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부에서 연락이 왔다. 3주 후에 평가가 있는데 해볼 거냐고 물었다. 통상 3개월 전에 평가 일자를 통보해주는데 갑자기 응시자가 연기 신청을 해서 자리가 비었다며 응시하겠냐고 연락이 온 것이다. 시간이 너무 촉박하여 망설이다가 한 시간만 시간을 달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직 준비도 전혀 안 된 상태이고, 추석 전이라서 바쁠 것 같기도 하고, 떨어지기라도 하면 명절은 말할 것도 없고 일가친척 볼 면목도 없을 것 같아 고민이 깊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시간이 많을수록 심적인 부담만 늘어가고 오랫동안 준비하려면 고생도 많이 해야 하고 가족들에게도 신경을 많이 쓰게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역량평가라는 것이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갑자기 없던 역량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딱히 역량을 늘리기 위한 공부로 뭘 해야 하는지도 막막하다 보니 미루지 말고 일단 덤비기로 했다.
본부에서 보내준 기존 평가 자료들을 출력하여 책으로 편집하니 전부 다섯 권이 되었다. 역량평가는 무엇보다 실전 연습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여기저기 수소문을 하니 연수원에서 강의교재로 사용했던 실습교재 세 권을 구할 수 있었다. 시험을 앞두면 항상 하는 방식대로 일단 계획표를 작성했다. 3주간 기존 자료집을 세 번 읽고, 실습교재로 실전처럼 모의평가를 세 번 해보기로 일정을 짰다. 이번엔 하나 덧붙여 3주간 금주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3주간 술을 먹지 않고 맑은 정신 상태를 유지하며 준비를 하면 꼭 통과할 것 같은 막연한 기대심이 생겼다.
금요일부터 시작하여 세 번째 목요일이 평가일이다. 근무를 마치면 자료를 챙겨 도서관으로 갔다. 계획표대로 하려면 열심히 해야 했다. 두 번의 주말은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보냈다. 나이가 있어서인지 쉽게 지치고 하기도 싫어지고 잡념도 많이 생겼다. 대충 이 정도 하면 되겠지 하는 자기모순적 자신감을 억지로 만들려고도 하였다. 준비 기간에 간담회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소중한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누구나 시험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힘들거나 어렵거나 부담이 많아지면 그만두거나 쉬려는 마음에 스스로 그럴싸한 변명거리를 제공하며 달리던 속도를 멈추거나 잠시 주저앉아 쉬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합격한 사람들을 보면 그 순간에 공부 효과는 미미하더라도 절대 쉬거나 멈추지 않고 해온 대로 꾸준히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다는 것이다.
산을 오르다 보면 숨이 목에 차고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할 정도로 힘들 때가 많다. 그래도 쉬거나 주저앉으면 다시 일어나 올라가기가 쉽지 않다. 아무리 힘들어도 묵묵히 한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야 포기하지 않고 산의 정상에 오를 수 있다. 힘든 과정을 이겨내야만 정상에 서서 멀리 멋진 경치를 바라보며 오를 때의 힘듦이나 고단함을 추억으로 만들 수도 있고, 산을 왜 오르려 했는지에 대한 이유도, 뭔가 이뤘다는 뿌듯함도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은 일생을 살아가면서 많은 산을 만나게 된다. 각자의 여정에서 다양한 산들을 만나겠지만, 직장인이라면 근무하는 동안 승진이라는 피할 수 없는 산을 만나게 된다. 승진이 직장 생활의 전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열심히 일한 것에 대한 보상을 받고, 내가 한 일에 대해 인정을 받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
누구나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오르고 싶은 자리가 있지만 쉽게 이룰 수 없기에 꿈으로 남겨지는 경우가 많다. 나도 지금의 길을 선택하면서 꿈이 있었고, 30여 년의 직장 생활을 하면서 많은 승진의 과정이 있었다. 처음에야 누가 조금 늦고 빠르고의 차이에 불과하지만 위로 갈수록 급 피라미드를 형성하며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해야 하는 것처럼 어려워지고 기회도 잘 주어지지 않는다. 꿈이 꿈으로 끝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많은 산을 도전하며 오르기를 반복했다.
평가를 보기 위해 전날 서울로 올라갔다. 아내가 함께하고 싶다고 했다. 평가 내내 마음 졸이고 있을 아내를 생각하면 같이 가고 싶지 않았으나, 혼자서 집에 남아 걱정하고 있는 것보다 곁에서 뭐라도 챙겨주는 게 아내를 좀 더 편안하게 해주는 거라 생각하며 함께 가기로 했다. 나는 가방을 들고 아내는 백팩을 메고 고속버스에 지하철을 타고 사당에 있는 호텔에 도착했다. 짧은 여정이었지만 산티아고의 순례길을 같이 걷던 이야기를 나누며 내내 행복했다. 집이 아닌 밖에서 잠을 잘 때 제대로 된 잠을 잔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집처럼 평온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아내는 내가 집에서 쓰던 물건들을 모두 백팩에 넣어 가져온 것이다.
아내의 따뜻한 포옹을 뒤로하고 호텔을 나서 인재개발원에 갔다. 오전 오후 다섯 시간에 걸쳐 역량평가를 봤다. 아쉬운 과목도 있었으나 일단 끝났다는 홀가분한 기분에 어린애처럼 즐거웠다. 지하철역에서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뭔가 물어보고 싶은데 묻지 못하고 나의 눈치만 살피는 것 같았다. 그 마음을 알지만 특별히 해 줄 말이 없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점심도 못 먹은 아내를 데리고 고속버스터미널 카페에서 빵과 커피 두 잔을 주문했다. 허겁지겁 빵을 입에 넣고 있는 아내를 보니, 온종일 개발원 정문 앞에서 마음 졸이고 있었을 모습이 떠올라 눈앞이 흐려졌다.
집에 가기 위해 고속버스를 타니 아내는 피곤한지 바로 잠이 들었다. 근무시간이 끝나기 전에 개발원에서 본부로 통과 여부를 알려 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나는 쉬 잠들지 못하고 핸드폰만 만지작거렸다. 처음 발령을 받아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 후 얼마나 많이 이 고속도로를 오고 갔는지 모른다. 30여 년의 직장 생활이 창밖의 경치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버스가 천안을 지나는데 핸드폰의 진동 벨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