 그런데 가이드는 우리가 아닌 또 다른 팀을 챙겨주러 우리를 버리고 갔고, 한 번도 우리와 동행하지 않았다.


우리는 돌아오는 밤 비행기를 기다리며, 설레는 마음으로 보라카이에 도착하는 한국인들을 향해 'ooo가이드를 조심하세요~' 차마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속삭였다. 진심으로 그 가이드를 만나지 않기를 빌었지만 그중에 몇분은 가이드를 만나겠지. 

그리고 그때 가이드에게 단톡이 왔다. 첫날, 우리가 여행을 끝나고 돌아갈 때는 아름다운 보라카이 석양사진을 보내주겠다고 하더니 사진을 보내긴 했다. 그제야 우리는 일출도, 일몰도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생각에 또 분해하며 필터를 잔뜩 사용한 것 같은 일몰 사진을 봤다.

후에 남편은 가이드에게 따지고 싶었으나 필리핀이 총기 소유가 되고, 그 가이드가 오래 그곳에 살아서 혹시나 보복을 할까 봐 쉽게 따질 수가 없었다고 했다. 솔직히 나도 보복을 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에 무서운 생각이 들긴 했었다.


이렇게 3박 5일 우리의 보라카이 여행이 마무리되었다. 

비록 가이드는 완벽하지 않았지만 보라카이섬은 우리에게 완벽했다. 

땡큐 보라카이!!

굿바이~ 보라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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