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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재영 Aug 29. 2020

제주도 간다

  이불이며 옷가지며 각종 살림살이를 승용차에 가득 싣고 여객선에 올랐다. 선상에서 “제주도 간다, 완도에서”라는 표지판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신났다. 아내는 “우리 다시 신혼이 되는 건가요?”라고 묻는다. 신혼이란 말에 이건 뭐지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니 아내는 장난기 많은 얼굴로 환하게 웃는다. 


  제주에서 한 달이나 일 년 살기가 유행하면서 우리도 제주살이를 해보자는 막연한 계획이 있기는 하였다. 물론 퇴직을 하고 나서야 가능하다고 생각한 터라 이렇게 갑자기 가게 될지는 예상을 못했다. 하반기 근무 희망지 신청 공지사항을 보는 순간 제주에 가볼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갑자기 심장이 뛰고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아내와 커피를 마시며 마주 앉았다. “신청해 볼까?” 아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가자고 했다. 


  제주도 근무를 신청하고 주변 정리를 하며 마음이 바빠졌다. 1년 넘게 떠나 있어야 해서 벌려 놓은 일들을 대충이라도 마무리하고 가야 했다. 갑작스럽게 떠나는 거라 인사는 제주에 가서 할 요량으로 급한 일들만 처리하며 제주살이 준비를 하였다. 가보고 싶은 곳도 많고, 걸어보고 싶은 길도 많고, 해보고 싶은 것도 많다. 제주도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면서 생활 터전을 옮기기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해나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불안해지고 잘 지낼 수 있을지 걱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괜히 신청을 했나 하는 후회도 들었다. 떠나기 전날까지 잘했다는 생각과 후회하는 마음이 반복되면서 감정의 요동에 꽤나 힘들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새로운 선택을 하였을 때의 진통을 거치고 있는 거라 생각되었다. 


  제주도에 가기 위해서는 일단 비행기를 타거나 여객선을 타야 해서 출발하는 순간 여행의 설렘이 다른 지역에 비해 크다. 제주공항에 도착하면 워싱턴 야자수와 열대 식물들이 곳곳에서 반겨주니 이국적인 정취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마치 외국에 온 것 같은 신비감으로 제주에서의 기억은 모두 아름답고 행복하고 즐거웠다. 


  신혼여행을 제주도로 왔었다. 당시만 하여도 외국으로 가는 것은 특별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행운이었고 대부분은 제주도로 가는 것이 당연하였다. 일 년 넘게 시도를 넘나들며 만나다가 결혼을 한 터라 신혼여행은 특별한 감흥으로 다가왔고, 생애 첫 제주도행은 신비로움과 설렘으로 가득했었다. 세상에 태어나 부모님의 보호를 받으며 지내다가 결혼을 하면서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 첫걸음을 제주도에서 시작하였다. 민속촌에서 신부를 엎고 한 컷, 바닷가 모래밭에 그린 하트 모양을 배경으로 한 컷, 성산 일출봉을 배경으로 한 컷, 제주시의 야경을 배경으로 와인잔을 들고 한 컷. 지금도 신혼여행에서 찍은 풋풋한 사진들을 소중한 보물로 간직하며 가끔 그때의 행복했던 순간을 회상해 보곤 한다. 


  처음 제주도와 인연을 맺은 후로 몇 차례 여행을 왔다. 결혼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아 부모님을 모시고 제주도에 왔었다. 첫애가 3살 정도였으니 둘째는 아직 태어나기도 전이고, 반지하에서 생활하던 어려운 시절이라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한다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부모님이 평생 한 번도 비행기를 탄 적이 없다는 사실은 알게 된 아내가 일방적으로 추진하였다. 오직 자식들의 교육만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이 누렸던 소소한 일상마저도 거부하며 살아오셨던 부모님을 위한 아내의 마음이었다. 제주도를 여행하는 동안 아버지는 손자의 손을 잡고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셨다. 아버지도 여행을 좋아하시고 환한 웃음을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그 후 몇 해가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우리 곁을 떠나셨다. 아마 아버지는 자식의 불효를 조금이나마 덜어 주려고 마지막으로 행복한 모습을 남겨주셨던 것 같다. 


  아이가 청소년 시절을 지나면서 사춘기의 성장통을 앓았다. 그저 잘 이겨내 주기만을 지켜보며 가족들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던 시기에 탈출구로 제주도를 찾았다. 여행기간 동안 가족끼리 부대껴보자는 마음으로 캠핑을 계획했다. 승용차에 캠핑용품과 가재도구를 가득 싣고 목포에서 카페리 여객선을 탔다. 우리는 선상에 앉아 한동안 끝없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사설 글램핑장을 예약하여 2박 3일 동안 온전히 함께 했다. 좁은 텐트에서 함께 지내며 식사도 같이 준비하고 여기저기 구경도 다니고 저녁이면 돗자리에 누워 밤하늘의 별자리를 찾아보기도 했다. 우리는 그렇게 가족을 조금 더 알게 되었고, 가족의 사랑을 조금 더 느끼며 제주에서의 소중한 추억을 간직하게 되었다. 


  이번 제주도행은 놀러 가는 것이 아니고 생활을 하러 가는 것이다. 제주도로 가는 여객선에서 직원의 전화를 받았다. “아직 육지인가요?” 육지라는 생소한 단어가 어색했다. 지금껏 육지라는 단어를 몇 번이나 말하고 들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내가 그간 육지에 살았고 이제 섬에 간다는 것이 실감 났다. 나도 섬사람이 되는 거다.  


  제주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육지 생활은 오래전의 이야기처럼 아득하다. 육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도 하지 않게 되고 소식도 딱히 관심이 없어지고 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사실인가 보다. 지금 육지에서는 여러 가지 정치적 사회적 이슈들로 시끄럽고 복잡하지만 여기서는 크게 관심도 없어 보이고 오히려 평온해 보이기까지 한다. 마치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과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도 세상과 멀어져 제주의 멋진 모습을 탐방하기에 바쁘다. 제주의 속살을 보고 있다.  


  제주의 일상은 모든 게 신기하고 새롭다. 아침이면 차를 운전하여 직장으로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면 핫플레이스와 맛집을 검색하여 찾아다니기 바쁘다. 비가 오면 우산을 챙기기보다 우의를 입고 바람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동네 카페에 앉아 있으면 들리는 말과 안 들리는 언어가 혼재되어 잠시 외국에 온 것인지 착각을 하곤 한다. 처음 서울에서 생활하면서 서울 사람들의 말투가 고급스럽고 멋스럽게 들렸던 그 시절이 떠오르기도 한다. 외지인의 볼썽사나운 행동을 보면 현지인의 심정이 되어 인상이 찌푸려지기도 한다. 


제주에서의 생활이 설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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