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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쭌쭌이맘 Dec 12. 2023

1화. 삼 남매의 내년 달력 꾸미기

모처럼 평화로운 저녁 시간을 보낸 날

저녁 퇴근하는 길에 남편이 회사에서 2024년 달력을 가져왔다.

매년 남편이 회사에서 가져오는 달력은 식탁에 앉으면 보이는 맞은편 벽에 걸어둔다

삼 남매가 어릴 때 달력을 보면서 날짜와 요일을 익히도록 하기 위해 고민하다가 아침, 저녁 식탁에 앉아 볼 수 있는 벽에 걸어 두었다.

올해부터는 월이 바뀌면 둘째 아이가 달력을 넘기는 무를 맡았다. 아이들에게 뭔가 담당하는 일을 주면 좋을 것 같아 내가 임의로 정했는데 아이도 한 달에 한번 하는 일이 싫지 않고, 또 자기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지 짜증 내는 적도 있지만 지금까지 잘해주고 있다.


삼 남매는 색깔 볼펜을 가져오더니 거실에 달력을 펼쳐 놓고 자기들 생일을 표기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올해 5학년인 큰아이가 "나는 남자니까 내 생일은 장남 생일이라고 적어야겠다"라고 하니

막내가 "오빠 장남이 무슨 뜻이야?" 하고 물어본다

큰아이가 그건 첫째라는 뜻이라고 알려주니, 둘째 아이는 그럼 자기는 장녀라고 쓰겠다고 한다.

다시 막내가 "그럼 나는?" 하고 물어보니 큰아이가 너는 차녀라고 말해준다.

[큰아이가 작성한 첫째 멋진 장남 나의 생일. 그리고 막내가 작성한 언니생일]


[예쁜 막내 내 생일 / 3.1절 태극기까지 야무진 막내솜씨]

 오랜만에 아이에게서 듣는 장남, 장녀라는 단어가 너무 생소하게 느껴졌다. 이 단어를 사용한 지가 꽤 오래되었다는 생각과 함께 나도 남편도 여기에 해당하지 않지만 장남, 장녀라는 말에서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아이에게는 그 무게감을 주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나의 단어를 두고 지금 아이들 세대와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은 다를 수 있겠지만, 장남이라는 그 위치는 달라지지 않으니 언젠가 아이도 그 무게감을 느끼게 되려나.

그 무게감을 느끼지 않게 해주는 것이 남편과 나의 의무라면 의무겠지.


하지만 아이는 벌써 종종 자기가 첫째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냐고, 첫째라서 많이 힘들다고 나에게 이야기를 한다. 그럴 때마다 미안한 마음 한편으로 나의 마음은 따스한데 머리는 차가워서 아이의 그런 마음을 온전히 받아주는 것이 아직도 나는 쉽지가 않다. 나는 벌써 12살 아이에게 장남으로서의 의무를 기대하는 걸까. 제발 아니길.

엄마 12년 차이지만 늘 엄마 역할은 어렵다.

그런데 왜 어릴 적 소꿉놀이 할 때는 엄마, 아빠 역할을 하고 싶었던 걸까. 이렇게 어려운데 말이다.




생일을 적은 다음엔 달력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가장 기대하는 쉬는 날을 세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둘째 아이가 "아, 7월엔 쉬는 날이 하루도 없네." 하며 너무나 안타까워한다. 큰아이가 왜 제헌절은 쉬는 날이 아니지 하니 막내는 또 제헌절이 무슨 날이냐고 물어본다.

이번에도 큰 아이가 설명을 해준다.


마지막 12월 달력을 확인하더니, 큰아이가 자기는 교회보다 절이 더 좋다고 한다. 권사님이신 어머님이 이 말을 들으셨다면 기겁하시겠다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이에게 이 말을 해주려다 그만둔다.

아이의 평소 느낌인지, 아니면 순간적으로 나온 말인지 모르겠지만 아이도 자기 마음이 더 편한 곳으로 가는 것일 테니 어쩔 수 없겠지.


이렇게 우리 집 내년 달력 꾸미기는 마무리가 되었다. 한번 훑어보니 글씨는 삐뚤삐뚤 읽기 힘들지만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

달력 꾸미기로 모처럼 세 아이의 저녁 시간이 평화롭게 마무리되었음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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