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이야기는 지난 11월 30일~12월 1일 이틀간의 이야기예요. 1년에 한 번 저희에게 중요한 날이기에 시간이 지났지만 여기에 남겨놓아요.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정기 검진을 위해 병문을 방문하던 날, 그날은 남편은 밖에서 대기하고 나만 검진실로 들어갔다. 그날은 왜 그랬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초음파를 보는데 어? 오늘은 좀 길게 하는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의사 선생님 얼굴을 보는 순간 '뭔가 이상하구나!' 느낌이 왔다. 의사 선생님은 이렇게 저렇게 초음파를 한참 더 보더니,
아이 신장에 작은 구멍이 나 있는 것 같아서 진단서를 작성해 줄 테니 더 큰 병원으로 가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남편과 가족들 모두 괜찮을 거라고했지만 모든 게 다 내 잘못인 것 같았다.
참다가결국 먹었던 라면도, 커피도 더 참을 걸.
내가 나이가 있으니 몸 관리도 잘하고 영양제도 더 잘 챙겨 먹을 걸.
아이는 태어나서 신생아실 한쪽에 마련된 집중치료실에 누워 있었다. 집중치료실이라고 딱히 다른 건 없었다.
첫째에 이어 둘째도 수술을 해서 몸이 회복하는 게 쉽지 않았다. 남편이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우리 아이를 보러 갔다.
제한된 시간이었지만 너무 작고 예쁜 우리 아이를 보는 게 기쁨이었고, 여느 아이들과 다른 곳에 눕혀 있는 아이에게 미안했다.
지금 11살인 둘째 아이는 한쪽 신장이 기능을 하지 못해 1년에 한 번 서울에 와 정기검진을 받는다. 작년에 남편은 아이에게 병원을 다니는 이유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아빠에게 설명을 듣고, 매번 의사 선생님과 상담을 하지만 아이가 그 내용을 얼마나 이해하고 들었을까 싶다.
더욱이 둘째는 감정표현을 잘하지 않는 편이라 걱정도 된다. 어릴 적 검진을 위해 피를 뽑거나 주사를 맞을 때 무섭다고 울거나 소리를 내는 적이 없어서 겁이 없는 편인가, 씩씩하게 잘하네 칭찬했는데 아파도 참고 표현을 하지 않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에 이젠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이다.
아프고 무서우면 아빠 엄마가 옆에 있으니 소리를 내도 된다고 해도 이제껏 아이는 한 번도 그러지 않았다.
지방에서 서울까지 올라가야 해서 보통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새벽 기차를 타고 올라가서 검진하고 다시 오후 기차를 타고 내려오는 일정이라 남편도 아이도 매번 피곤하고 힘들어했다.
그래서 올해는 병원을 가는 김에 서울 여행도 하기로 하고 가족 모두 올라가기로 했다.
기차표는 다자녀 할인을 받아서 왕복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었고, 숙소는 서울에 사는 둘째 언니집에 묵기로 했다. 숙박비도 아꼈다.
아이들은 하루 학교와 학원을 쉬는 것만으로 이미 행복한 상태였다.
나는 이틀 휴가를 냈고, 남편이 오후 4시쯤 퇴근을 하고 집에 오면 저녁을 먹고 6시 반 기차로 출발하기로 했다.
다섯 식구의 짐을 챙기는데 겨울이다 보니 옷이 두툼해서 간단히 챙긴다고 해도 다섯 식구의 짐은 결코 간단하지가 않다. 손에 쥐고 몇 번이나 넣을까, 뺄까 고민하다 이리저리 모양을 맞춰가며 중간 크기의 캐리어 두 개에 짐을 꾹꾹 눌러 담았다.
점심은 컵라면으로 때우고, 건조기에서 빨래를 꺼내 정리하고 청소기까지 돌렸다.
그리고 저녁에 먹을 김밥을 준비했다.
남편이 오고 학원이 끝난 아이들까지 다 도착해 서둘러 김밥을 먹고 집을 나섰다.
퇴근 시간이라서 차가 막히는 듯했지만 다행히 늦지 않게 도착해서 간식거리를 사고 기차를 탔다.
