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재영 Oct 16. 2023

자신에게 설레라

  어른이 되어 잠시 접어 두었던 “소외된 이웃을 위해 살고 싶다.”는 꿈을 50이 되어 다시 준비하면서 인생이 설레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공장 노동자이셨다. 전주에서 가장 높은 산날망에 위치한 우리 집은 공동화장실을 이용하는 슬레이트지붕의 시멘트블록으로 지어진 무허가 주택이었다. 말이 주택이지 여름에는 슬레이트 지붕의 열기가 한 밤중까지도 식지 않아 한증막처럼 뜨거웠고, 한겨울 벽 틈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은 이불속 손발도 꽁꽁 얼게 하기에 충분했다. 아버지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자식만큼은 자신의 전철을 밟지 않게 하겠다는 일념으로 모든 걸 자식 교육에 쏟아부었다.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자동차 정비공장에서 일하시는 아버지를 보러 자주 찾아갔었다. 여름에는 데일만큼 뜨겁고 겨울에는 쩍쩍 붙어 동상에 걸릴 정도로 차갑다는 쇠를 다루며 한평생 공장에서 일하시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았다. 그분들을 보며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어렴풋이 그려지기 시작했고, 사회에서 소외된 이웃을 위해 살고 싶다는 작은 꿈을 품기 시작했다. 그래서 직업도 변호사가 되려고 하였고, 진로도 법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그러나 마음만 앞서고 노력이 부족했던 탓에 사시의 길을 포기하면서 꿈도 접어야만 했다. 


  검찰수사관의 길을 걸으면서 단 한 사람의 억울한 사람도 만들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열정적으로 업무에 임했다. 사건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매일 팀원들과 야근을 하며 증거를 수집하고, 범인을 검거하기 위해 날을 새며 잠복을 하기도 하고, 가출한 청소년을 찾아 전국을 누비고, 무고한 사람의 혐의를 벗겨 주기 위해 놓친 것은 없나 사건 기록을 샅샅이 뒤졌다. 하루 24시간이 짧아 집에도 가지 않았고, 등 떠밀려 집에 가기라도 하면 옷만 갈아입고 날이 새기 무섭게 출근을 했다. 일에 미쳤다고 할 정도로 매달리고 집중했다. 이런 열정은 누가 시키거나 의무여서는 할 수 없다. 내가 좋아야 하고 내가 하고 싶어야 가능한 행동들이다. 수사관으로써 맡은 일을 하면서 하루하루가 설레고 즐거웠다. 


  관리자가 되어 직접 수사를 하거나 현장을 뛰어다니는 업무에서 물러나게 되면서 갑자기 좋아하는 일을 빼앗긴 것 같은 생각에 한동안 우울했다. 사명처럼 여겨졌던 소중한 책무를 다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잠시 길을 잃기도 했다. 선배로부터 지금까지 배우고 경험한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나눠주면 어떻겠냐는 조언을 들었다. 다시 앞이 밝아지며 가야 할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후배들을 우수한 수사관으로 양성하는데 노력했다. 사건 기록을 가지고 도제식으로 직접 지도도 해주고, 강사로서 교육을 통해 전수도 해주었다. 후배들이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며 즐겁고 설렜다. 


  그 후에도 삶은 설렘의 연속이었다. 설레는 일을 할 때 가장 즐겁고 행복했다. 설레는 순간이 저절로 찾아올 수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많지 않다. 설레기 위해서는 설레는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 설레는 길은 위험과 두려움, 불안함이 있지만 그 뒤에 오는 설렘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고 짜릿하다. 


  퇴직을 앞두고 책을 출간했다.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딱딱하게만 느껴지는 수사과장이 감성 풍부한 작가가 되었으니 기적과 같은 일이 생긴 것이다. 청탁도 받고 기고도 하고 북콘서트도 하며 글쓰기의 매력에 빠졌다. 시립도서관과 공공기관을 다니면서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예비 작가들을 만나 노하우도 알려주고 함께 글도 쓴다. 글쓰기를 통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설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렇게 변한 모습이 나 자신도 놀랍다. 


  앞으로는 지금과 전혀 다른 새로운 설렘의 삶을 만들어 가고 싶다. 바르게 사는 모습이 아닌 재밌게 사는 모습으로, 희생하는 삶이 아닌 이기적인 삶을 살고 싶다. 혼자가 아닌 많은 사람이 함께 설레는 삶을 만들고 싶다. 이탈이 뭔 지도 모르고 오직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바른생활을 했다. 범생이의 모습은 편히 살 수는 있으나 재미가 없다. 앞으로 살아갈 미래의 모습이 뻔히 그려지는 그런 삶은 살고 싶지 않다. 물론 그런 삶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설렘이 없다. 


  두 번째 삶은 달라질 것이다. 한 번도 입어보지 않은 옷을 입고, 한 번도 해보지 않은 헤어스타일을 하고, 한 번도 해보지 않은 행동도 해볼 것이다. 한 번도 시도하지 않은 것,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 한 번도 만나지 않은 사람,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꿈에 도전해 볼 것이다. 많은 시행착오도 있을 것이고, 좌충우돌로 상처를 입기도 하고, 실망과 좌절로 아파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지나온 삶보다 더 기대되고 가슴 뛸 거라는 확신이 있다.   


  퇴직을 하고 잠시 접어 두었던 꿈을 다시 꺼내어 준비하고 있다. 조만간 시작하려고 한다. 두렵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다. 지금까지 이룬 것,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잃을 수도 있어 무섭기도 하다. 그러나 꿈을 꾸기 시작하면서 멈췄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나에게 설레기 시작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