드디어 서울로 출발~
[자기 키만 한 캐리어를 끌고 가는 막내]
다음 날 아침 7시쯤 아이들을 깨웠다. 아직 잠이 덜 깬 둘째 아이를 욕실로 데리고 들어가 소변을 받아 병원에서 나눠준 작은 소변통에 담았다. 날씨가 춥다고 해서 아이들 옷도 단단히 입히고 핫팩도 하나씩 챙겨서 일찍 집을 나섰다.
아침 7시 반 지하철은 사람이 많았다.
아이들이 피곤하니 자리가 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마침 한 자리가 나서 아이들에게 앉으라고 했더니 엄청 정색하면서 싫다고 거부를 해 결국 내가 앉았다. 남편과 아이들은 입구 쪽 기둥을 잡고 서 있었고, 몇 번이나 와서 앉으라고 했지만 그럴 때마다 너무 정색을 하며 싫다고 했다.
처음 타 본 지하철에서 낯선 사람들 사이에 앉으려니 어색했을까 결국 아이들은 병원까지 40여분 정도를 서서 갔다.(하지만 이후에는 자리가 나면 바로 앉았다. 이날 많이 힘들었구나^^)
도착해서 둘째 아이는 바로 채혈을 하고, 혈압을 측정했다. 이른 시간이지만 어린이병원엔 아이들이 많았다. 왜 이렇게 아픈 아이들이 많은 건지.
병원은 마음이 힘든 곳이다.
내 아이가, 다른 아이들이 모두 어딘가 아파서 온 것이니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힘든 곳이다.
초음파는 9시 40분이라서 조금 기다려야 했다. 우리가 기다리는 사이 인큐베이터 세 대에 작은 아기들이 누워서 초음파실에 도착했다.아직 눈을 못뜬것 같은데 꼬물거리는 몸짓도 너무 작고 연약하다. 그 작은 몸으로 어디가 아파서 온 건지, 부디 잘 견뎌주길.
초음파 검사까지 마치고 아침을 먹으러 갔다.
의사 선생님 면담시간은 보통 채혈 후 1~2시간 지나야 해서 이 시간에 아침을 먹어야 한다. 아이들은 라면을, 나는 미역국 그리고 남편은 육개장을 주문했다.
따뜻한 음식이 막 나온 순간 남편이 핸드폰을 보더니 헉! 놀랜다.
지금 면담시간이니 대기실에서 대기하라는 문자였다. 채혈 결과가 1~2시간은 지나야 한다고 했는데 이렇게 빨리 되었다고?
남편과 둘째 아이는 한 숟가락 들지도 못하고 음식을 그대로 두고 다시 진료실로 갔고, 나와 두아이는 남아서 식사를 했다. 음식이 다 식어버린 후 남편과 둘째 아이는 돌아왔다.
남편은 혈압이 조금 높네, 하며 자리에 앉아 다 식어버린 육개장으로 식사를 했다. 다 식어버린 육개장이 맛이 있을 리 없고, 이미 시간을 놓쳐서 입맛도 없었을 것이다.
둘째 아이는 다시 주문해 준 라면을 후루룩 맛있게 먹었다.
[병원 한켠에 마련된 소원카드 작성하기. 나도 삼남매가 건강하길 바라며 소원카드를 적었다. 좀 이쁘게 적을걸...다른 소원 카드를 읽는 중인 막내]
다행히 아이는 큰 문제없이 건강하게 1년을 잘 지냈다. 의사 선생님은 이제 2년에 한 번 방문하면 된다고, 정기검진이니 집 근처에서 다녀도 될 것 같다고 했지만 나와 남편은 힘들어도 아직은 서울로 오는 게 좋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건강하게 잘 자라준 아이에게 고맙고, 오늘도 이런저런 검사를 받느라 고생한 아이가 안쓰럽기도 했다.
예전 같으면 검사가 끝났으니 바로 집으로 내려오는 기차를 타러 가야 했는데, 오늘은 이제부터 아이들과 신나게 서울 여행을 해야겠다.
다행히 홀가분한 마음으로 구경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아이들만큼이나 나도 설레는 서울 여행이었다.
[광화문 광장으로 걸어가는 남편과 둘째아이. 마침 하늘은 왜 이렇게 눈부시게 아름다운지. 같이 걷는 둘의 모습도 아름답다. 코끝이 찡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